에로틱한 찰리 문학동네 시인선 68
여성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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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시집은 제목에 이끌려 사는 경우가 잦다. '에로틱한 찰리'는 어느 카페에서 필사 하기에 좋다고 하여 망설임 없이 구매를 했다. 나는 시를 볼 때 특별히 선명한 기준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에게 내가 좋아하는 시를 나열해 보였을 때 비슷한 구석들은 반드시 존재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이 시집의 맨 처음 시인의 말에서 부터 흥미를 느꼈다.


 톰과 찰리와 스티븐에게. 이제 우리 서로를 증오했으면 해. 고맙고 사랑하고 지겨우니까.



(편의 상 쉼표와 마침표를 더했다.) 이 짧은 활자들은 몹시 상대적이어서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일 테다. 나는 곧장 애인을 떠올렸다. 아직 증오가 서린 관계는 아니지만, 때론 지겨울 만큼 사랑하고 고마우며 어느 순간 정말 문득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 뒤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면 몇 번이고 문장들을 되짚어 보기 바빴다. 실질적으로 내 입장에서는 내용이 굉장히 난해했다. 어떤 시들은 뜬금 없는 구절들이 반복되기도 하고, 어떤 시에서는 그 전의 시에서 보았던 비슷한 구절이 갑자기 등장해 기시감을 주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시를 평가할 만한 능력이라던가, 소양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므로. 내가 오롯이 할 수 있는 일은 작가의 의도와 감정을 유추해보는 일. 그러나 그 마저도 여의치 않을 만큼 시의 세계는 복잡하고 모호했다.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기엔 띄엄띄엄 떨어진 문단 사이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절들이 있었다. 시를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 그러기 위해선 많은 이해와 관점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도 나는 멀었다. 많은 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우리는 느낌을 확장한다
뿌리를 더듬으며 걷지만 뿌리를 내리지는 않는다
손을 내밀어 서로의 국경을 더듬는다
그러니까 연애는 국경과 국경이 만나는 일이다
네 쪽으로 국경을 확장하는 일이다 - P64

그늘을 보면 누군가 한 번 접었다는 생각이 든다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잃어버린 삶이 이쪽에 와 닿을 때 빛과 어둠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

수긍할 수 없는 것을 수긍해야 하는 날 접을 곳이 많았다 접은 곳을 문지르면 모서리가 빛났다 창문과 절벽은 무엇이 더 깊은가 - P88

관계는 상대적이지만 상처는 늘 절대적이니까요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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