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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카테고리에 이 책을 담아야 할지 아주 잠시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서간집을 참 좋아한다. 편지란, 받는 이를 정해두고 오로지 그를 향한 마음을 적어내려간 글이 아닌가. 특히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는 한 사람을 사랑하던 사람이 전하려는 마음과 허심탄회한 회고의 작은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어 기쁘게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간직하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아니, 피에르의 마음이.


책을 반쯤 읽었을 때,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이브 생 로랑의 전기 영화인 '이브 생 로랑' 이라는 작품으로 자릴 라스페르 감독이 연출했다. 사실 번쩍번쩍한 명품, 패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입생로랑의 붉은색 립스틱은 사용해 봤어도 브랜드 설립자에게는 관심조차 없었고, 이브 생 로랑은 내게 그저 백화점 1층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이름 중 하나였다. 그가 21살에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로써 디자이너의 삶을 시작했다는 것도, 그가 우울증과 약물 중독에 시달렸다는 것도, 최초로 여성의 정장 바지를 디자인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에게 오랜 시간 삶을 함께 한 피에르 베르제라는 연인이 존재했다는 것도. 영화는 이브 생 로랑을 시작으로 피에르 베르제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고, 운명은 우리를 기다려주었어. 그것이 우리의 가장 값진 노자였음을 기억해줘.




영화를 보다 보면 피에르 베르제가 이브 생 로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이브 생 로랑은 예민했으며 약했다. 그의 마음 안에 연약한 나뭇가지들이 너무도 많았으며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고 부러졌다. 쇠약해진 심연은 금방 터지고 또 낡아갔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기민하게 탐구하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창조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타락하고 메말라갔다. 그 누구보다 빛이 났지만 누구보다 초라했다.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한 이브 생 로랑의 이면. 뾰족한 가시와도 같은 그의 고독과 모순까지도 사랑한 피에르 베르제. 



봄도 나의 아름다운 여름도

창문으로 도망가버렸네.

더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겨울의 냉기가 몸을 파고드네.


아무래도 빌을 묻으러 가느라 나도 나의 겨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나 봐. 내 생각이 어떻든 겨울은 그곳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지. 나는 귀먹은 척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러다 어느 날, 그것이 문을 부수어버리는 거야. 너는 나라면 사방을 수리해가며 그조차도 막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운명을 뒤죽박죽 만들기밖에 더 하겠어?




생의 가장 찬란한 시절부터 불씨가 꺼져 저물고야 마는 삶의 최후까지.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을 탐색하고 정의하고, 그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 영화 속 이브는 이름을 알리고 그의 세계를 가꾸어 갈수록 타락하고 수척해진다.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내면의 어둠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남자. 피에르 베르제는 그의 바닥을 보면서도 그를 놓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네 내면의 가장 지독한 욕망은 자기 파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 내가 너와 너무나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말하듯이 완벽한 평행을 이루고 있었기에 너를 구하는 데 실패한 거야. 




누군가를 오래도록 사랑하는 끈질김의 깊이에 대해 헤아릴 수 없다. 또한 이 세상에서 형체가 사라져버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도 나는 알지 못한다. 이브 생 로랑. 그는 세상에서 세상으로 사라졌지만, 끊이지 않는 유행처럼 불리운다.




때때로 학교에서 예술사를 공부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돼. 그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아마 그림을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 나는 언제나 교육적인 문화나 그 비슷한 것은 모두 싫어했으니 말이야. 무언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두 잊어버려야 해. 그게 내가 끝없이 행한 일이었어. 




책을 덮은 후, 나는 가본 적도 없는 파리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 패션. 젊음. 이국의 오래된 건물과 알지 못하는 냄새. 이브 생 로랑이 죽은 후 피에르 베르제는 둘이 함께 모았던 수집품을 정리하고 편지를 쓴다. 떠난 이에게 하는 말치고는 제법 냉철하기도 하며 담담하고 또 애틋하다. 그는 이브 생 로랑을 잊었을까. 그 다음 다시 사랑했을까. 허상 같은 사랑. 착각의 결정체를 우린 매번 반복해 믿는다. 




네가 내게 보낸 신뢰를 얼마나 자주 체감했는지. 나에게 모든 결정을 맡긴 너는 어떤 계산이나 설명도 요구한 적이 없었지. 그 맹목적인 믿음이,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나를 뒤흔들어. 그것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증명일 테지. 그리고, 그것이 어찌 되었든, 그 결합은 재고의 여지가 전혀 없었어. 



피에르 베르제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왜 이브 생 로랑을 사랑했는지 알 것만 같다. 많은 이유 중 일부라 할지라도, 아주 조금은. 그에게 찰나란 5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래, 언제나 너였어. 전투에서 모든 힘을 쏟아부은 뒤 이마에 월계수 잎을 두르고 나타나는 것은 바로 너였지. 아, 그 영광의 순간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승리의 여신이 다가와 네게 세상을 보여주고, 누구라도 더는 너를 저버릴 수 없도록 팔을 쭉 뻗어 너를 흔드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좋았던지. 대담함과 오만함의 시기였지. 이른바 젊음의 시절이었어.



"불행의 극치는 무엇인가"라는 프루스트의 질문에 너는 "고독"이라 답했지. 그 고독이 너의 생 마지막 순간까지 무결하게 지조를 지키며 너와 함께할 때 네 영역은 점점 더 협소해지고, 공기는 희박해지며, 밤은 점점 더 일찍 찾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너는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샤넬이 여성에게 자유를 주었다면, 너는 그들에게 권력을 되찾아주었어. 그들의 힘이 남성들에 의해 억눌려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알았고, 그들에게 너의 옷을 입힘으로써 어깨에 힘을 얹어주었지. 이것이 네가 한 일이야. 르 스모킹, 사하라 스타일, 투피스 바지 정장, 카방 코트, 트렌치코트가 그 증거야. 그저 옷을 입고 외출하는 것만으로, 여성들은 자신들의 여성성을 발전시키는 한편 에로티즘이라는 걸림돌을 치워버렸지.




책을 읽다 이브 생 로랑이 최초로 여성 정장 바지를 디자인했다는 것을 알았다. 르 스모킹. 킨 재킷, 일자로 떨어지는 바지와 주름 장식인 자보가 달린 오건디 소재의 셔츠, 헐렁거리는 넥타이, 실크 새틴의 벨트. 혁명처럼 등장한 의상으로 여성들은 자유를 걸칠 수 있었다. 부유층에서 벗어나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생로랑 리브고슈 기성복 라인으로 여성의 턱시도와 바지 정장으로 거리의 여성들에게 달콤한 권력을 선사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여성들이 바지를 입으면 예의에 어긋난다고들 했단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브 생 로랑은 자신의 분야에서 양성성의 문을 열어주었다. 


Thank you, Yves.



이후에 '이브 생 로랑 아무르'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싶은데, 도무지 볼 곳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그들의 시대가 궁금해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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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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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영원한 마침표를 찍었으며, 조만간에 그녀가 살았던 한 문장 전체가 차례차례 지워져나갈 것이다. 그 길고 아, 그러나 너무도 너무도 짧고, 지루하고 지겹고 고달프고 안간힘 써야 했던 한 문장이, 쓰일 때보다 몇억 배 빠른 속도로 지워져 마침내 텅 빈 백지만 남으리라. 그뒤엔 이윽고 그 백지마저 없어져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살았던 문장의 문장 없는 마침표 하나, 지구상의 외로운 표적 하나, 그녀의 무덤 하나만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그 어떠한 동사도 이제는 모두 과거형을 취하리라. p.50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이렇게 글을 썼다. 한 사람의 흔적이 하나둘 지워지는 과정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은 어떨까. 혹은 직접 내 손으로 그의 흔적을 정리하고 지워야 한다면. 나는 우리 엄마의 흔적이 결국 백지로 남는다면 억울해 견딜 수 없을 듯하다. 허무하고 허탈하여 내 스스로 가슴을 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다. 더듬더듬이 아니라 큼직하게, 굵직하게. 도무지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의 그녀가 아니라 그녀 자신으로서. 외롭지 않기를. 나는 항상 당신을 응원하고 있음을. 11월이 되기 전에 그녀와 아버지를 보러 갈 것이다. 기어코 재가 될 우리들.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감정과 시간을 할애하며 사랑하는 걸까. 



최소한 인간답게 죽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대항해서 싸우는 필사의 길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밤에도 나는 이를 갈며 일어나 앉는다. 끝없이 던져지고 밀쳐지면서 다시 떠나야 하는 역마살의 청춘 속에서, 모든 것이 억울하고 헛되다는 생각의 끝에서, 내가 깨닫는 이 쓸쓸함의 고질적인 힘으로, 허무의 가장 독한 힘으로 일어나 앉는다. p.14


삶은 전쟁이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적의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기이하게도 그 당시 내 주변 인간들은 나의 기를 꺾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나는 갈대처럼 휘어졌고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제야 안 것이다. 아무도 나를 대신해 살아주지 않을뿐더러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힘차게 일어나 살았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텐데, 기어이 살아지는 것을 나는 그때 왜 그리도 두려움에 떨었는지 모른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하루가, 사람들이 겁나 도망치고 싶다고 매일을 안절부절했다. 그리하여 나는 조금 더 나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래,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짜증이 났니.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일들로 우리는 괜한 에너지를 쓴 거야. 



나는 진흙탕에 빠진 사람처럼 시간의 밑바닥에 한 마리 벌레로 누워 수없이 많은 밤을 꼼지락거린다. 때로 진흙탕 물이 위험수위에 육박하여 내 목구멍 근처까지 올라오면 내 정신은 자구책을 강구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는 방법적 비몽사몽의 지역, 깊고 그윽한 시간의 궁창(다른 사람들 눈엔 시궁창으로 보이겠지만)으로 빠져든다. 


과거를 가진 기억과 시간 밖에 존재하는 방법적 비몽사몽 사이에서 나의 정신은 진자운동을 거듭한다. p.21


파괴의 쾌락은 노력하기만 한다면 생산의 쾌락으로 변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나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뒤늦게나마 믿고 싶고, 믿으려 노력할 것이다. p.55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 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 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p.59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가족과 이웃과 사회 일반으로부터 많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받게 되고, 그 받은 것을 밑받침으로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하여 결국 어느 때엔가는 자신이 받은 만큼 주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사람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해야 할 도리로서.  p.81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항시 삶 쪾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편안한 것인가. 아니 어쩌면 죽음까지도 삶의 일부이며, 삶의 자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p.95


어쩌면 이토록 회의적일 수 있는가.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 그러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한 사람. 이따금 마주치는 나의 이면과도 같은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고 몇몇의 문장을 몇 번이고 읽었다. 그래, 우리는 불행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다. 버틴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여자가 여자에게'라는 파트는 아예 모서리를 접어 전체적으로 표시를 해 두었다.


여자에게 강요된 희생과 헌신의 이데올로기는 실은 기만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p.149



책의 표지가 멋있다. 고독한 한 인간의 형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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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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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괴테의 <파우스트> 가운데 한 구절,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라는 그 유명한 구절일 것이다. 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ㅡ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 中





황현산 선생님은 밤이 선생이라고 하셨지만 아주 잠깐, 나는 황현산 선생님을 인생의 선생님이라 여기고 싶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벅차오르는 까닭은 그들의 축적된 언어와 견해를 간접적으로나마 누릴 수 있어서다. 이번 책은 꽤 오래 붙들고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즐거웠으나 문장이 버거웠다. 이것은 그저 내 머리가 단순하고 어휘와 이해의 폭이 좁아서일 터다. 그리고 나는 퇴근 후 이 책을 읽다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생 때인지 성인이던 때였는지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리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완전한 고아가 되셨는데 내게는 옛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노인들이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까지 경험하신 분이었으나 나는 그 이야기를 우리 엄마나 이모들을 통해 들었다. 살아 계실 때도 크게 왕래가 없어 여느 드라마나 동화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할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지만 말이다.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황현산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을 읽다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는 거지. 할아버지의 무릎 대신 널브러진 베개를 베고서. 이건, 책을 읽다 잤다는 것에 대한 어리석은 핑계가 아니다. (나는 책이 도무지 읽히지 않으면 과감히 덮어 책장에 꽂는 스타일이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절대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퇴근을 한 뒤 피곤했고, 종종 불면을 겪었으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노곤해졌다. 잘 자고 잘 읽었다. 







*가끔은 무자극적인 사고를 하는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전쟁은 단순한 추상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포탄이며, 구덩이에 파묻히는 시체 더미이며, 파괴되는 보금자리이며, 생사를 모른 채 흩어지는 가족이다. - P48

모든 시간이 같은 시간은 아니며, 모든 땅이 같은 땅은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같은 길이로 쪼개서 달력을 만들지만 어떤 날은 다른 날과 다르고 어떤 시간은 다른 시간과 다르다. - P59

저 광부들의 고통과 거기 감춰져 있는 작은 희망과 함께 민주 의식이 크게 성장하였고, 인의의 귀중함도 알게 되었다. 과거를 영예롭게도 비열하게도 만드는 것은 언제나 현재다. - P63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 P88

훌륭한 정치가 지배의 악몽을 풍요의 경제가 빈부의 악몽을, 문명 전달의 이기인 교육이 제도의 악몽을 벗어나지 못할 때, 예술 활동을 근간으로 하는 창의적 문화는 문명제도를 자연과 같은 것이 되게 하고, 자연을 인간과 소통하게 하여 그 악몽과 상처를 다스리고, 모든 감각을 동시에 살아 움직이게 하여 이성과 상식과 교양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드높인다. - P102

기억이 내 존재의 일관성을 보증해준다고는 하지만 과거의 어느 시간 속으로 내가 찾아내려 간다면, 나는 거기서 다정하고 친숙한 물건들을 다시 만나기보다, "나는 여기서 산 적이 없다"고 말하게 될 것만 같다. - P145

그의 마음은 바깥세상의 어떤 풍경과도 조응하지 않는다. 열기 없는 열망은 메마른 말들 속에 갇혔다. 슬픔은 언젠가 가라앉겠지만 이 불안이 해소될 길은 없다. - P167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 - P191

세상에는 누가 보아도 그렇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완벽하게 진실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도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주관적 신념에 불과한 것인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는 진리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진실은 국면에 따라 바뀌고,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변덕스러운 관점만 헛되이 떠돌아다니는 것일까?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을 밝혀내는 것일까, 자기 처지에 맞는 관점과 기준에 따라 그 사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일일까? - P222

겸손하지 않은 도덕은 그 자체가 폭력이다. - P233

이 신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우리와 함께 그 영검이 깊어졌으며, 또한 우리 운명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다. 그것들은 우리와 숨결을 교환하고 냄새를 교환했다. 그것들은 우리의 고독한 몸을 세상의 만물과 이어주는 연결선이며, 그렇게 맺어온 관계의 흔적들이며, 세상과 사랑을 나눈 내력들이며,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기억의 시간들이었다. - P252

이런 불수의적 기억들은 때때로 사람들을 이렇게 당황하게 한다. 그러나 나를 걷잡을 수 없이 달뜨게도 하고, 느닷없이 습격하여 나를 고통스럽게도 하는 이 기억들이야말로 내가 이 몸을 지니고 사는 동안 세상 만물과 깊이 사귀어온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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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미스터 최 - 사노 요코가 한국의 벗에게 보낸 40년간의 편지
사노 요코.최정호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 남해의봄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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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이었나, 멀리 사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충남에, 그 애는 저 멀리 마산에 살고 있었다. 지금도 본가에 가면 분홍색 상자 가득 그 아이가 보낸 편지가 담겨 있다. 그 당시 무슨 내용을 써서 그 애에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또렷한 건, 우편이 도착했을 때의 감정. 편지 봉투 모서리에 붙어 있는 우표를 확인하고 통통한 손가락으로 봉투 상단 접착된 부분을 뜯어낼 때의 설레임. 오늘은 어떤 비밀이 글씨에 다닥다닥 붙어 있을지, 세 번 정도 접힌 종이를 펼칠 때 둥실둥실 떠다니던 기쁨. 어떤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어제의 나로 돌아간다. 어제의 내가 내일의 내가 될 수 있을지, 확신 없는 미래를 상상하다 책장을 덮고는 한다.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웠다. 지금은 카카오톡을 이용해 수시로 안부와 마음을 전하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버린 거다. 추억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답다고들 하는데, 때로는 회귀가 간절하다.


20대에 만난 인연이 머리가 희끗희끗 샐 때까지 지속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지금 나는 그 과정 안에 자리해 있다. 내 머리 위로 허옇게 눈이 내릴 나이가 되면 내 곁엔 누가 남아있을지. 솔직히 많은 이들이 곁에 있을 거라는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꾸준한 애정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위트있고 경쾌한 포장지에 싸여 있지만 한 사람의 삶이 겹겹이 담겨있다. 그래서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가도 어떤 페이지는 여러 번이고 문장을 되새겨보기도 했다. 영화나 책 감상평을 적다 보면 편지 형식으로 작성할 때 가장 편하다는 걸 느낀다. 다른 것보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일까. 누가 썼는지에 따라 텍스트는 자연히 모양을 변형할 수 있겠지만, 사노 요코가 적어내려간 글들은 철학적이면서도 우습고 애틋했다. 


나는 사노 요코가 최정호 교수에게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왜, 인간관계에서도 '쟤는 왜 쟤랑 어울릴까.' 하는 의아함이 드는 관계들이 있지 않은가. 초반부에 최 교수가 사노 요코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서술한 장면이 있는데, 그가 그 당시 떠올렸던 생각이 몹시 가관이다. 


 '그 동안 남이 들여다본 일이 별로 없던 두 여인의 숙소는 도무지 질서라곤 없는 카오스였습니다. 그 카오스가 내겐 독기 있는 섹스어필로 느껴졌습니다. 나는 무언가 거척을 해야겠다는 자위본능의 충동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상대가 일본 여인이라는 것, 게다가 둘 다 남자를 알고있는 생과부들이라는 것 때문이었을까. 야릇한 섹스의 독기 속에서 독한 브랜디를 마시면서 나는 날이 새도록 독설을 퍼부은 모양입니다.' 


베를린 유학 중이던 최 교수는 우연한 계기로 사노 요코와 다른 이가 지내던 숙소로 초대를 받아 가게 됐고, 저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놓고 한 짓이 술에 취해 일본인이 얼마나 잔악하고 못된 짓을 했는지 독설을 한 거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한 없이 입체적이니까. 나는 선뜻 이해하기로 했다. 판단은 사노 요코가 한 게 아닌가. 그녀는  그의 다정하고 지적인 면모를 좋아했고, 그렇기에 오랜 우정을 축적했겠지.



 '저는 보이지 않는 것만 믿고 살았나 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모든 것을 쏟고, 눈에 보이는 것을 속악이라 생각하며 저는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렸어요. 속악한 사람은 곧 유능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이십대 후반의 사노 요코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살았나 보다. 실상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싶어했으면서. 살다 보니 느낀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게 가장 무섭다는 거다. 가늠할 수 없고 수치를 잴 수도 없으니, 이게 어떤 방향에서 나에게 쏟아질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이를테면 사랑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예전에는 사랑이 눈에 보인다고 믿었다. 상대의 표정을 통해, 상대의 말을 통해. 그런데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겠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사랑은 눈치껏 알아채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표정 변화는 쉽게 보이지 않고, 그들은 내가 알아듣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그들이 내뿜는 콧김을 사랑이라 믿으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마음을 사랑이라 믿으며 그들을 사랑하는 거다.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이 형태를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모든 것을 아주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사람이나 인생에 대해서 너그러워졌다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겠지요. 특히 '젊음'에 대해 너그러워져서 젊은 혈기로 잘못을 잇따라 저지르는 사람, 젊기 때문에 건방지게 행동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젊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 젊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 젊기 때문에 예쁜 사람을 저는 눈물을 흘릴 듯한 얼굴로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맙니다. 이해심이 넘치는 것처럼 행동하는, 징그러운 아줌마가 되어 버린 것 같아요.'


나는 아직 젊은데 왜 이 구절에 공감했을까. 그렇다고 해서 사노 요코가 아주 오래 산 노인이었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녀도 기껏 해야 삼십대 초중반이었다. 이렇게 세상에 통달하는 듯한 자세를 갖는 것도 어쩌면 젊은이의 치기는 아닐까 생각한다. 몇 년 전의 나보다 나는 성장했다고 느끼면서 찾아오는 작은 오만함 같은 건 아닐지. 이런 말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오만하다. 옹졸하던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나보다 어린 이들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상은 아닐지도. 오히려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외면함으로써, 스스로 너그럽고 안정된 사람이라 정의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글로 써놓고 보니 정말 징그럽다. 거짓과 진실된 척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야말로 정말 속악하다.


 '행복은 상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행복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와요. 그리고 행복은 자각이 없는 사람에게만 찾아오고 사물을 깊이 추구하려는 사람에게 찾아오지 않아요.'


사노 요코의 행복론이 마음에 들었다. 오랜 삶을 살지 않았지만 나도 최근에 그런 생각을 했다. 일상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고. 멀리 있는 것을 쥐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추운 겨울 온수매트 온도를 높혀놓고 둥그렇게 몸을 말고 있는 것도 행복이 될 수 있다고. 이 사실을 내가 더 늙기 전에, 일찍이 깨달아 다행이다. 하마터면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아주 사소한 불행이라 믿으며 불운한 삶을 살 뻔 했다. 하마터면 그럴 뻔 했다. 이런 논리를 펼치던 사노 요코는 노년을 행복하게 보냈을까. 잘 모르지만, 그녀가 최 교수에게 보낸 편지로 유추해본다면 그녀는 기꺼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이 세계에 온갖 그림을 그리고 간 그녀는 마지막까지 행복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이 저에게 불행이나 불운을 붙이지 못하도록 맨날 웃고 행복한 척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그렇게 믿고 살고 있습니다. - P60

행운이란 그런 게 있거든요. 행운도 불운도 살아있는 생물이라 각자 필사적으로 살려고 해요. 행운도 불운도 우리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고 해요. - P79

욕하는 것도 사물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이니, 욕할 재료를 많이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 P86

제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살아왔다는 것도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각자 환상을 가졌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 환상의 극단이 바로 연애임이 틀림없습니다. 공통의 환상을 서로가 가짐으로써 연애가 성립되고 환상을 서로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환상을 현실로 착각해서 사랑에 빠졌던 젊은 날이 그리웠습니다. - P97

내 마음도 남의 마음도 이해 못 해 우왕좌왕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해 온 저 같은 사람은 분석을 받으면 삶이 재미없어질 것 같아 반갑지 않아요. 타인의 일을 제멋대로 오해하면서 어수룩하게 살아가고 싶은데요.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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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With Frida Kahlo 활자에 잠긴 시
박연준 지음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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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저녁 바람을 사랑하던 사람은 여전히 벌거벗었으리라. 바람은 자주 숨고, 느닷없이 불어오고 예고도 없이 사라진다. 오래 두어도 사라지지 않는 게 있다. 고독은 서로 다른 종種을 사랑하는 일이다.'



이 책은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사랑, 침묵, 재앙, 절망 등을 박연준 작가가 서술했다. 미술과 시의 만남이란 늘 이렇듯 반갑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프리다'란 영화도 챙겨봤다. 영화는 오로지 프리다의 삶, 인간으로서 그녀의 서사에 집중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2시간 분량의 영상으로 그녀의 삶을 압축하기엔 무리가 있었으리라. 내가 감각한 그녀의 삶은 고통으로 점철된 생이었다. 어린 시절 버스 사고로 온 몸이 부서지면서 신체적 고통을, 미술을 시작한 뒤 그의 남편인 디에고를 만나 결혼을 한 후에는 그의 여성편력과 자유분방함으로 심적 고통을.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삶이란 길에 안개처럼 깔린 고통으로 그녀의 예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혹은 감쪽같이, 현란하고 자유롭게 타인을 속일 수 있는 것. 나 자신. 혹자는 말할 것이다. 살다 보면 자기자신도 스스로를 파악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그렇다고 나에 대한 정의, 표현을 타인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을. 그렇듯, 그래서 그녀의 그림들이 곧 그녀 자신이었다. 


책은 그녀의 사랑에 시선을 집중한다. 우리가 감히 사랑을 정의할 수 있을까? 숭고함, 동정, 존경, 무의미, 책임, 집착...... 많은 이들이 정의하는 사랑은 각기 다른 결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랑이 있음으로 우린 살아간다. 


그녀가 몰두하는 '사랑'은 특별한 데가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사랑이 필요했던 사람이다.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통에 짓눌려 죽지 않기 위해 사랑에 집착한 영혼이다.


텍스트로 하나하나 읽어 내려갈 때는 무난히, 술술 넘어갈 수 있었으나 영화를 볼 때는 아무래도 시각에 직접적으로 꽂혀서 그런지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하게 됐다. 나는 디에고에 대한 프리다의 사랑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평생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희생적이고 집요한 사랑. 살기 위해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그녀는 늘 간절해보였다. 프리다에게 디에고가 어떤 존재일지 나름 머리를 굴려 고민해봤다. 우선 그는 예술적인 부분에서 그녀의 선생님이었고,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그리는 세계의 영감. 그리고 애증. 끝나지 않는 내전같은, 감정들의 주축. 나는 이런 식으로 가늠만 할 수 있을 뿐. 그녀의 마음, 넓고 원대한 범위를 감히 들여다볼 수 없을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부모는 프리다와 디에고의 결혼을 두고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 이라고 했다. 정확한 말이다. 비둘기가 하필 코끼리를 사랑해서, 슬픈 일을 나눠 갖는 일. 결이 다른 두 종이가 만나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어떤 종이는 더 많이 젖고, 더 많이 찢어지고, 더 많이 닳을 것이다. 사랑이 그렇다. 젖고, 찢어지고, 닳을지라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박연준 작가는 사랑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 같다. 그녀가 사랑에 관련한 글을 적어주면 그게 내게 정답같이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완벽히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감정을 나눈다면 당연히 불공평하게 비율이 산정될 테지만. 어릴 땐 내게서 끝나지 않은 사랑이 상대방에게서 먼저 끝나면 참 억울했었다. 후회도 많이 했었다. 참, 찌질하게 후회는 왜 했는지. 지금도 썩 쿨하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몇날며칠 후회를 끌어안고 우는 일이 사라졌다. 그리고 며칠 전까지는 사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성애의 감정. 그 갈래들에 관해 말이다. 연인, 가족, 친구. 예컨대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을 현실의 친구보다 더 많이 아끼고 걱정할 때도 있다.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건만. 그런 사람들에 대한 내 감정은 뭐라고 표현하지? 사랑? 어떤 사랑? 세상이 넓은 만큼 인간의 감정들도 복잡한 것 같다. 이리저리 뒤얽힌 실타래들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사랑'이란 감정을 단적으로 나눠선 안 된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조금 더 단순하게 보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인간의 감정, 성애의 종류를 나누는 건 심리학자들이나 하는 일이고 나는 그저 좋으면 좋은 걸, 싫으면 싫은 걸 굴절시키지 않고 곧대로 믿으며 바라보면 되는 거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내 마음 속 어느 부분을, 이 세상에서 어떤 종류에 해당하는지 재고 따지기엔 시간이 아깝다.



그런 면에서 프리다 칼로는 실로 용감한 사람이었다.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설령 상처를 받았음에도 관용과 배려로 디에고를 사랑하고 용서했다. 용서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내가 그 때문에 받은 상처는 아랑곳 않고 오로지 그 사람과의 남은 시간을 온전히 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의 죄를 기꺼이 사하고 하나의 존재로 인정해야 가능한 일.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용서를 구하는 일이나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다. 애초에 발생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 피하고 외면하는 게 더 쉬운 사람. 


저는 제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사랑 불구자" 라고요. 그리고 그건 제가 너무 많은 슬픔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라고, 너무 많은 종류의 슬픔을 예감하고, 과하게 느껴버리기 때문이라고 얼마 전에 알게 됐어요. 



책에서 유독 공감을 많이 했던 페이지는 작가와 채빈이란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 부분이다. 특히 채빈이 작가에게 보낸 편지 속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며,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해버렸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도망치는 게 익숙해서, 발을 자주 빼곤 했다. 아직 내 것이 되지 않은 슬픔이 미리부터 두려워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걸 택하곤 했다. 어떨 땐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리듯, 대뜸 사랑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미처 도망가기 위한 수로를 파놓지 못한 그 사이에 내가 그 사랑 안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도 고난의 연속이다. 수시로 겁을 내서 상대방을 불안하게 만들기를 반복한다. 그런 갈등들이 기어이 끝이 되고, 나는 또 사랑으로부터 멀리 도주한다. 가난한 마음에는 계속 빈곤이 찾아온다. 빈 마음에 무엇이든 쌓아야 한다. 아름답고 찬란한 것들을. 대담하고 씩씩한 것들을 서슴없이, 공허를 용납하지 않고.






프리다, 당신의 걸음은 어디에 머물고 있나요. 그 세계에서도 여전히, 열심히 운명과 맞서고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나요. 나는요. 할 수 있다면 당신의 눈썹을 어루만져 보고 싶어요. 당신이라면 왠지 허락해줄 것 같거든요. 검은 눈썹의 결을 따라 엄지로 가만히 쓸어보고 싶습니다. 향기를 맡아보고 싶어요. 당신 주변을 메우고 있는 담대의 내음을, 할 수만 있다면 향수로 만들어 눈물이 날 때마다 뿌리고 싶어요. 당신의 그림들이 세계를 떠돌아요. 당신의 얼굴이 전 세계를. 이 작은 땅에 사는 나에게까지 당도했어요. 우리, 언젠가 무기체가 되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랑이 깨졌을 때 그리움은 정확히 말하면 ‘몸에 대한 그리움‘이다. 실물을 향한 그리움, 여기, 없는, 실체를 향한 그리움이다. - P45

"정말 나를 힘들게 하던 게 결국엔 내 몸에 배어, 내 삶에 영향을 끼치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 같아. 나를 지불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것들. 결국 그게 귀한 거야." - P76

"미래는 어둡고, 나는 그것이 미래로서는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곱씹어보며, 나는 최선을 다해 미래 따위는 모르길 바랍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두렵고, 약해집니다. 당신과 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나이를 먹고 무거워지지 말아요.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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