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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9년 4월
평점 :
삶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다. 나는 오늘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텍스트 그 자체를 거부하였다. 나는 텍스트 다음에 있었고 모든 인간은 텍스트 이전에 있었다. 이건 오만이 아니다.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이 땅의 사람들과 같은 조건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조건이라는 말에서 다소의 불순함이 풍긴다면 기꺼이 태도라는 말로 바꿀 용의가 있다. 나는 건설한다. 이것이 운명론자들의 비굴한 굴복과 내 태도가 다른 점이다. 나는 운명을 거부한다. 절망의 텍스트는 그러므로 나의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것이다. -p.9
초판 1992년. 양귀자의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삼십 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문장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의 통찰력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오랜 시간을 질주해 왔다. 책은 도전적이고 강렬하다. 소설 속 인물 강민주 역시 그렇다. 첫 페이지가 주인공 강민주가 어떤 여자인지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강민주는 여성 문제 상담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유선상으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다. 그녀들의 불행의 주 원인은 남자들이었다. 가정폭력, 외도. 나는 이런 환경에 처한 여성들을 본 적 있다. 그들은 나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이 가정을 놓지 못하고 죄 많은 남자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식들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에야 이혼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니 이혼이 큰 일은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이 평생을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오죽하면 안전이별이란 말이 생겼을까. 아! 이 역시 남자들이 원인이다. 흔한 일반화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사건 가해자는 남자들이 아니던가. 사회와 그들의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고 싶지 않다. 선택은 그들이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들의 선택에 대해 질책을 하고 싶은 것이다. 몇 달 전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모르는 남자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여성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난 후 나는 밤에 혼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기가 무서워졌다. 최근에 밤 열 시에 쓰레기를 버리러 간 적이 있다. 그날따라 그 주변에 담배를 피우러 나온 남자들이 대 여섯명이나 있었다. 괜히 화가 난 척, 팔을 휘적휘적 휘저으며 공동현관문까지 걸어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상을 두려워해야 하다니. 그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세상은 더욱 포악해지고 끔찍해졌다. 혐오의 표출은 당당해졌으며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강민주 같은 여자가 나타나 남자 배우를 납치한다면 어떻게 될까. 줄거리만 들어도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졌고, 틈이 날 때마다 책장을 넘겼다.
나는 여자들이 그렇게나 많이 남자들에게 당했으면서도 여전히 남자에게 환상을 품는 것에 정말이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내가 선택한 이 운명 말고, 다른 운명의 남자가 어딘가 꼭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여자들의 우매함은 정말 질색이다. 남자는 한 종이다. 전혀 다른 남자란 종족은 이 지구상에 없다. -p. 46
모든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를 거쳐갔던 남자들 역시 거기서 거기였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니가 능력이 없고 별로라서 그런 것 아니냐?' 할 수도 있으나 나는 정말 다양한 남자들을 만났었다. 스무살 때 만난 남자는 비교적 순진했다. 뭐,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중간에 우연히 알게 된 32살의 남자가 나를 쫓아다닌 적도 있었다. 내 나이 23살 때였다. 그리고 만난 남자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 내게 거짓말을 하고 그녀와 동침을 한 남자였다. 아, 그 새끼는 나와 말싸움을 하다 내 자취방 벽을 주먹으로 친 전적도 있다. 벽이 패인 것은 내가 보상했다. 휴대폰을 집어던진다던가, 소리를 지른다던가, 나의 사생활을 통제하려 한다던가. 온갖 최악의 집합체였다. 그리고 나서도 나는 남자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어딘가에는 멀쩡하게 나를 사랑해 줄 남자가 있겠지. 그 뒤로는 흐지부지, 그저 그런 놈들을 만났고 나는 이후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해 줄 남자도 없을 뿐더러, 내가 나를 사랑해야만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종족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 그 뒤로 나는 몹시 편안하고 평온한 삶을 영위 중이다.
주인공 강민주는 환상처럼 완벽한 인물 백승하라는 남자배우를 납치하기로 한다. 여자들을 교란한 죄.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한 죄. 자신이 택한 남자가 나빴던 것은 자신의 숙명이라고 여기며 여자들을 운명주의에 빠뜨린 죄명을 붙여서. 그리고 납치를 돕는 인물 중 그녀의 수족과도 같은 '남기'가 있다. 아, 그리고 찰거머리같은 남자 김인수가 등장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이 날지, 강민주가 어떤 처세와 태도로 사건을 대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들과의 관계성에 대한 변화 역시 예측할 수 없었다.
강민주가 백승하를 길들이는 부분 역시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어쩌면 가정폭력범들의 가스라이팅과 비슷한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폭력. 즉 채찍을 사용하고, 그 뒤에 달콤한 당근을 건넨다.
그러나 나는 박 여자와는 생각이 다르다. 남자가, 이미 검은 발톱을 드러낸 남자가 '뜻밖에' 회개하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다. 아니, 절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남자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면 가증스럽게도 다시 여자 마음을 얻어 기대보려는 것이 남자들이란 족속이다. 검은 발톱은 부러진 것이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게다가 발톱은 다시 자란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특히 남자는 여자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른다. 알고 있더라도 실천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 남자다. -p.109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친 부분이 굉장히 많다.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사실 '남자'와 '여자'로 표현을 했으나 여기서 표현되는 남자들은 이 세상의 존재하는 수많은 강자들, 기득권층이라 여겨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예컨대 여자는 '동물'이 될 수도 있고 남자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사이 백승하는 울부짖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반항을 한다. 그럴 때마다 강민주는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며 백승하가 이 상황을 수긍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붙잡아 놓고 설득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강압적인 상황을 연출하며 그가 이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도록 한다. 희망이 없다는 것. 그 끔찍한 절망. 강민주는 백승하에게 그것을 선사하고, 또 그의 가슴에 희망을 심을 것이다.
* 소설을 읽으며 이 이야기가 영화화 된다면 백승하는 어떤 배우가 해야 할까 생각을 해 보았다. 젊은 박해일 말고는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남기의 이런 양면성에 대해 전혀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기처럼 우직한 인간에게는 순수와 용맹은 한 이름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순수하기에 용감한 것이고 용감할 수 있기에 순수한 것이다. 여기에는 옳고 그르거나, 추하고 아름답다는 식의 이분법적 논리가 발붙일 자리가 없다. 그 단순 명료함, 이것이 우직한 삶이 지닌 미덕이다. -p.175
강민주의 곁을 지키는 충직한 인물 황남기에 대해서도 잊지 않아야 했다. 그는 강민주의 말이라면 꼼짝을 못한다. 강민주를 우러러보는 남자. 그는 그녀의 어머니 덕분에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그녀의 딸인 강민주의 말이라면 복종을 하는 것이다. 궂은 일은 남기가 한다. 백승하를 납치하는 것. 동태를 살피는 것. 요리, 청소까지. 강민주 역시 세상의 남자들과는 다르게 남기를 대한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이성적 연애 감정이 기반되어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황남기는 강민주를 사랑하나 갖고자 하는 욕심이 없다. 강민주 역시 황남기를 자신의 특별한 수족으로 여긴다. 강민주와 백승하는 대화를 통해 차츰 거리를 좁힌다. 불신과 의심의 대상인 백승하가 알고 보니 꽤 괜찮은 인물이었기에 강민주 역시 마음을 연다. 아니, 백승하를 신경쓰기 시작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과연 이들이 어떻게 될지 더욱 궁금해졌는데, 강민주가 결국 백승하를 사랑해 버리는 결말은 보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강민주의 상황을 어떻던가. 그녀는 더이상 강해질 길이 없다.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그런 그녀가 사랑을 한다면 단연 약해지는 것 말고는 길이 없다. 내 생각은 그랬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백승하에게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다는 것. 백승하는 유부남이다. 그런데 강민주가 백승하를 위해 황남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아들을 데리러(납치) 가는 대목에서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백승하는 내가 보기에도 괜찮은 남자였다. 물론 그는 자신이 남자로서, 남자라서 누려온 당연한 특권에 대해 알지 못했으나 많은 남자들이 그렇다. 오히려 여자들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역차별이라고 들고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그는 강민주의 말을 경청할 줄 알고 직업에 대한 열정이 투철한 배우였다. 게다가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였고, 외모 역시 아름다웠다. 세상에 이런 남자가 어디! 이런 글을 적는 나 역시 백승하에게 설득이 된 것은 아닐까.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나를 짜증나게 했던 것은 김인수라는 인물이었다. 상담소에서 일하던 강민주에게 관심을 갖고 끊임없는 구애를 하는 캐릭터다. 상대방의 의견보다 자신의 감정과 욕심이 우선인 인물로써 본의 아니게 강민주를 괴롭히고, 강민주를 불안에 떨게 한다. 이런 놈들이 먼 옛날부터 존재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약육강식의 논리를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오직 밀어내기와 뒤집어씌우기에만 골몰해온 남성 무사들의 활극은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끊임없이 생명의 존엄성을 생활 속에 구체화해온 여성, 지배보다는 평화를 욕망하고, 억압받아온 역사로 억압받는 자의 마음을 거울 들여다보듯 잘 느낄 수 있게 된 여성, 이런 여성들이 한 집단의 수좌가 된다면 세상은 적어도 지금보다 열 배 더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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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제도가 오류투성이였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 자명하게 드러난다. 정치는 오로지 권력 창출의 작업에 불과하고, 교육은 노예계급에서 기어오르려는 자들의 목숨을 건 혈투로 변모했다. 경제는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을 거듭하며 오직 자본만이 자본을 재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 도덕은 땅에 떨어져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p.266
나는 이 부분이 감명 깊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이어져 온 남성 지배의 역사. 대부분의 권력과 기득권을 지닌 이들은 남성이다. 이 역사가 어떻게 끊어져야 할지 알 수 없으나, 강민주는 이 사건으로 인해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강인한 여성.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여성 강민주는 여자들의 유니콘 같은 백승하라는 남자도 결국은 여느 남자와 같은 종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여성들이 깨어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 오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여자들이 얻어야 할 권리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여자들은 얼마나 많은 피를 보고 땀을 흘려야 할까.
"난 여자들이 연약함을 내세워 남자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것을 혐오해요. 남자들이 연약한 여자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그런 작태를 부추기는 꼴이지요. 여자라는 존재는 약하다고 믿고 싶은 게 남자들 희망이거든요. 그래야 여자들 위에 군림할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것도 하나의 집단 최면인지도 몰라요. 여자는 연약하다, 여자라는 존재는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이는 가냘픈 존재다, 라고 자꾸 떠들어주니까 여자들이 점점 약해지는 거예요. 남자들은 강한 여자들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어요. 그들도 그걸 알아요. 여자라는 종족이 사실은 남자보다 우월한데 거기다 힘까지 강해지면 절대로 휘어잡을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끊임없이 연약한 여자가 아름답다고 외치지요. 그 말은 곧, 여자들이여, 제발 힘을 버려달라, 라는 주문에 다른 표현이라고요."
내가 5년 전 이 사실을 자각했다. 양귀자 작가는 훨씬 오래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작가의 통찰력이 감탄스럽다. 여자들은 똑똑하고 현명하다. 그러나 세뇌 당해 왔다. 아름다운 여성이 남자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아름다움이란 외면에 한하며 하얗고 날씬해야만 아름다운 여성이 될 수 있다고, 온 사회와 세상이 여자들에게 말했다. 다이어트에 목을 매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매일 몸무게를 재고 밥을 굶었다. 화장품을 한 보따리를 사서는, 하늘하늘하고 살랑거리는 원피스를 주로 입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화장도 하지 않고, 활동성이 뛰어난 옷을 주로 찾아 입는다. 바지와 반팔. 살이 찌는 것이 두렵지 않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맛있는 것을 먹는 낙으로 퇴근 후를 즐긴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은 평화롭다. 주눅들지 않는다. 사회가 규정지은 틀에서 벗어날까 얼마나 두려워했던가. 나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여자들은 강해져야 한다. 반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나에게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구석에서 탄환이 발사되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어리석은 남자들아.
작가의 시대를 꿰뚫어보는 능력에 찬사를, 그리고 또 한 번 강해지기를 소망하며. 금지를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다짐하며.
내 일기는 하루의 궤적을 남기는 데 필요할 뿐이다. 처음엔 내 시간들이 어디로 공중분해 되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무미건조한 나열이지만 나중에 기억이 사라졌을 때 읽어보면 그 시간이 손에 잡힐 듯이 떠오른다. 그래, 그 찻집에서 흰 블라우스에 커피를 엎질렀었지. 전혀 하지 않던 실수를 해서 버린 옷보다 그 실수 자체에 얼마나 절망했던가. - P28
희생이라니, 고통의 인내는 미덕이 아니다. 그것이 미덕이라는 주장은 기득권을 쥔 자들의 염치없는 요구일 뿐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부수주의자들을 혐오한다. 그들은 정신의 진보를 억압한다. 억압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적이다. - P72
생각해 보라.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이 희생과 인내를 감수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 그 두꺼운 역사책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약자가 택할 길은 희생이나 인내밖에 아무것도 없는 세상인 것이다. - P73
미지를 향한 끝없는 발돋움, 삶이란 그 한없는 떨림의 공명판이 아니던가. - P83
언론이 즐겨 사용하는 말에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것이 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영 비위가 상한다. 단언하건대, 사회를 어지럽히는 인사는 있을지언정 사회를 지도하는 인사는 없다. 대단찮은 학식이나, 상업주의 언론에 이름을 팔은 속된 명성으로 자신을 지도층 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나는 가장 혐오한다.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 P86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옆자리 여자의 가슴을 툭 치는 중년 사내의 희고 살찐 손, 번들거리는 얼굴. 나는 거의 구역질의 지경에 이르고 만다. 나는 언제나 진화되지 않은 미개인 사내들 때문에 욕지기를 느낀다. 그들만 아니면 세상은 얼마나 밝고 부드러우며, 또한 멋진가. - P135
나는 연약한 이 땅의 여자들에게 절망한다. 내가 벌이고 있는 남자들과의 전쟁에서 진정한 동성의 협력자를 얻는 일은 정녕 불가능한가. 어차피 신의 대리인 자격으로 홀로 치르는 전쟁, 끝까지 혼자 가겠다는 내 결심은 더욱 굳어진다. - P256
"내 앞날을 쥐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내 말에 백승하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오. 당신도 어차피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인 것을. 당신의 비범함을 보고 있으면 아슬아슬한 기분이라오. 세상은 비범한 자에게 관대하지 못해요." - P331
영혼을 찍는 카메라가 있다면, 짓눌리고 억압받는 정신을 촬영하고 인화할 수 있는 과학이 있다면, 렌즈를 들이대고 분명히 찍어두어야 할 여성의 깊은 상흔은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찍어야 상처의 증거가 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은 교묘하고 복합적이다.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일상적으로 이해되고, 그리하여 일상의 하나로 무심히 잊히는 사회는 직정 옳지 않다. 그래서 강민주가 등장했다. -작가의 말 중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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