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라 지칭하는 누군가는 과거의 나일 수도, 미래의 나일 수도,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내가 나일 거란 확신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가상의 누군가일 수도, 진짜 나일 수도 있어요. 어이가 없거나 허탈할 수도 있겠네요. 앞으로 내가 써내려갈 편지들은 익명을 닮아 있을 거예요. 사노 요코가 미스터 최에게 진솔하게 털어놓는 글들이 부러웠거든요. 하지만 나는 특정한 누군가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불특정한 당신에게 글을 쓰는 겁니다. 내가 누구인지 숨기고 당신이 누구인지 헷갈리도록 해서 말이죠. 첫 편지입니다. 별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예요. 다만 솔직해져야 해요. 감춰두고 나만 아는 것들도 좋지만, 어떤 말들은 뱉어야만 하더라고요. 솔직하지 못해 후회하던 날들이 있었잖아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날들이 많잖아요. 이렇게라도 적지 않으면 나조차도 알지 못할 것 같아 기록합니다. 우리는 거짓된 세상에서 거짓말을 하며 살죠. 똑같은 사람들이 되어 가는 거예요. 어리석게. 어리석은 물고기들처럼. 하는 거라곤 빠끔빠끔 입이나 벌리며 뭍을 겁내고 물속에 살지도 않는 플랑크톤을 잡아 먹는 상상을 하면서. 하늘을 볼 수 없는 존재들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나는 가끔 우리가 공산품이 되어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물 안에 살면서도 세상이라 믿고 협소한 시야를 넓히려 하지 않아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겠지만요. 편협한 사고 방식을 정답이라 여기며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버둥거리는 이들도 있어요.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죠. 반듯한 인간의 형태를, 잘 자란 성인의 형태를 띠고 싶지 않아요. 그럴 자신도 없지만요. 그래도 어른인 척 할 수는 있어야 하니까. 아이들에게 어른처럼 굴 줄은 알아야 하니까. 달이 깊습니다. 붉은 달은 언제 뜰까요? 딸기 같은 달이 떠오르는 날에 내 생각을 해주세요. 어느덧 새벽입니다. 이만 줄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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