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노라 에프런 지음, 김용언 옮김 / 반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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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북카페에 갔는데 책장에 전면 노출되어 있던 아이. 읽을 생각은 전혀 없었고 노라 에프런이 누군지 보려고 프로필을 봤더니 그녀의 작품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줄리&줄리아> 뭐라고? 할 수 없지.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든 작가의 글이라면 금요일 오후 시간을 온전히 쓰며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하여 첫 장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는데, 어머 이토록 유머가 풍부한 에세이를 보았나? 깜짝 놀라 다시 그녀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에프런은 1941년 뉴욕에서 태었다. 그녀의 아버지 헨리 에프런과 어머니 피비 에프런은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희곡 작가이다. 영화 관련 일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 비벌리힐스에서 유복하게 자란 에프런은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뉴스위크>, <뉴욕 포스트>를 거치며 기자로 활약하였다. 그러다 영화감독까지 되었으니 정말 똑똑하구나.

   에프런의 첫 번째 남편은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댄 그린버그, 두 번째 남편은 동료 밥 우드워드와 함께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파헤친 유명 저널리스트 칼 번스타인이다. 세 번째 남편은 프로듀서 겸 시나리오 작가인 니컬러스 필레기이다. 부모와 더불어 남편들 또한 쟁쟁하구나. 그녀의 작품으로는 지금까지 한 권의 소설, 다섯 권의 에세이 두 권의 연극 열 네편의 영화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 영화 일텐데 <그녀는 요술쟁이> <지금은 통화중> <유브 갓 메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등등을 바로 그녀가 만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달달하고 따뜻한 영화들을 만든 감독인줄 여태 몰랐다니. 이제라도 그녀의 글을 읽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책에 실려 있는 23편의 에세이 중 첫 장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를 읽었다면, 독자는 이제 마지막 장까지 책을 놓을 수 없다. 그녀의 미끼가 너무 매혹적이어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읽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첫 장부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 소리를 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즐거운 오후를 선물받다니. 그녀가 쓴 나머지 에세이집도 모조리 읽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에프런이 <줄리&줄리아>에서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그토록 멋지게 만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음식에 관한 그녀의 열정은 정열적이고 이것은 에세이 곳곳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태어날 때부터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기도 하지만, 에프런은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고, 또 가감 없이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 심지어 어머니의 알콜 중독증이나 자신의 이혼에 관해서 그녀처럼 담담하게 서술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 코스모폴리탄 칵테일 이후에 발명된 모든 음료들, 특히 그 민트 잎을 넣어서 만든 그것

당신은 뭔지 알겠지.

잠시 구글 검색을 해보고 오려고 한다. 금방 돌아오겠다.

모히또 말이다.

나는 구글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하지만 자기 자신의 삶을 찾아올 수는 없다. 20-21

 

# 그 에디터 중 한 사람의 이름이 오즈번 엘리엇이었다. 금요일에는 종종 새벽 3시 정도까지 일을 했고, 토요일에도 일찍 사무실에 나와야 했다. 국내 사업부도, 해외 사업부도 쉬는데 말이다. 일은 정말 자기 몰입적인 방식으로 흥미진진했다. 이것이야말로 저널리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세계에서는 어떤 출판물을 만드는 사람이건 자신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나머지 세계가 전부 초조하게 다음 호, 다음 출간물을 기다리고 있다고 정말로 믿게 된다. 32

 

# 아루바의 존재를 공표한다는 사실이 유감스럽다. 여러분은 아루바가 뭔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나는 카리브 해의 아루바 섬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아루바 섬의 작은 나무들은 강풍 때문에 죄다 한쪽 방향으로 쏠려 넘어가 있다. 나의 아루바가 섬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건 내 머리카락에 생기는 현상이다. 정확하게는 정수리 뒤쪽이다. 내 머리카락이 점점 곤두서다가 한쪽으로 쏠리고, 결과적으로 두피의 맨살이 약간 드러난다. 머리가 빠진 건 확실히 아니다. 아루바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생긴다. 바람이 한순간 세차게 불 때도, 잠깐 걸을 때도, 지하철에 승차할 때도, 아니면 삶 자체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이 내 머리카락은 한쪽으로 쏠려 있다. 66

 

# 이제 내가 수 년동안 가슴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바를 공표할 차례다. 달걀흰자 노른자를 중단시킬 때가 왔다.....달걀노른자 없이 오물렛을 만들면 안된다. 노른자를 흰자보다 더 많이 넣어야 한다. 94

 

# 얼마 전 내 친구 그레이든 카터가 뉴욕에 레스토랑을 열겠다고 했다. 나는 그 계획에 대해 경고했다. 식당 경영이야말로 모두가 철들면서 버려야 하는 보편적인 판타지의 일종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그렇지 않으면 식당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다. 식당 경영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따라붙는다. 주인 스스로 매일 거기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건 가장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식당을 열겠다는 판타지를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심리학자 피아제의 인지발달 단계의 최종 승급이다.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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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스크랩하다 - 10명의 여행홀릭 작가들이 소개하는 트래블 스크랩북
히라사와 마리코 외 지음, 박승희 옮김 / 인디고(글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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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가 너무 예쁘다. 10명의 여행 홀릭 작가들이 소개하는 트래블 스크랩북이란 부재가 붙어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책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부재이다. 당연히 나도 펼쳐보았다. 10명의 작가들이 여행을 하며 그 기록들을 스크랩하는 방법이 담겨있다. 그림, 지도, 우표,천, 도장 등 여행지에서 발견한 다양한 소재를 모아 꼴라주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물론 폴라로이드 사진과 글쓰기도 있다. 아기자기하고 감각적인 스크랩과 설명들이 재밌다. 여행을 갈 때마다 여행노트를 만드는 나로서는 이들의 노력과 수고에 100% 공감한다.

   누구에게나 여행을 기록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처음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매일 일기쓰기였다. 너무 평범한 방법이지만 막상 여행지에서 피곤에 지친 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런던과 파리에서 그토록 열심히 적었던 여행 일기를 다른 나라로 넘어가기 위해 파리 공항에서 노숙을 하던 밤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휴지통에 버려 버렸다. 직접 내 손으로 말이다. 유럽 여행하는 내내 쓰려고 일부러 두툼한 노트를 준비했는데.

   그 후로는 계획을 바꾸었다. 작은 미니 수첩을 사서 각 나라별로 여행기를 적기 시작했다. 여행기록도 그때그때 남겼다. 주로 카페에 앉아 쉴 때 글을 쓴다. 예쁜 명함이 있으면 가져와 저녁에 숙소에서 풀로 붙인다. 특이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간단하게 스케치도 한다. 영수증이나 예쁜 명함도 잊지 앉고 챙겨 수첩 맨 뒤에 붙인다. 이것 또한 많은 노력을 필요하지만 작은 수첩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을 보면 그 모든 수고를 감내할 만하다.

   6월 말에 다녀온 대만 여행 역시 어떤 수첩을 가지고 갈까 하는 고민부터 시작했다. 적당한 크기와 두께의 수첩을 고르고, 여행 틈틈이 쓰고 스케치를 하였다. 특히 대만은 도장의 천국이라 지하철 역사와 상점 곳곳에서 수첩에 도장 찍는 재미가 엄청났다(총 56종류의 도장을 찍었다). 처음으로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챙겨가서 15장의 사진을 찍었다. 짐이 무거운 걸 싫어해 그동안 한 번도 가져가지 않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마음이 살짝 바뀌었다. 얼마 전 8월에 떠날 오사카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제부터는 그 나라 언어로 된 책도 한권씩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이제야 마음먹은 거라 이미 다녀온 그리스와 이스탄불처럼 언제 다시 방문할지 기약이 없는 몇몇 머나먼 나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아프다).

   이 책을 보며 좀 더 여행노트를 예쁘게 만들어야겠다는 반성을 살짝 하였다. 이들의 정성에 비하면 나의 여행노트는 아직 초라하다. 그나마 다행히 앞으로 펼쳐질 여행들은 이 책으로 인해 한층 업그레이드 된 여행 노트가 만들어질 것 같다. 기대된다.

 

# 노트를 구매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노트를 보는 순간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적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느낌'이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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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Short Stories (Hardcover)
Faulkner, William / Modern Library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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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이고, 표지도 매우 산뜻하다. 커버를 벗기면 연한 갈색 다이어리 같다. 글씨체도 시원하다. 포크너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 소멸로 요즘 포크너 소설 번역본이 새로 속속 나오고 있다. 번역본 유혹에 넘어가기 전에 얼른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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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und and the Fury: The Complete, Definitive Edition (Paperback)
윌리엄 포크너 / Vintage Books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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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을 읽었다. 문장이 평이하고, 단어도 쉬운데 이해가 거의 되지 않는다. 이건 대체 뭐지? 누군가 포크너에게 이 책을 세 번이나 읽었는데 이해가 안된다고 불평하자 친절하게 답하였다고 한다. ˝그럼 네 번을 읽으세요˝ 음....그럼 난 몇 번을 읽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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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in August (Paperback) Vintage Classics 208
William Faulkner / Vintage Classics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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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의미심장하다. 구도만 보면 마그리트 `빛의 제국`인데, 과연 내용은? 글씨체가 다른 책들에 비해 굵다. 볼트체라고 하나? 깜짝 놀라 다른 빈티지 책을 찾아보니 안 그렇던데 이 책만 그러네. 읽다보면 적응이 되겠지만 처음엔 조금 어지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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