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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단상 ㅣ 동문선 현대신서 178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동문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더운 여름에 읽기에 쉽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며 읽어나간다. 좋은 책이지만, 깊이 생각하며 읽으면 어렵고, 대충 읽으면 사랑의 덧없음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 가끔 부재를 잘 견디어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 ‘소중한 이’의 떠남을 감수하는 ‘모든 사람’의 대열에 끼게 되는 것이다. 일찍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있도록 훈련된 그 길들이기에 나는 능숙하게 복종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던(거의 미칠 지경이었던) 그 길들이기에, 나는 젖을 잘 뗀 주체처럼 행동한다. 어머니의 젖가슴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동안 양분을 취할 줄도 안다.
이 잘 견디어낸 부재, 그것은 망각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간헐적으로 불충실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망각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기에, 가끔 망각하지 않는 연인은 지나침, 피로, 기억으로 긴장으로 죽어간다(베르테르처럼). 32
* 언어는 살갗이다. 나는 그 사람을 내 언어로 문지른다. 마치 손가락 대신에 말이란 걸 갖고 있다는 듯이, 또는 내 말 끝에 손가락이 달려 있기라도 하듯이, 내 언어는 욕망으로 전율한다. 이 동요는 이중의 접촉에 기인한다. 한편으로는 모든 담론 행위가 “나는 너를 욕망한다”란 유일한 시니피에를 은밀히 간접적으로 가리키면서 그것을 풀어주고, 양분을 주고, 가지를 치며 폭발하게 하는 것이라면(언어는 스스로 만지는 것을 즐긴다), 또 한편으로는 나는 그 사람을 내 말 속에 돌돌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이 만짐을 얘기하며, 우리 관계에 대한 논평을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 110
* 당신의 욕망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조금 금지하기만 하면 된다(금지 없이는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라면). X는 내가 그를 조금 자유롭게 버려두면서 그의 곁에 있기를, 때때로 자리를 비우면서도 “멀리는 가지 않는‘ 그런 유연성을 갖기를 바랐다. 199
* “난 널 사랑해”에는 여러 가지 사교적인 대답이 있을 수 있다. “난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 말은 한마디도 믿지 않아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등등. 그러나 진짜 거절은 ‘대답 없음’이란 말이다.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