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

 

오 주여, 내가 당신께로 가야 할 때에는

축제에 싸인 것 같은 들판에 먼지가 이는 날로 해주소서.

내가 이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낮에도 별들이 빛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내 마음에 드는대로 나 자신 선택하고 싶나이다.

내 지팡이를 짚고 큰 길 위로 나는 가겠나이다.

그리고 내 친구들인 당나귀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나이다-나는 프랑시스 잠

지금 천국으로 가는 길이지. 하느님 나라에는 지옥이 없으니까.

나는 그들에게 말하겠나이다-푸른 하늘의 다사로운 친구들이여,

날 따라들 오게나. 갑작스레 귀를 움직여

파리와, 등에와, 벌들을 쫒는

내 아끼는 가여운 짐승들이여...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이 짐승들 사이에서, 주여,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나도록 해주소서.

이들은 머리를 부드럽게 숙이고

더없이 부드러워 가엽기까지 한 태도로

그 조그만 발들을 맞붙이며 멈춰 섭니다.

그들의 수천의 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허리에 바구니를 걸친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곡예사들의 차나, 깃털이나 양털로 만든 차를 끄는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등에 울퉁불퉁한 양철통을 실었거나 물 든 가죽부대 모양

똥똥한 암당나귀를 업고 지친 발걸음을 옮기는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파리들이 귀찮게 둥글게 떼지어 달려드는,

피가 스미는 푸르죽죽한 상처들 때문에 조그만 바지를 입힌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주여, 나는 당신 앞에 이르겠나이다.

주여, 내가 이 당나귀들과 더불어 당신께 가도록 해주소서.

그래 영혼들이 사는 그 천국에서

내가 당신의 그 천국 시냇물에 몸을 기울일 때,

거기 겸손하고도 유순한 그들의 가난을 비추는 당나귀들과

영원한 사랑의 투명함에

내가 닮도록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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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

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드려야 할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

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빗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

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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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놀라워라. 조개는 오직 조개껍질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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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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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졸레졸레 도야지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란 사람들이 둘러서서

어듸 눈 오신 날 눈을 츠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라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이 가난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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