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나무

 

모과나무는 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다

빗물이 어깨를 적시고 팔을 적시고

아랫도리까지 번들거리며 흘러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비를 맞는다. 모과나무

저놈이 도대체 왜 저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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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여름비가 사납게 마당을 후려치고 있다

명아주 잎사귀에서 굴러떨어진 달팽이 한 마리가

전신에 서늘한 정신이 들 때까지

그것을 통뼈로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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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금 내 곁을 스치는

작은 바람결에도 나는

당신을 봅니다

봄바람인 걸요

 

지금 내 곁을 스치는

작은 바람결에도 나는

당신을 봅니다

꽃이 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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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바람부는 나무 아래 서서

오래오래 나무들을 올려다 봅니다.

반짝이는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그러면

당신은 언제 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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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 꿈은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에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겅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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