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들어라, 얘들아

너희 아버지가 죽었단다

그의 낡은 코트들로

너희에게 작은 자켓을 만들어 주마

그의 낡은 바지들로

너희에게 작은 바지를 만들어 주마

그의 호주머니 안에 그가 거기

넣고 했던 물건들이 있겠지

담배로 찌든

열쇠들과 동전들이

댄은 동전들을 줄 테니

저금통에 저금하렴

앤은 열쇠들을 줄 테니 그걸로

꽤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겠지

삶은 계속되어야만 하고

죽은 사람은 잊혀야만 한다

삶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착한 사람들이 죽는다 하더라도

앤, 아침밥을 먹어라

댄, 네 약을 먹어라

삶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정확히 그 이유는 잊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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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십 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십 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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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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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내 아침상 위에

빵이 한 덩이

물 한 잔

가난으로도

나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신 주여

 

겨울의 마른 잎새

한 끝을

당신의 가지 위에 남겨 두신

주여

 

주여

이 맑은 아침

내 마른 떡 위에 손을 얹으시는

고요한 햇살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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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판사

 

로스앤젤레스 법정 판사 앞으로

이탈리아 식당 주인도 왔다

판사는 미국 시민이 되고자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을 심사한다

이탈리아 식당 주인은 진지하게 준비하고 왔지만 낯선 언어의 장벽에 걸렸다

“부칙 8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는 심사 질문을 받고 머뭇거리다가 1492년이라고 대답했다

그 조항은 지원자에게 영어 지식을 규정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떨어졌다

더 공부를 하고 3개월 뒤에 다시 왔지만

그는 여전히 낯선 언어의 장벽에 걸렸다

이번에 받은 질문은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누구입니까”였다

그닁 대답은 1492년이었다 (큰 소리로 상냥하게 대답했다)

다시 거절당하고

세 번째 왔을 때 받은 질문은

“몇 년마다 대통령을 뽑습니까?”였다

세 번째도 다시 1492년이라고 대답했다

판사는 그에게 애정을 느꼈고

영어를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어떻게 사는지 듣게 되었으며

노동으로 어렵게 산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가 네 번째 나타났을 때

판사는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미국은 언제 발견되었습니까?”

 

1492년이라는 정확한 대답을 근거로

그는 시민권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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