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문화
야나기 무네요시 / 신구문화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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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움이 그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장소는 생활이다. 아름다움은 생활에 침투하고 생활과 접촉함으로써 더욱더 아름다워진다. 더 나아가서는 아름다움은 생활에 입각함으로써 비로소 그 정당한 존재를 획득한다고도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우리는 어떠한 아름다움보다 생활에 이바지하는 아름다움에 열의를 바쳐야 한다. 아름다움이 한가한 장소에 놀고 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현실 생활은 아름다움의 적이라고 하는 것처럼 중대한 오해는 없다. 참다운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현실 생활 속에 있으며, 또 현실 생활 속에 있어야만 건전할 수 있다.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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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로스 장식과 범죄
아돌프 로스 지음, 현미정 옮김 / 소오건축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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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목세공인은 열여덟 시간을 일하고, 미국의 노동자는 여덟 시간 일한다. 내가 밋밋한 깡통에 지불하는 만큼 장식된 깡통에 지불한다 해도, 노동시간의 차이는 그 노동자의 몫이다. 장식이 완전히 사라진다면-아무 수천 년 후에야 일어날 일이지만-인간은 여덟 시간 대신 네 시간만 일하면 될 것이다. 지금도 노동의 반은 장식을 위한 몫이기 때문이다. 장식은 허비된 노동력이며 그로 인해 허비된 건강이다. 언제나 이랬다. 오늘날에는 허비된 재료를 뜻하기도 하며 그래서 둘 다 허비된 자본을 의미한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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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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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17

 

 

*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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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지도 - 예술가의 초상, 그리고 그들의 네트워크
김미라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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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트루드는 예술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처럼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매일 매일 기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기적은 정말 날마다 오니까.”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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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미식수업 - 먹는다는 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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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먹고 싶지도 않은 것을 먹어서는 안됩니다. 가능한 한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식사를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만 합니다. 반대로 자신의 만족을 위해 다른 사람을 끌고 다니지 않는 배려심도 중요합니다. 억지로 누군가를 끌고 다니느니 혼자 먹겠다는 배짱이 필요합니다.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과 즐거움을 나누면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식사의 이상형이라고 한다면, 그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혼자서 식사하는 경험을 쌓아야만 합니다. 23

 

 

* 사이가 좋아 보이는 두세 명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상당히 좋은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친 후 계산할 때가 되면 더치페이로 계산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정이 뚝 떨어집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더치페이란 것이 식사에서의 경제와 정치 문제를 은폐하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어려운 이야기가 돼버렸군요. 물론 더치페이를 하면 확실히 공평하고, 뒷말이 나올 염려는 적겠죠. 하지만 먹는 일에 있어서, 특히 세련된 식사 자리에서는 공평함이나 합리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절호의 기회에 자신의 교양을 드러내는, 자신을 위한 투자와도 같은 것입니다. 절망적인 격차가 드러나는 세계란 말입니다. 공평함이나 합리성을 원한다면 패스트푸드를 드세요! 아, 또 저도 모르게 흥분하고 말았네요. 이 주제는 저에게도 눈물과 피가 얼룩진 기억을 불러일으켜서....70

 

 

* 그렇기에 시라스 씨처럼 행동하고 싶다면 시라스 씨와 비슷한 크기의 그릇을 가져야 합니다. 비교도 안 되는 사람이 똑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한테는 무리야!” 라고 포기하지 말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시간이 걸릴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격을 높여 나가겠다는 인생의 목표는 돈을 벌거나 출세하겠다는 것과는 수준이 확연히 다르기게 고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비싼 시계를 차고 고급 승용차를 몰아도 인간의 격이 낮은 사람도 많습니다.

가게에 격식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격이 있습니다. 인간의 격에 민감해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매너를 익히는 일이자 가장 중요한 질서 감각을 기르는 일입니다. 98

 

 

* 점심을 빵으로 때우면서 어쩜 그렇게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식사라고도 할 수 없는, 오히려 식사를 부정하는 음식을 섭취하면서 즐거워하고 그점에 의문을 느끼지 않는다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매 끼니마다 식사의 균형을 생각해서 충실하게 섭취하고 싶다, 의미 있는 식사를 하고 싶다는 자세를 갖추지 않는 한 미식에 대해서 아무리 고민한다 해도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138

 

 

* 이런 자세를 갖춰야 미식은 물론이고 풍족한 문화와 인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점심을 빵으로 때우고(때운다는 게 좋지 않은 단어이긴 합니다), 그 점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무신경함은 그런 풍족한 삶과는 정반대에 있다고, 인연이 없는 곳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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