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야네 말 ㅣ 창비시선 373
이시영 지음 / 창비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 곧
양들이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를 건너 귀가하고 있습니다
곧, 저녁입니다
* 대지의 잠
어제 내린 눈 위에 오늘 내린 눈이 가만히 닿았습니다.
“춥지 않니?” “아니.” “어떻게 왔어?” “그냥 바람에 떠돌다가 날려서.” “그래, 그럼 내 위에 누워보렴.” 둘은 서로의 시린 가슴을 안고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 바닥
가로등은 심심하여 빌밑을 헤적이다가
용기를 내어 은행나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깜짝 놀란 은행나무가 노오란 잎들을 우수수 쏟았다
가을이었다
* 마침내
그는 물가에 다다랐다
그리고 성큼성큼 물 위로 걸어갔다
마침내 호수가 맑고 잔잔하였다
* 춘천
소설가 오정희 씨가 서울 나들이를 위해 춘천 역사에 들어서며 어떻게 알았는지 금테 모자를 눌러쓴 귀밑머리 희끗한 역장이 다가와 이렇게 인사한다고 합니다.
“오 선생님, 춘천을 너무 오래 비워두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측백나무 울타리 가에서 서울행 열차의 꽁무니가 안 보일 때까지 배운한다고 합니다.
아, 나도 그런 춘천에 가 한번 살아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