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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처 소나타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영범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4월
평점 :
* “방탕은 사실 육체적인 것에 있는 게 아닙니다. 육체적 방탕은 추악한 일도 아니고 진정한 방탕도 아닙니다. 진정한 방탕이란 바로 육체 관계를 갖고 있는 여자에 대해 도덕적으로 자신을 해방시켜 버리는 데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해방을 제가 취해야 할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절 사랑했기 때문에 몸을 허락했던 여자에게 돈을 지불하지 못해 고통스러웠던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여자에게 돈을 보내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 여자와 아무런 도덕적 관련이 없다고 여긴다는 걸 보여준 후에서야 마음이 편안해진 겁니다. 26-7
* 이상한 일은, 아름다움이 곧 선이라는 완전한 착각이 자주 일어난다는 겁니다. 예쁜 여자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그걸 알아듣지도 못하고 똑똑하다고 합니다. 예쁜 여자가 추악한 말과 행동을 해도 사람들은 그걸 애교가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바보 같은 소릴 하지도 않고 추악한 짓도 하지 않으면 그녀가 정말 똑똑하고 도덕적이며 멋지다고 확신합니다. 38-9
* “선생님은 우리 계급의 여자들이 창녀촌의 여자들과는 다른 욕구에 따라 산다고 하시지만, 저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증명하겠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삶의 목표 그리고 삶의 내적인 내용에 따라 서로 다르다면, 이 차이가 외양에 확실히 반영될 거고 그럼 외양도 다를 겁니다. 하지만 불행하고 멸시당하는 여자들과 가장 고상한 상류사회의 귀족 처녀들을 관찰해 보세요. 옷차림이나 모자 모양도 똑같고, 향수도 똑같습니다. 팔이나 어깨, 젖가슴을 노출하는 것도 똑같고, 허리를 눈에 확 띄도록 팽팽히 조이는 것도 똑같지 않습니까? 또한 고가의 반짝이는 물건, 즉 보석에 대한 강렬한 욕망도 똑같고, 이들이 즐기는 유흥이나 춤과 음악 그리고 노래도 똑같습니다. 그 불행한 여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혹하는 데 열중하는 것처럼, 이 귀족 아가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차이란게 전혀 없습니다. 잘라 말하면, 단기간 이용되는 창녀들은 통상적으로 경멸을 당하지만, 장기간 이용되는 창녀들은 존경받습니다. 44
* “아이고!.....이 소나타는 무서운 작품입니다. 아니, 보편적으로 음악이란 무서운 겁니다. 그게 뭘까요?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음악이란 게 뭘까요? 그게 뭘 하는 걸까요? 아니, 뭣 때문에 음악이 그런 겁니까? 사람들은 음악이 영혼을 고양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터무니없는 거짓말입니다. 음악은 끔찍한 영향을 미칩니다. 저 자신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음악은 영혼을 전혀 고양하지 못합니다. 음악은 영혼을 전혀 고양하지도 가라앉히지도 못하고, 흥분시키거나 자극합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음악은 저 자신을 망각하게 하고, 저의 진정한 위치를 망각하게 하며, 저를 제 위치가 아닌 어떤 다른 위치로 옮깁니다. 음악의 영향을 받고 있으면 제가 느끼지 못하는 걸 느끼는 것 같고,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걸 이해하는 것 같고,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에는 하품이나 웃음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말로 이걸 설명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졸리지 않아도 하품하는 사람을 보면 따라서 하품을 하게 됩니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음소리를 들으면 따라서 웃게 됩니다.
음악은 저의 정신 상태를 작곡가가 가졌던 정신 상태로 즉시 본능적으로 옮기더군요. 저는 정신에 의해 작곡가와 하나로 결합되면서 작곡가와 함께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옮겨 다니지만,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크로이처 소나타>를 작곡한 사람은 베토벤이 아닙니까? 그는 자신이 왜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태가 의미 있었지만, 저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이처럼 음악은 오로지 자극할 뿐이지 끝나지 않는 법입니다. 호전적인 행진곡이 연주되면 군인들이 지나갈 겁니다. 음악이 감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춤곡을 연주하면 저는 춤을 춥니다. 음악이 감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EH한 미사곡을 연주하면 저는 성찬을 받습니다. 역시 음악이 감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극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극 속에는 뭘 해야만 한다는 게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음악은 아주 무섭고, 가끔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음악을 국가가 관장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되는 겁니다. 원한다면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최면을 걸어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옳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