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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 김갑수의 살아있는 날의 클래식
김갑수 지음 / 오픈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목차를 살펴봤을 때 끌리는 부분이 없었다. 단지 편안하게 읽고 싶어서였다. 이 정도는 나도 안다는 오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 고르는 데 있어 안목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의 예측을 깨고 글은 매력적이고 내용은 풍부하다. 책에 소개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느라 하루 종일 꼼짝할 수 없었지만 즐거웠다. 음악에 미친 저자, 그 몰입이 아름답고 아름다웠다.
* 늘 그런 식이다. 안 풀린 인생에는 날이 서는 법이어서 잘 풀린 인생이 기겁하고 달아나게 만든다. 51
* 누구든 겪어 보면 안다. 절망은 멋이 아니다. 그냥 죽음이다. 그 죽음에서 깨어나면 다른 인간이 되어 있는데 아주 더럽다. 강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강인한 인간은 참 더럽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절망하지 않는 내성이 생긴 것이다. 73
* 인간성 좋은 사람은 학문이나 예술분야에서 업적을 남기기 힘들다. 위아래 인간관계 챙기다 보면 어디 틀어박혀 무언가 천착하고 창조할 틈이 없다. 위인전류에 흔히 등장하는 포장을 뚫고 실체를 알아보면 실은 모나서 정 맞느라 상처투성이인 위인이 즐비하다. 203
*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내 성씨 내력을 추적해본 결과 고려조 외척 세력으로 잠깐 득세하고는 조선조 내내 잔반이었다. 사대부 가문 출신이 아닌데 그들의 풍습을 따라 할 이유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전 국민이 사대부 예법은 따르고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제사 거부가 실은 족보 때문만은 아니다. 발원지 중국에서조차 제자백가들의 여러 사상 가운데 하나로 여길뿐인 공맹사상. 그걸 조선조에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아 절대시했다고 해서 현대 공화정을 사는 지금 그 예법을 따를 이유가 없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추도식이라면 모를까 얼굴도 모르는 먼 조상을 왜 숭배 대상으로 삼는지 어릴 때부터 의문을 품었다. 조상 숭배보다는 살아 있는 가족,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신념이 같은 사람들과 연대감을 갖는 편이 낫다고 본다. 부모가 뭐라고 하지 않느내는 말도 들었는데 스무 살 넘은 사람이 부모 말에 순종만 하는 건 난처한 일이다. 성인은, 또한 지성을 가진 사람은 자기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277
* 언제나 느낀다. 왜 예술가, 작가, 연예인이 인간성까지 좋아야 할까. 성격이 나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면 그만큼 자기만의 개성을 창출할 기회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대중은 됨됨이가 나쁘다고 알려지면 그의 작품까지 함께 싫어하는 속성이 있다. 3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