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인문학
장석주 지음 / 호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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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산책자다. 날마다 걸으며 눈길 안으로 들어오는 거리, 도시, 풍경들을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느끼며 포식한다. 그것은 정신의 나태에 따른 비만을 예방하는 건강한 포식이다. 나는 목적이나 쓸모를 따지지 않고 걷는 걸 좋아한다. 야외에서 햇빛과 바람 받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나는 식물이 아니므로 굳이 광합성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걸음에 집중하며 내면으로 흐르는 여러 생각에 골똘해진다. 나는 이것을 ‘내면의 광합성’이라고 부른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다리가 흔들어 주지 않으면 정신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우리는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걷는다. 길에서 얻는 것은 감각의 환대, 느낌들의 풍요이다. 실내에서 야외로 나와 걷는 일은 분명 생각에 예기치 않은 활기를 불어넣는다. 저기 걷는 자의 씩씩한 걸음걸이를 보라! 걸음걸이는 삶의 환희와 약동을 표현한다. 29

 

 

* 점점 더 소음과 번잡스러움을 견디기 힘들다. 신경질적인 자동차 경적. 자동차가 급정거할 때 미끄러지며 내는 날카로운 소음, 윗층에서 울리는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이웃집의 텔레비전 소리.....소음과 분주는 마음을 갉아먹고 난청은 의식을 헐벗게 만든다. 반면 누구의 발길도 미치지 않은 정원과 골목에는 고요가 깃드는데, 이 서늘한 고요는 경황없이 바쁜 이들의 마음을 단박에 잡아챈다. 고요를 만나면 고요 속에서 가만히 서 있는다. 고요의 세계 안에서 빛은 사물의 색들을 선명하게 살려 내고 사물은 사물대로 그 확고한 형태를 되찾아 빛난다. 고요는 곧 질서요 투명함이다. 47

 

 

* 그럼에도 속절없이 책 읽기 속으로 인생을 우겨 넣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책 읽기가 ‘한 줌의 정적’을 얻는 일이고, 몰입을 통한 행복을 키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독서는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가장 뛰어난 도구다. 그 내면에는 활력이 가득하다. 우리는 고상하고 영적인 행위에 완전히 몰입해서 인생의 사소한 고통 따위는 물론, 시간과 숙명적인 죽음도 잊는다. 영원한 현재를 만끽하는 데 전념한다.”(린 샤론 슈워츠 <독서 때문에 망친 삶>)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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