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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해야 할 것
수잔 손택 지음, 김유경 옮김 / 이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손택의 책은 읽을 때마다 주눅이 든다. 그녀의 글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인물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일생 동안 작가의 호기심은 결코 마르지 않았기에, 그녀가 넘나드는 분야는 끝이 없다. 그 옷자락이라도 잡아볼까 싶어 이 두꺼운 책을 뒤적거린 무더운 8월의 오후.
*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그것을 보든,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것이 어떤 작품인지는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방 저편 멀리 있다 해도 누구의 작품인지를 우리는 안다.
이것은 과거의 회화와는 정반대로 20세기의 예술 경험(그리고 예술 창작)에서 두드러지는 특징들 중 하나이다.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예를 들면 서명하는 방식)을 창조해야 한다. 이 스타일은 자신을 최대한 구별짓는 회화적 언어이다.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예술가의 것임을 선포하는 방식인 것이다. 똑같은 동작이나 형태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작가는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겠지만, 화가(혹은 안무가)는 그렇지 않다. 반복성은 일종의 강렬함으로, 순수함으로, 힘으로 여겨진다. 60
* 여행이란 시각(그리고 다른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당신은 집에서 멀리 떠나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는 감각에 저장한 것들을 생각해보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66
* 3자 대담.
위엄 있는 관계. 모두 같은 쪽에 놓이지는 않는다. 셋은, 둘 그리고 하나로 나뉜다. 포크는 왼쪽에, 나이프와 스푼은 오른쪽에.
나이프는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식기로서는 다르다. 스푼 옆에 놓인 나이프는 꽤 가정적이 된다. 나이프와 스푼: 기이한 쌍이다. 그것들은 함께 가지 않는다. 당신은 그것들을 함께 사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늘 함께 있다.
포크는 외롭다. 늘 그렇다. 더 큰 세팅에서도 포크 옆에 둘 수 있는 것은 다른(작거나 큰) 포크뿐이다.
이것이 식사를 시작할 때 그것들이 배열되는 방식이다. 그것들은 양쪽에서 접시를 호위한다.
이제 손으로 먹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문명의 식사(대 과식)
먹고 나면 당신은 그것들을 접시 위에 깔끔하게 정돈한다.
알파벳 순서가 아니다. 중요도 같은 것이 있다 해도, 그것에 따른 순서도 아니다.
삼위일체, 하지만 꽤 의존적인.
그것들은 서로를 보충하는 듯하다.
우리는 이 셋을 함께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물론 따로 사용할 수도 있다. 102
* 춤을 환상의 창조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춤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육체에 대한 환상이다. 또한 지치지 않는 육체라는 환상을 더 확장시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무대에 올려진 육체의 변화를 춤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춤은 육체 안에 존재하는 무엇을 보여주는 동시에 육체를 초월하는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다. 춤은 더 높은 집중의 세계, 즉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집중이 하나가 되는 세계로 보인다. 114
* 만약 책이 사라진다면 역사도 사라질 것이며, 인류도 사라질 것입니다. 저는 당신(보르헤스)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책은 우리의 꿈과 기억의 자의적 집합이기도 하지만, 또한 자기초월의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독서를 단순한 도피, 즉 ‘현실’의 일상 세계를 떠나 상상의 세계, 책의 세계로 가는 도피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책은 그 이상의 것입니다. 책은 온전한 인간이 되는 방법입니다. 343
* 30년이 지난 지금, 진지함이라는 가치는 거의 모두 훼손되었으며, 가장 지적이고 설득력 있는 가치는 연애오락 산업에서 산출되고 있다. 이제 진지한 것, 그리고 뛰어난 것이라는 생각 자체도 별스럽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것이 기분에 의한 자의적 결정이라고 여겨지는 때조차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