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대 거침없는 사랑
김용택 / 푸른숲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배병우의 소나무 그림이 조그맣게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 시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온통 사랑으로 가득한, 하루에 한 편씩 사랑하는 사람에게 읽어 주기에 가장 알맞은, 어느 곳을 펼쳐 보아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도저히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시집. 대체 이 시인은 어떠한 감성을 지녔기에 가장 단순한 언어의 조합으로 이토록 완벽하게 사랑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시인의 수필이나 시를 읽을 때마다 늘 감탄하고 행복하지만 특히 이 시집은 아름답다. 책 속에 있는 모든 시를 읽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리지만, 읽고 또 읽어도 자꾸 손길이 간다. 수일동안 하염없이 시집을 들춰보며 사랑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한다. 아름답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을까, 사연 없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 더 많이 사랑해야지, 더 많이 표현해야지, 자꾸 자꾸 다짐하며 책장을 넘긴다.
*다 당신입니다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 꽃 피는 대로
살구꽃이 피면은 살구꽃이 피는 대로
비오면 비오는 대로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손잡고 싶어요
다
당신입니다
* 눈 오시네
어,
눈 오시네
눈이 와
그
산에 눈이 먼저
오시네
눈 먼저 오시고
그대
오시려나
어, 눈 오시네
눈이
와
하얀
눈송이가
산
그리며
그대 곱게 그려내네
* 너무 먼 당신
초승달이 저녁 하늘에 걸리고
풀벌레가 밤을 새워 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멀고
저렇게 생각하면 당신은 내게 너무 무겁습니다
금새 질 달 보며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강에 쉼 없이 흐르는
물이고 싶습니다
당신의 산과 들에 내리는
비이고 싶습니다
당신의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나는 아침 이슬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마음 가장 자리에 앉는
눈송이이고 싶습니다
당신이 가시는 길 앞에 달빛이고 싶고
잠든 당신의 곁에 머무는 바람결이고 싶고
물가에 앉아 물 보는 당신의 그 마음을 거드는 나는
잔물결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세상에 당신을 가두고
당신의 세상에 내가 살고 싶습니다
* 그대, 거침없는 사랑
아무도 막지 못할
새벽처럼
거침없이 달려오는
그대 앞에서
나는
꼼짝 못하는
한떨기 들꽃으로 피어납니다
몰라요 몰라
나는 몰라요
캄캄하게
꽃 핍니다.
* 저 들에 저 들국 다 져불것소
날이면 날마다
내 맘은
그대 오실 저 들길에 가
서 있었습니다.
이 꽃이 피면 오실랑가
저 꽃이 피면 오실랑가
꽃 피고 지고
저 들길에 해가 뜨고
저 들길에서 해가 졌지요
그대 어느 산그늘에 붙잡힌
풀꽃같이 서 있는지
내 몸에 산그늘 내리면
당신이 더 그리운 줄을
당신은 아실랑가요
대체 무슨 일이다요
저 꽃들 다 져불면 오실라요
찬바람 불어오고
강물 소리 시려오면
내 맘 어디 가 서 있으라고
이리 어둡도록 안 온다요
나 혼자 어쩌라고
그대 없이 나 혼자 어쩌라고
저 들에 저 들국 지들끼리 다 져불것소.
* 당신 없는 하루
해 뜨니
앞 강물은 저리 흐르요
당신 떠난 이 나라
쳐다볼 곳 없는 내 눈길이
먼 허공을 헤매이고 헛헛한 마음도
이리 기댈 곳 없으니
이 맘이 시방 맘이 아니요
차라리
이 몸 이 맘
이 강물이 다 가져가불고
저 강물에 얼른얼른
오늘 해도 져불면 좋것소
* 사랑
사랑은 혁명입니다
거기
사람들이 흰밥 먹으며 사는
아름답고 큰 나라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