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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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멋진 책을 이제야 읽다니. 왜 아무도 이 책을 권하지 않았던가 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울스턴 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어떤 내용인지 알면서도 미루고 미뤄 아직까지 제대로 읽지 않았으니 할 말이 없다. 울프의 소설 중 <댈러웨이 부인>과 <제이콥의 방>을 읽으며 그 난해함과 지루함 덕분에 울프의 다른 책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는데 이 책은 정말이지 소설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강연을 글로 옮겼기에 다를 수 밖에) 읽으면서 이게 정말 울프가 쓴 거 맞아 의심이 들 정도이다. 우선 재밌다. 그녀의 수준높은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또한 울프가 글에도 언급했듯이 책을 읽고 나면 시야가 한층 넓어진다.

   이 글은 한 여자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작가가 정리하여 6개의 장으로 만든 글이다. 19세기를 살고 있는 작가는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 청탁을 받고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대학 주변을 거닌다. 그러다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들어가려는데 문 밖에서 한 신사가 여성이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작가의 탐구가 시작된다. 왜 여성은 역사에서 소외받아야만 하는지, 왜 여성은 가난해야 하는지, 왜 훌륭한 여성 작가는 나올 수가 없는지. 울프의 글을 읽다보면 같은 여성으로써 공감이 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남녀가 평등하다고 믿는 21세기를 사는 현재의 여성으로써도 이토록 화가 나는데 19세기를 살았던 여성들은 오죽했을까. 특히 영민하지만 자신의 예술적 자질을 발휘하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은 얼마나 분노와 아픔으로 가득 찼을까. 울프는 말한다. 여성이 일 년에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그렇다면 여성도 셰익스피어 같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울프는 내가 알던 난해하고 어렵던 울프가 아니었다. 예전에 한 작가가 어느 글에서 자신에게 딸이 있다면 <보바리 부인>을 꼭 읽힐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꼭 이 책을 딸에게 읽으라고 권할 것이다. 맨 처음 언급한 두 권의 책도 함께. 왜냐하면 아직도 울프가 저항했던 수많은 분야들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실상 마음과 몸, 두뇌가 함께 결합되어 있고, 앞으로 백만 년이나 지나면 모를까 각각의 칸막이 속에 격리 수용된 것이 아니기에, 훌륭한 저녁 식사는 훌륭한 대화를 나누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인이지요. 저녁 식사를 잘 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32

 

* 여성은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닌 거울 노릇을 해 왔습니다........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폴레옹과 무솔리니는 여성의 열등함을 아주 힘주어 강조합니다. 만일 여성이 열등하지 않다면 거울은 남성을 확대시키기를 그만둘 테니까요. 56-7

 

* 왜냐하면 걸작이란 혼자서 외톨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일단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입니다.....지금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어 있는 에이프라 벤의 무덤에 모든 여성들은 꽃을 바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성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준 사람이 그녀였으니까요. 101.

 

* 하지만 전반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것은 남성의 가치입니다. 조야하게 말하자면, 축구와 스포츠는 중요합니다. 반면 유행의 숭배와 옷의 구입은 하찮은 일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삶에서 픽션으로 불가피하게 전달됩니다. 이것은 전쟁을 다루므로 중요한 책이라고 비평가들은 평가합니다. 이 책은 응접실에 앉은 여성의 감정을 다루고 있으므로 보잘것없습니다. 전쟁터에서의 한 장면은 상점에서의 한 장면보다 더 중요하지요. 도처에서 더욱 미묘하게 가치의 차별이 지속됩니다. 113.

 

* 여성은 자기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예술로서 글을 쓰기 시작하겠지요. 122

 

*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좋아했다”(마리 카마이클 <사랑의 창조> 소설 중) 나는 이 문장을 읽었지요. 그리고 그곳에 거대한 변화가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아마 문학사상 처음으로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좋아했을 것입니다.....문학 작품에 나타난 여성들 간의 관계는 문학 작품에 전시된 빛나는 허구의 여성들을 재빨리 회상하면서 생각하건대, 너무나 단순합니다. 아주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고 시도조차 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거의 예외없이 여성은 남성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만 제시됩니다.

 

* <리어 왕> <엠마> 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를 읽으며 나는 최소한 그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런 책들을 읽고 나면 감각기관이 신기한 개안수술을 받은 듯 그 이후로는 사물이 더욱 강렬하게 보이지요. 세상은 그 덮개를 벗고 더욱 강렬한 삶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166

 

*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오 하고 나는 말할 겁니다. 그 말을 고귀하게 들리게끔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오로지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십시오.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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