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이빨 1
제이디 스미스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작가가 스물다섯살에 쓴 장편소설이다. 25살 이라고!!!!! 재능 있는 작가는 시작부터 다르구나. 와우. 작가는 영국에서 자메이카 이민자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그녀가 주변인 혹은 제 3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느 책에선가 <하얀 이빨>을 언급했길래 읽어봐야지 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책을 펼쳤다. 이유는 단 하나. 25살의 젊은 아가씨의 글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은고지 아디치에의 소설이 그러했듯 이 소설 또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스카 와오의 짦고 놀라운 삶>과 비슷한 느낌이다. 어처구니 없는 해학적인 삶 아래 깔린 슬픔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영국에서 소외된 주변인이다. 그들은 자신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깨달았고 미미하고 뿌리가 없는 것임을 안다. 흑인, 황인, 여호와의 증인, 이슬람 교도, 레즈비언... 이들이 어떻게 주류사회에 동화되어 살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발을 붙일 수가 없지. 그렇기에 이들의 삶은 괴롭고, 억울하지만 정상인 영국인들(혹은 나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이 보기에 이들의 행동은 황당하고, 희극적이고, 어처구니가 없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각자 다른 시선들의 어긋남을 천연덕스럽게 보여준다. 이 소설의 즐거움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큰 그림을 그려보자면 이야기는 웰레스덴 그린에 사는 아치 존스와 사마드 미악 익발의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국인 아치는 자메이카에서 이민 온 흑인 클라라와 결혼하여 딸 아이리를 낳았다. 방글라데시 출신 익발은 방글라데시아의 아내 알사나가 있고, 쌍둥이 아들 마기드와 밀라트를 낳았다. 여기에 중산층 영국인 샬펜 가족이 더해지면서 소설은 정신없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모든 일을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는 대머리 아치, 앞니가 모두 빠져버린 클라라, 모두에게 왕따를 당하는 라이언 톱스, 열렬한 여호와의 증인인 클라라의 어머니 호텐스, 한 손이 불구이자 열렬한 이슬람교도인 사마드,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한 어린 알사나, 대마초를 입에 물고 다니는 건달 밀라트, 방글라데시아에서 더 영국적인 아이로 성장한 마기드, 뚱뚱하고 자신없는 아이리, 쥐 연구에 일생을 바친 마커스, 강경파 동물 애호 협회에 소속된 조슈아....이들의 삶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표처럼 흔들린다.

   이들은 소외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을 당하고, 영국 문화에 섞이지 못하고, 종교가 다른 이들은 내면의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른다. 현실을 감당하기 힘든 이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붙잡고, 과거의 영광을 추구하며, 어떤 이는 오로지 현재에만 충실한다. 이들은 불안하다. 이유없는 불안과 분노로 인해 고통받는다. 백인들의 우월한 하얀 이빨이 이들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떠올랐다. 백인이 다른 인종(문화, 종교, 사상)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얼게 한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얽히고 얽힌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이게 하는 글의 전개가 대단하다. 다만 그러고 난 후 갑자기 소설이 끝나버려 조금 아쉬웠다. 3권까지 만들어주세요.

 

* 종교가 마약이라면 전통은 훨씬 더 사악한 진통제다. 좀처럼 사악해 보이지 않으니까. 종교가 꽉 조이는 끈, 고동치는 정맥, 그리고 바늘이라면, 전통은 훨씬 더 가정적이고 복합적인 산물이다. 301. 1

 

* 그러나 밀라트는 다른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밀라트이며, 출신지가 어디이건 영국인들에게는, 파키이며 카레 냄새가 나고 성적 정체성이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고 아니면 직업 없이 국가의 돈이나 축내고 아니면 일자리를 친척들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또한 자신이 치과 의사나 가게 주인이나 카레 나르는 사람은 될 수 있어도 럭비 선수나 영화 제작자는 될 수 없으며, 모국으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여기서 근근히 생활비나 벌어야 하며, 코끼리를 숭배하고 터번을 두르고 자신처럼 생기고 자신처럼 말하고 자신처럼 느끼는 사람은 최근에 살해당하지 않는 이상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간단히 말해, 그는 이 나라에서 얼굴도 목소리도 없는 존재였다. 365. 1

 

* 사회적 변신의 귀재.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기저에는 언제나 분노와 아픔이 깔려 있었다. 어디에나 소속되는 사람들이 느끼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느낌. 이 유약한 지점이 바로 밀라트를 가장 사랑받는 아이로 만들었다. 15. 2

 

* 영국인이 인자함을 베풀려 할 때는 우선 반드시 그 이유를 물어보아야 한다. 거기엔 항상 이유가 있으니까. 14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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