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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모옌 작가의 세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모옌의 입담은 가히 환상적이다(천명관의 <고래>가 떠오른다). 중국 인민들의 비루하고 처참한 삶을 천연덕스러운 어조로 그려낸다. 그들의 처지에 마음이 아프다가도, 웃음이 나는 건 다 작가의 글 솜씨 덕이다. 주인공들이 늘 배고픔에 허덕이는 하층민들이기에 작품에서 음식 등장은 필수이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만두, 불에 볶은 소 불알, 파릇파릇한 부추, 미끈한 고구마.... 어찌나 맛깔스럽게 먹거리들을 묘사하는지 소 불알조차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는 평생을 착실하게 살아온 60세의 딩 사부 이야기이다. 불행하게 그가 근무하던 공장이 은퇴를 한 달 남긴 시점에서 문을 닫게 되어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주인공은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연인들을 위한 아담한 휴게소이다.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모텔 정도가 되겠다. 그는 숲 속에서 버려진 버스를 한대 발견하고 그 안을 말끔히 정리한 후 콘돔, 음료수, 마른 안주 등을 구비해 놓고 연인들에게 빌려준 후 돈을 받는다. 물론 장사는 잘 되고 그는 승승장구이다.
‘소’는 거세당한 소 솽지가 출혈이 심해 주저앉으면 상처가 곪아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소를 계속 서 있게 하도록 임무를 맡은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솽지와 함께 며칠 밤낮을 걸어다녀야만 하는 샤오 뤄한과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도 걸어야만 하는 소. 뤄한의 삶도 끔찍하지만 소의 삶은 차마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내가 꼭 솽지가 된 느낌이었다.
‘삼십 년 전의 어느 장거리 경주’는 한 시골 마을 농장에 정부로부터 ‘우파분자’로 찍힌 여러 사람들이 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우파들은 교수, 배우, 운동 선수, 회계사, 대학생, 작가 등 중국에서 내노라 하는 다재다능한 인사들이지만, 우파분자로 낙인찍혔기 때문에 시골에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들의 탁월한 솜씨들이 천상유수로 펼쳐지고, 시골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릴 뿐이다. 그 중에서 서술자인 ‘나’는 주충런이란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런저런 사건 끝에 마지막에 학교에서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고, 경기가 끝날 무렵 경찰들이 운동장에 들이닥친다. 이때 주충런이 경찰관과 나누는 대화를 읽으면 누구라도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