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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걸음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맥신 홍 킹스턴의 <여전사>를 처음 읽었던 때가 떠오른다. 그녀가 풀어놓는 중국의 신화와 전설들에 흠뻑 취해 눈과 목을 꾹꾹 누르면서도 몇 시간을 꼼짝 못하고 읽었다. <열세 걸음>을 펴고 ‘두 걸음’까지 읽은 후, 이 책이 도중에 나를 놔두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였다. 결국 오후 내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고, 간식을 먹으며 책에 붙들려 있었다. 겨우 읽기를 마친 나는 뻣뻣해진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책을 노려보고 있다. 때로는 장편 소설을 읽는 것이 두렵다. 위대한 소설은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열세 걸음>이란 제목은 러시아 민담에서 비롯되었는데, 두 발로 종종 뛰지 않고 한 발 한 발 걷는 참새를 본 사람에게는 행운이 온다는 민담이다. 참새가 열 두 걸음까지 걷는 것을 보는 사람은 열 두 가지의 다른 행운을 얻게 되지만, 열 세번째 걸음은 절대 보면 안된다. 열세번째 걸음을 보게 되면 앞서의 모든 행운이 갑절의 악운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목차를 보니 열세 걸음까지 있다. 이런, 그렇다면 열두 걸음까지만 읽고 책을 덮어야 하나? 한 걸음, 두 걸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심장이 두근거리고, 소설은 긴장과 갈등을 더해간다.
소설은 중국의 소도시에서 중학교 물리 선생인 팡푸구이가 수업 중 쓰러져 죽는 사건을 계기로 전개된다. 이 죽음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교사 봉급을 인상하고 교사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그는 교직을 위해 헌신한 영웅으로 추대된다. 하지만 사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과로로 기절했을 뿐이다. 장례식장으로 이송할 때쯤 그는 깨어나지만 그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왜? 그의 죽음이 도시의 교사들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고, 교사들의 열악한 처지를 고발하고 있으니까? 따라서 그는 살았지만 대의를 위해 살아나서는 안된다. 팡푸구이는 집으로 가나 아내는 그가 귀신이라고 받아주지 않는다. 그는 할 수 없이 이웃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린다. 이웃집에는 그의 동료 물리교사인 장츠추와 장례미용사인 그의 아내가 살고 있다. 팡푸구이의 사정을 들은 리위찬은 그의 얼굴을 남편 장츠추와 똑같이 성형을 시킨다. 그리고 팡푸구이를 다시 학교로 보내고, 장츠추는 장사를 해서 돈을 벌도록 계획한다.
이제 팡푸구이는 가짜 장츠추가 되어 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고, 진짜 장츠추는 밖에서 물건을 팔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괴로워한다. 상황은 점점 비극으로 치닫는다. 과부가 된 팡푸구이의 아내 투샤오잉은 토끼가죽 벗기는 공장에서 공장 작업 주임과 밀애를 나누다 들키고, 자살한다. 팡푸구이도 장츠추로 살아야 하는 삶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장츠추는 장사를 하러 나섰지만 돈도 벌도 못하고, 유치장에 갇히기도 하고, 범죄자로 오해를 받기도 하며 온갖 고생을 겪으며 유령처럼 도시를 떠돈다. 모두들 본래의 자신을 잃고, 어찌해야 될지 몰라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이다(왠지 토마스 하디의 작품이 떠오른다).
등장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은 개인의 탓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병든 사회체제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끔찍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학교와 사회에서는 입시와 성공만을 강조하고, 모든 행위들은 국가의 충성을 위해 행해져야 되며, 매체는 대중을 조작하고, 신문기사는 진실을 왜곡한다.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 수가 없다.
소설을 풍부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매력은 형식에서 비롯된다. 소설의 화자는 철망에 갇힌 ‘나’가 분필을 먹으며 ‘우리’에게 말하는 형태이다. 한편으로는 듣는 ‘나’가 ‘너’에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화자와 청자가 수시로 위치를 바꾸어 이야기를 구술하기 때문에 시간과 사건이 뒤엉키고 관점이 달라진다. 이렇게 복잡한 구성을 취하면서도 이렇게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에게 누가 존경을 표하지 않으랴.
# 그녀는 참새가 병아리처럼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걸 보면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진다고 했지. 참새가 한 걸음 내디디면 자네한테 횡재수를 안겨주고, 두 걸음을 내디디면 관운을 안겨주고, 세 걸음을 내디디면 여복을 안겨주고, 네 걸음을 내디디면 건강운을 안겨주고, 다섯 걸음을 내디디면 자세의 기분이 늘 유쾌한 상태를 누리게 되고, 여섯 걸음을 내디디면 자세 사업이 순조로워지지. 일곱 걸음을 내디디면 자네의 지혜가 곱절로 늘어나고, 여덞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가 자네한테 잘하고, 아홉 걸음을 내디디면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치게 되며, 열 걸음을 내디디면 자네 생김새가 멋지게 바뀌고, 열한 걸음을 내디디면 자네 아내가 아름다워지며, 열두 걸음을 내디디면 자네 아내와 자네 애인이 화목하게 어울려 자매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는 거야. 하지만 절대로 열세번째 걸음을 보아선 안 된다네. 만일 참새가 열세번째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가는 앞서의 모든 행운이 죄다 곱절의 악운으로 바뀌어 자네 머리 위로 뚝 떨어져내린다지 뭔가! 4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