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통 민음사 모던 클래식 51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The Thing around your neck(원제)

  Ted 강연을 즐겨 본다. 소원 중 하나는 테드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것이다. 입장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싸 복권이 당첨되지 않는 한 갈 확률이 거의 제로이긴 하지만. 예전에 핸드폰으로 한 흑인 작가의 강연을 보았다. 젊은 여성이었는데 강연이 얼마나 좋던지. 그녀가 말한 내용은 모든 사람에게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있으니 한 면만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보통 우리는 아프리카 하면 무지하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꿈과 희망 없이 겨우 살아가는 나라들을 떠올린다. 미국인에게 멕시코인은 불법체류자들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한국인이 중국인이나 일본인 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듯이. 그녀는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하나의 이야기만 보고 듣지 말라고. 그 강연은 매우 훌륭했고, 한동안 내 카카오톡 문구는 ‘No single story'였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서 잊혀졌다.

  얼마 전 지인에게 좋은 작가를 소개해 달라고 하자 그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아디치에를 아냐고 물었다. 아디? 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그는 무척이나 길고 어려운 이름을 노트에 적어주었고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이름을 검색했다. 그래, 바로 그 젊은 흑인 작가이다. 테드 강연에서 그녀가 작가라고 소개했을 때, 사실 그녀가 너무 젊고 멀고도 먼 아프리카의 흑인 작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의 책이 한국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 또한 그녀가 미국이나 영국처럼 주류가 아닌 ‘흑인 작가’ 이고, 무엇인가 위대한 작품을 쓰기엔 너무 ‘어리고’, 아프리카는 왠지 ‘한국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이 한국에 알려질 리가 없다는 하나의 인식(편견)만을 은연중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았다. 이미 민음사에서 그녀의 책이 두 권이나 번역되어 나온 사실을.

  <숨통>은 아디치에가 32살에 쓴 단편집이다. 사람들이 21세기의 치누아 아체베의 딸이라는 찬사를 보낼 정도로 그녀의 글은 매력이 있다.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났으나 19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석사학위를 마쳤다. 두 나라의 삶을 모두 경험하였기에 그녀의 단편들 역시 나이지리아와 미국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나이지리아인들의 삶을 보여준다. 나이지리아의 부정부패와 가난, 폭력과 미신들이 그대로 보여지고, 미국을 동경하는 나이지리아인의 모습, 미국으로 이민을 와 그곳의 문화에 적응하려는 나이지리아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미국에 살고 있는 그들은 주변인으로 분리된다. 한 나라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주변인이 된다는 것. 은근한 혹은 대놓고 인종차별을 받는다는 것.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친구와 시드니에 있는 어느 고급스런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여종업원 두 명이 황인종인 우리를 쓱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속닥거리며 깔깔 웃어대는 모습을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로마에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할 때 앞에 서 있었던 한 노인이 내 무릎에 침을 뱉으며 뭐라고 중얼거렸던 그 순간 느꼈던 분노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이후 백인이 사는 나라에서 황인이나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모멸을 견뎌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영어에 빨리 익숙해지기 위해, 모국어를 쓰지 않고 영어만 사용하며 백인들 앞에서 되도록이면 잘 보이기 위해 활짝 웃는다. 미국 영주권을 받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며, 백인과 가짜 결혼을 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이 음식을 남기고 비싼 유기농 야채를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모든 일에 약속을 정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놀라기도 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나이지리안 사람들을 넘어 다른 주변인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미국에서 그들이 사는 모습은 한국인과 바꾸어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소설은 흥미진진하고 굉장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책을 덮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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