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동산 지만지 희곡선집
안톤 체호프 지음, 강명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반적으로 체호프의 4대 희극이라 함은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나무 동산>을 일컫는다. 특히 이 작품은 1904년에 체호프의 생일에 초연되어 그에게 기쁨을 주었지만, 그해에 건강 악화로 사망하였다. 체호프의 이름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하고 나 역시 익숙하지만, 사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따라서 더 이상 버티기엔 양심에 찔려 약간의 의무감을 갖고 읽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벚나무 동산>이다.

  간단히 줄거리를 말해보자면, 선조부터 대대로 내려온 벚나무 동산의 주인인 여지주 류보비가 여러 사정으로 돈을 흥청망청 쓰다 빚을 지고 결국 벚나무 동산을 팔게 된다는 내용이다. 총 4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막은 6년 전 남편이 죽고 7살 난 아들이 강물에 빠져 죽자 파리로 떠난 루보비와 그녀의 딸 아냐가 다시 벚나무 동산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루보비는 파리에서 새로운 남자를 만났으나 그 남자는 돈을 마음대로 쓰고, 병까지 걸려 그녀는 몇 년 동안의 병 간호로 지친 상태이다. 게다가 루보비 또한 돈에 대한 현실감각이 없고, 불쌍한 이들을 절대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빚은 점점 늘어난다. 상인 로파힌이 그녀와 그녀의 오빠인 가예프에게 벚나무 동산의 나무를 벌목하고, 그 땅을 별장으로 임대해서 그 임대료로 은행 이자를 갚는 방법이 유일하다고 제안하나 그들의 로파힌의 말을 귓등으로 흘린다.

  2막에서는 하인 두냐샤와 야사가 등장한다. 두냐샤는 야사를 좋아하지만 야사는 두냐샤를 귀찮아한다. 나이든 하인 피르스는 농노해방이 되었지만, 자유를 택하는 대신 오랫동안 이 집에 남아 봉사하고 있다. 트로피모프는 졸업하지 않고 오랫동안 대학생활을 하는 대학생이다. 그는 철학적이고 멋진 말을 구사하며, 아냐는 그런 그를 좋아한다.

  3막에서는 집에서 무도회가 펼쳐지고 있다. 루보비와 가족들은 경매에 넘어간 벚나무 동산이 어떻게 되었는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들은 벚나무 동산이 로파힌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4막에서 류보비의 수양 딸 바랴와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끝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로파힌의 모습이 나타난다. 결국 류보비는 다시 파리로 떠나게 되고, 벚나무 동산은 벌목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는 오직 피르스뿐. 기운 없이 자리에 눕는 피르스, 정적에 잠기며 멀리 동산에서 도끼로 나무 찍는 소리만 들린다.

  작품을 읽으며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올랐던 장면은 벚나무 동산이었다. 봄에 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류보비는 어릴 적 벚꽃 향기를 맡으며 마음껏 동산을 뛰어다녔겠지. 겨울이면 가지마다 새하얗게 내려앉은 눈을 보며 따뜻한 차를 마셨겠지. 그토록 아름다운 벚나무 동산을 왜 지키지 못했을까? 류보비의 무책임하고 나약한 모습에 화가 난다. 지주의 딸로 곱게 자란 그녀였기에 견디기 어려운 현실을 차라리 외면하려고 했던 것일까? 무언가를 해보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만년 대학생인 트로피모프에게도 화가 난다. 그의 말은 정의롭고 아름답다. 그러나 정작 그의 삶은 어떠한가? 현실을 마주칠 용기가 없어 ‘대학’이라는 상아탑에 숨어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그의 모습을 멋지게 생각하는 아냐도 바보 같다. 지적인 겉모습에 쉽게 속고 마는 어리석은 아냐.

  등장인물들에게 화가 나는 것은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에서 나약하고, 어리석고, 무책임한 나의 단점들을 발견하기 때문에 속이 상하는 것이다. 체호프의 다른 작품을 읽기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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