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세기 영국 명시 낭만주의 시대 1
김천봉 엮음 / 이담북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윌리엄 블레이크와 로버트 번즈 두 시인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블레이크는 1757년 런던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환영을 보고 미래를 예언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는 미술학교에 입학하나 가정 형편으로 4년만에 그만두고 한 판화가의 도제로 들어간다. 1784년에 판화가게를 열었으나 몇 년 후 망했고, 그 후부터 죽을 때까지 책과 잡지에 넣을 삽화를 제작하면서 궁핍하게 살았다. 그의 삽화들은 대부분 손수 채색한 색판들을 겹쳐 찍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으며 자신의 시화집 또한 판화로 제작하였다. 책에는 각각의 시와 함께 삽화가 실려있는데 언제 저걸 다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멋지다. 시들도 좋다. <순수의 노래>, <천국과 지옥의 결혼>, <경험의 노래>, <밀턴>,<예루살렘> 등의 시집이 있다.
꼬마 흑인소년
울 엄마가 남쪽 야생에서 나를 낳았어,
그래서 까매, 하지만 오 나의 영혼은 하얘!
천사처럼 새하얀 영국 아이야,
하지만 난 까매, 마치 빛을 빼앗긴 것처럼.
울 엄마가 나무 아래서 날 가르쳤어.
한낮 더위를 앞에 두고 앉아
그녀 무릎에 나를 얹고 입맞춤하고는
동쪽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어:
“떠오르는 태양을 봐라: 저기 신이 살아,
그분이 빛을 주고 열기를 보내주시어
꽃과 나무와 짐승과 사람들이 아침에
위로 받고 한낮에 기쁨을 누린단다.
“우리는 대지에 잠시 머물 뿐이란다.
사랑의 광선 견디는 법 알게 되면
이 까만 몸도 햇볕에 그을린 얼굴도
구름 같은, 그늘진 숲 같은 것일 뿐.
“우리 영혼이 더위 참는 법 배우면
구름 걷히고 그분 목소리 들려올 테니,
‘숲에서 나와라, 사랑하는 아이들아,
내 금빛 텐트 에우고 양처럼 기뻐해라.”
울 엄마가 그리 말하며 내게 입맞춤했어.
그래서 나도 꼬마영국소년에게 그리 말해:
내가 까만 구름, 그가 흰 구름에서 벗어나
신의 텐트 에우고 양처럼 기뻐하는 날,
내가 그늘 되어 가려주겠다고, 그가 참고
우리 아버지 무릎에 기쁘게 기댈 때까지.
이내 내가 일어나 그의 은색 머리칼 쓰다듬고
그와 하나 되면 그도 날 사랑하게 될 거라고.
독 나무
나는 내 친구에게 화를 냈다.
나의 불노를 말했고, 나의 분노는 끝났다.
나는 내 적에게 화를 냈다:
나는 그걸 말하지 않았고 나의 분노는 자랐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 밤이나 아침이나
내 눈물로 거기에 물을 주고,
미소와 모호한 거짓 간계들로
거기에 볕을 쏘여주었다.
그것이 밤낮으로 자라나더니
이윽고 빛나는 사과 하나 열렸다.
나의 적이 그게 빛나는 것을 보고
그게 나의 것임을 알았다 -
그리고 밤이 장대를 덮었을 때
나의 정원으로 몰래 들어왔다;
아침에, 나의 적이 그 나무 밑에
쭉 뻗어 있는 것을 보고, 기뻤다.
로버트 번스는 1759년 스코틀랜드 에어셔에서 태어났다. 로버트는 가정 형편이 안좋아 기초교육밖에 받지 못했으나, 그의 문화적 감수성과 생생한 삶의 체험이 아름다운 시들로 승화되었다. 번스는 바이런 못지않게 수많은 염문을 뿌리며 여러명의 사생아를 낳았다. <주로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씌어진 시들>이 첫 출간되었고, 이 시집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늘 가난했던 농부시인 번스는 심장병으로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씌어졌다. 책의 저자는 방언으로 쓰인 단어 옆에 현대영어로 각주를 달아놓았다. 번즈는 서민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감정을 서민들 자신의 목소리로 전통 민요풍의 가락에 맞춰 표현하였다. 번스의 시는 위트가 넘쳐 재밌다.
생쥐에게
보금자리에 있던 생쥐를 쟁기로 갈아엎은 일에 대하여,
1785년 11월
작고 매끄러운, 움츠러들어 바들대는 짐승,
오, 네 가슴이 덜컥 겁을 집어먹었구나!
놀라 그리 서둘러 달아나지 않아도 돼
그토록 허둥지둥 다급하게!
나는 너를 쫓아 몰아내고 싶지 않아,
이 살벌한 쟁기 날로!
진심으로 미안하다, 인간의 지배가
자연의 사회적 화합을 깨뜨려놓고도
그 부당한 견해를 정당화하기에
네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랄 수밖에,
너의 가난한, 대지태생의 동무
동료 인간이거늘!
물론 가끔은 네가 훔치기도 하지.
그게 뭐? 가여운 짐승, 너도 살아야지!
보릿단에서 떨어진 이삭 하나쯤이야
너무나도 자그마한 요구:
나는 남은 보릿단으로 축복받으면 그뿐,
절대로 아까워하지 않을께.
네 자그마한 집도 망가졌구나!
약한 벽들이 바람에 흩어져버렸어!
이제 와서 새집 지을 수도 없는 노릇,
녹색 이끼 위에!
음산한 십이월 바람 몰아칠 텐데,
살을 에고 뼈에 스밀 듯이!
네가 허허롭고 황량한 들판 보고서
금세 닥칠 진저리나는 겨울을 내다보고
돌풍을 피해, 이 밑에서 아늑하게
살려고 마음먹었을 터인데,
난데없이 와르르! 잔인한 쟁기 날이
너의 작은 방을 꿰뚫어버렸구나.
그 작은 이파리그루터기더미 집
마련하려 수없이 지치도록 갉아댔으리!
헌데 갈아엎어져, 너의 노고에도
집도 절도 없이,
겨울 진눈깨비 가랑비, 차가운
흰서리 견뎌내야 할 처지.
허나 생쥐야, 너만 그런 게 아니다,
앞날을 걱정해봐야 소용없는 일:
생쥐나 인간이나 만반의 계획도
종종 틀어져
공히 슬픔고통만 남기곤 하니까,
기대했던 기쁨 대신에!
그래도 넌 축복받았지, 나에 비하면!
너를 괴롭히는 것은 현재뿐이니:
허나 아아! 나는 뒤로 눈 돌려도
황량한 전망!
앞으로도, 보이는 건 없고
막연한 두려움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