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냉철함을 좋아합니다. 냉철하고 명석하고 차분하고 밝고, 그러면서도 절망하고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낙하하는 저녁은 그런 작품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혼이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의 이야기, 그리고 또 곱지 못한 마음의 이야기입니다. 곱지 못한 마음이란 미련과 집착과 타성, 그런 것들로 가득한 애정. 곱지 못한 마음의 하늘에, 조용한 저녁이 내리기를...>

   에쿠니 가오리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 책은 차분하고, 절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밝은? 이야기이다. <반짝반짝 빛나는>과 <호텔 선인장> 외에는 읽은 책이 없지만 가오리의 스타일이 어떤지는 한 권의 책만 읽어도 알 수 있다. 피렌체에 갔을 때 함께 민박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었던 터라 두오모 성당 꼭대기에 꼭 올라가야 한다며 줄을 서가며 열심을 내었지만 나는 그 책을 읽지 못했기에 과감히 발걸음을 돌려 우피치 미술관에 들어가려는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섰다.

   그녀는 사소한 이야기를 말한다. 물 한 마시고, 초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사소한 이야기를 매우 중요하듯 이야기한다. 몹시도 개인적인 이야기들. 읽다보면 왠지 주인공을 따라 나도 오차즈케를 먹고 따뜻한 정종을 마셔야 할 것 같다. 시간이 남아 조그만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는데, 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책장에는 에쿠니 가오리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몇 권 밖에 놓여 있지 않아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이 책은 실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8년간 함께 살았던 애인 타케오를 떠나보내야 하는 리카. 이유는 하나. 다케오가 하나코라는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코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존재이다. 팜므파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코는 누구를 만나든 거리낌이 없고, 남자들은 그녀의 독특함에 빠져든다. 하나코를 바라보는 타케오. 타케오를 바라보는 리카. 어찌보면 너무 평범한 이야기를 작가는 자기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평범하게 이야기한다.

   셋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주인공이 싫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타케오를 보면 화가 나고, 리카를 보면 답답하고, 하나코를 보면 얄밉다. 하나코에겐 분명이 말 못할 상처가 있겠지만, 그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옮기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하긴 하나코 자신이 무책임한 삶을 선택했으니까.

   모르겠다. 그녀의 글은 차분하고 정갈하나, 읽고 나니 괜히 화가 난다.

 

#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보고 생긋 웃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답고-청순한, 이란 형용사를 모양으로 빚은 듯한 웃음이었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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