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s Arrow : SHORTLISTED FOR THE BOOKER PRIZE 1991 (Paperback)
Amis, Martin / Vintage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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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화살』은 유태인을 학살시키는데 동참하였던 가해자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소설의 구성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 시간의 역순이다. 즉 시간이 현재에서 과거로 되돌아가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에이미스가 후기에서도 언급했듯 시간의 역순 방식은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의 소설 『제 5 도살장』(Slaughter-house Five)에서 빌리(Billy)라는 인물이 2차 세계 대전 비디오를 거꾸로 돌려보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시간의 화살’이라는 단어는 본래 에딩턴 경(Sir Arthur Eddington)이 열역학 제 2법칙을 가리켜 비유한 것으로, 그는 시간에 따라 무질서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은 시간에 방향(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을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시간의 화살』은 열역학적, 심리적, 우주론적 시간의 화살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이다. 따라서 주인공은 죽음의 순간에서 깨어나 점차 젊어지며 마지막에는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즉 과거-현재-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의 방향성이 뒤집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특이한 점은 주인공 안에 등장하는 또 다른 ‘나’이다. 작가는 주인공 토드(Tod Friendly)의 분리된 자아의 설정이 리프턴(Robert Jay Lifton)의 『나치 의사들』(The Nazi Doctors)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리프턴은 아우슈비츠에서 행한 나치 의사들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이중’(doubling) 자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즉 각각의 독립된 자아가 전체 자아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잔혹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의 화살』에서 주인공은 토드이지만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 화자는 토드가 아닌 토드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아인 ‘나’ 이다. ‘나’와 토드는 하나의 몸을 공유하고 있고 특정한 꿈을 함께 꾸기도 하지만 서로 분리되어 있는 자아이다. 토드의 원래 이름인 운베르도르벤(Unverdorben)이란 이름도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독일어인 verdorben은 ‘썩은’, ‘타락한’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거기에 un이 붙어 반대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의 성(姓)또한 그와 이중 자아를 암시하고 있다이처럼 소설의 화자인 ‘나’는 토드와 분리되어 있지만 특정한 시기에는 합쳐지기도 하며 소설을 기술해가고 있다. 작가는 시간의 역순이라는 설정과 이중 자아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을 소설의 기본 틀로 설정하고 홀로코스트의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시도한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주인공의 범죄가 재구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미국 북동쪽 웰포트(Wellport)에 살고 있는 노인이다. 그리고 그는 시간의 역순에 따라 뉴욕시(New York City)로 이동하며 그의 이름은 존 영(John Young)으로 바뀌어 있다. 좀 더 젊어진 그는 1948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의 첫 번째 정착지인 포르투갈(Portugal)에서 그의 이름은 해밀턴(Hamilton de Souza)이다. 다시 그는 로마로 이동하며 마침내 아우슈비츠에 다다른다. 아우슈비츠에서 그는 오딜로(Odilo Unverdorben)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역사적 책임감을 가지고 유대인을 학살하고 실험한다. 그리고 아우슈비츠 캠프는 점차 작아지고 오딜로의 아내 헤르타(Herta)가 종종 그곳을 방문하며 남편을 향한 그녀의 태도는 적대적이었다가 점차 중립적이거나 의심하는 것으로 변해간다. 헤르타는 임신했으나 그녀의 부푼 배는 곧 납작해지고 아이는 헤르타의 자궁으로 사라지며 오딜로는 오스트리아에서 불구이고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을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는 의학 대학에 들어가고 부모와 함께 살며, 곧 아기가 되고 마지막에는 어머니 자궁으로 들어간다. 1980년대에서 1916년대까지 시간의 역순에 따라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가 홀로코스트 범죄에 가담했던 나치 의사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그의 정체성이 끊임없이 변해가고 주위 상황 묘사가 거꾸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흐름을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

   덕분에 책을 읽고 또 읽게 해 주었으니 작가에게 고맙다고 해야하나? 번역본이 나오면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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