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그램 질로크 지음, 노명우 옮김 / 효형출판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그램 질로크/ 노명우 역

    이 책은 도시를 주제로 벤야민이 쓴 많은 작품들을 재료로 하여 어떻게 하면 맛있게 요리하여 독자가 먹기 편하게 할까 고민한 책이라고 보여진다. 벤야민은 19세기 파리에 관한 연구 <파사젠베르크>을 완성하지 못하고 자살했다. 벤야민의 도시에 관한 생각들은 놀랍고 재미있다. 그는 도시를 사랑하면서도 싫어했다. 그가 매료되었던 도시 베를린과 파리. 그곳에서 그는 도시를 연구했고 도시 안에 사는 군중을 분석하였다. 책에는 그가 여행했던 나폴리와 모스크바에 관한 단상도 나오는데, 두 도시에 관한 설명이 꽤 재미있다. 벤자민이 명명한 도시의 영웅주의자?인 산책자, 댄디, 창녀, 넝마주의 등의 정의와 묘사도 기발하다. 벤야민은 도시의 물리적 구조와 그 안에서 발견되는 구체적 대상들, 사람들의 사소한 경험과 행동, 물건과 사람의 상품화, 실내화(파리의 아케이드) 도시 환경에 관심을 기울였다. 도시에 관한 사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글을 읽다보니 서울에 살면서도 한번도 벤자민처럼 진지하게 도시에 관해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 죄스러울 정도이다.

    책은 서론, 1~4장,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도시의 이미지들 이란 제목으로 그가 여행했던 나폴리와 모스크바에 관한 글과 이야기들이 나온다. 2장은 도시의 기억들로 벤야민이 태어난 도시 베를린과 그가 1933년부터 1940년까지 살았던 제 2의 고향 파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3장은 변증법적 이미지 로 1927년에 소박하게 시작했던 ‘파사주 프로젝트’가 점점 거대해지는 과정과 대도시 파리에 관한 글들이다. 4장은 도시의 알레고리 로 거리의 산책자와 보들레르와 관련한 벤자민의 글들이다.

    책을 읽으니 벤야민이 어떠한 글을 썼는지, 그의 사상이 어떤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 책으로 워밍업을 했으니 다음엔 직접 벤야민이 쓴 작품을 읽으면 훨씬 수월할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벤야민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는 도시의 철학자인가? 그러고 보니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작가가 소설가인지, 저널리스트인지, 정치가인지, 시인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야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아마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저자의 글은 마음속에 명확히 구분해놓은 공간 중 어디에 넣어두어야 할지 난감해서일 것이다. 벤야민, 당신을 어디다 모시면 좋을까요.

 

# “나폴리에 뿌리내린 벌이는 운에 의존하는 게임과 비슷하며, 공휴일에 들러붙어 있다. 잘 알려진 일곱 개의 주요 죄악의 항목은 제노바의 자만심, 플로렌스의 인색함, 베니스의 낭비, 밀라노의 식탐, 볼로냐의 분노, 로마의 질투, 나폴리의 게으름이다.” 68. <나폴리>

 

# 놀이를 할 때 어린아이는 대상으로 부터 떨어져 관조하지 않고, 대상을 손에 쥔 채 미메시스적으로 대상의 일부가 된다. 126.

 

# “개선 행진에 의기양양하게 참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패배하여 굴복한 사람들 위를 가로질러 넘어간다. .....모든 문명의 기록은 동시에 야만의 기록이다.”

기념물은 확실히 그런 ‘기록’이다. 기념물은 그 자체를 숭배의 대상으로 제시하고, 변함없는 예전의 광채와 업적을 영원히 상기시킨다. 기념물은 이중으로 신화적이다. 기념물은 한편으로 거짓된 역사를 환기시키며, 동시에 자신의 영속성을 스스로 선언한다. 기념물은 화석화된 신화이다. 146. <일루미네이션>

 

#실내를 채운 상품들은 지속적이지 않은 ‘일시적인 형상’일 뿐이다. 실내는 거들먹거리며 맹목적으로 ‘영원함을 확신’하지만, 실내의 상품들은 악화되고 쇠퇴한다. 파사주처럼 부루주아의 실내는 한때는 유행했던 욕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진부해지고 우스꽝스러운 사물들의 안식처이다. 162.

 

# “오늘날 시민들은 한 번도 죽음을 접해 보지 않은, 즉 영원성이 사라진 메마른 주거 공간에서 살고 있고 또 만약 그들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게 되면 그들은 그들의 상속자들에 의해 요양소나 병원에 옮겨져 차곡차곡 안치된다.” 166. <일루미네이션>

 

# 죽음은 제거되어, 특별한 장소에 한정된다. 시체는 일상적 지각 영역으로부터 사라지기에 현대 개인은 신체 부패로 인한 공포에 직면하지 않는다.

가난한 자는 시야에서 벗어나고 관심에서도 멀어진다. 이들은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도 감추어진다. 가난한 자는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들은 숨겨지고 잊혀진다. 185.

 

# 벤야민이 보기에 현대적인 것은 이미 낡은 것이다. 유행과 진보 개념의 본질은 낡은 것이 새로운 체하며 분장한 것이다. 이러한 통찰이야말로 실제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실현 가능성이다. 잠들어 있다는 의식은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225.

# 벤자민에게 상품 문화는 근본적인 면모는 상품 숭배였다. 상품은 현대성의 우상이다. 도시는 “상품이 제왕이 되고 오락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공간을 구성한다. 현대 대도시는 중세도시처럼 신성한 순례의 장소이다. 파사주, 부티그와 백화점은 상품의 성소이며, 존경을 표해야 하는 신전이다. 벤야민은 “세계박람회는 상품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순례의 장소였다.”고 주장한다. 241.

 

# 벤야민에게 산책자는 거리를 둔 독립성과 거드름 피우는 개인성을 오만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영웅적이다. 댄디는 산책자를 현란하고 눈부시게 잘 체현한다.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멋지고 눈부신 최신의 옷을 입은 댄디는 위험하게 걸으며 때로 부르주아의 상품 취향과 온건함의 한계를 넘어서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는 걸어다니는 공작새이다. 그래서 벤야민은 루이 토마를 인용한다. “댄디는 방해받지 않고 숭고함을 열망해야 한다고 보들레르는 말했다. 댄디는 거울 앞에서 살고, 거울 앞에서 잠에 든다.” 305.

 

# 댄디로서 산책자는 외양을 통해 자신을 군중들과 구별한다. 댄디는 부가적으로 그의 행동 혹은 행동의 부재를 통해 군중과 자신을 구별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이 산책자의 유일한 일이다. 산책자는 특이한 옷차림새와 게으름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직업을 통해 자신의 개인성을 주장한다. 그는 유한계급과 같은 인상을 전달하려 한다. 산책자는 도시의 거리를 조용하고 서둘지 않으며 그렇기에 위엄있는 태도로 행진한다. 그는 발로 천천히 걷기에 이중적 의미로 보행인이다.“.....그것은 또한 부지런함에 대한 저항이다. 1840년경에 파사주에서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걷는 것은 재빨리 유행이 되었다.” 댄디의 사치와 산책자의 무위는 기묘한 이미지로 수렴된다. 댄디는 의복의 단일성에 저항하며, 게으름뱅이는 동작의 단일성에 저항한다. 이들은 한편으론 값비싼 의복을, 다른 한편으로 시간이라는 귀중한 상품을 과시한다. 산책자는 느릿느릿 빈둥대며 걸어다닌다.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현대적 삶의 리듬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 있다. 그의 영웅주의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의 평정심은 상품생산의 속도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에 다름 아닐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산업 시대의 비인간적인 기계의 시간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 나태는 영웅적이다. 307.

 

# “여기서 우리는 일상의 쓰레기를 모으는 임무를 지닌 사람을 본다. 거대 도시가 버린 모든 것, 분실된 모든 것, 혐오스러운 모든 것, 깨진 모든 것을 그는 분류하고 수집한다. 그는 방탕의 목록과 쓰레기의 비축량을 연구한다. 그는 구두쇠가 보물을 모으는 것처럼 영리하게 선택하고 철저히 분류한다. 그는 산업의 신성을 깨뜨리는 쓰레기를 모아 유용하고 흐뭇한 인공물로 변화시킨다.” <전집 5>

넝마주의는 도시의 폐기물을 수집하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이다.....넝마주의는 현대성의 폐허에 서식하면서 폐허를 재생한다. 그들은 도시의 ‘고고학자’이다. 그들은 새로운 상품 역시 동일한 낡은 폐물이라는 새로운 상품의 진실을 밝혀 주는 유행에 처진 상품을 발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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