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김수영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풀이 눕는다' 였다. 그때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풀의 연약하면서도 강인함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여 외우고 다녔다. 강신주 작가의 책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두 권을 읽었다.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는데 깔끔한 표지가 마음에 들어 살펴보니 강신주 작가가 김수영 시인에 관해 쓴 책이었다. 그의 책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어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한 마음에 책을 펼쳐 보았다.
김수영은 1921년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유학차 일본으로 건너가 연출 수업을 받았다. 1950년 김현경과 결혼하였으나 6.25가 일어나 의용군에 강제 입대, 북행하였다. 평남 개천 야영훈련소에서 1개월 동한 강훈련을 받은 뒤, 순천군 중서면 부근에 배치되었다가 UN군의 진주로 자유인이 되었다.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고 남하하였으나 경찰에 체포,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1952년 석방되었다. 1959년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간행하였다. 1968년 버스에 치여 사망하였다. 1974년 <거대한 뿌리> 간행되었다.
작가는 김수영 시인의 팬이다. 그는 김수영의 삶을 사랑하고, 삶을 통해 써내려가는 시를 사랑한다. 김수영은 어찌보면 위험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거침없고, 당당하며, 우리들이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치부와 상처까지도 냉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김수영은 온몸으로 밀어붙이면 그것이 바로 시가 된다고 하였다. 이 책은 김수영이 썼던 시들, 그 시가 나오게 된 배경, 김수영이 살아내야 했던 시대를 보여준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갇히고(나는 포로가 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아내가 자신의 친구와 사는 것을 보고, 자유가 억압받는 시대를 견뎌야만 했던 김수영. 그의 시가 우리를 깨우게 하는 것은 그가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자유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독립성’을 원하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니 시인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 좋다. 글과 함께 있는 그림들도 좋다. 왠지 그동안 어려워했던 김수영 시인에게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다. 그러나 서정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살짝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김수영은 ‘관념에서의 자유’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힘든 시대적 상황에서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쓰는 낭만적인 시가 ‘도피’가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땐 따뜻하고 서정적인 시가 마음이 끌린다. 안일하게 마음만 다독거리는 현실 도피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시를 읽으며 그래 다시 한번 살아보자. 얼굴 찌푸리지 말고 웃어보자 라며 삶을 긍정하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수영의 사상을 완전히 동의하는 것에 나는 조금 머뭇거리고 있다. 아마 그가 너무 곧아서일 것이다.
#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도 자신만의 고유한 내면을 가졌다는 것, 다시 말해 자유의 존재라는 것. 김수영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온몸으로 배운 교훈 아닌가? 그렇지만 사랑의 경우에서만큼은 여자의 내면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가질 때는 그녀의 내면을 읽으려 하지 않았고, 반대로 여자와 정신적 관계를 가질 때는 육체관계를 나눌 수가 없었다.
# 오직 단독적인 삶을 살아낸 사람만이 삶의 보편성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 시의 모더니티란 외부로부터 부과하는 감각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지성의 화염(火焰)이며, 따라서 그것은 시인이-육체로서-추구할 것이지, 시가-기술면으로-추구할 것이 아니다. -시월평: 모더니티의 문제. 김수영
# 어린아이도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의 상태가 아니라 그만의 고유성을 가지는 것이며, 어른도 어린아이의 성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그만의 고유성을 가진다. 어쩌면 단독성의 이념은 ‘영원한 현재’에 있지 않을까?
# 불행히도 모든 교육은 단독성을 개화시키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신봉하는 가치를 주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단독성을 회복하려는 순간, 당연히 가정이든 학교든 군대든 회사든 권력을 쥔 자들로부터 탄압받기 마련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생긴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로부터 스스로 단독성을 부정하는 개인들이 탄생한다. 외적인 탄압과 억압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런 불행한 개인들은 오히려 타인이 자신과 같은 옷을 입고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기 쉽다. (중략) 시는 자신들이 애써 은페하려던 단독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들은 조금씩 자신이니까 살 수 있는 삶, 자신이니까 느낄 수 있는 감서, 자신이니까 생각할 수 있는 사유를 영위할 것이다.
# 인문(人文) 이란 말은 매우 잘 만든 말이다. 사람을 뜻하는 인과 문양이나 표현을 의미하는 문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인문학은 사람과 그의 표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카프카는 1904년 1월 27일 어느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불행처럼 우리를 자극하는 책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아주 깊이 상처를 남기는 책이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우리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지고,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숲으로 추방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자살처럼 느껴질 것이다.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 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 같은 것이어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 시적 인식이란 새로운 진실(즉 새로운 리얼리티)의 발견이며 사물을 보는 새로운 눈과 각도의 발견인데., (...)시에 있어서 인식적 시의 여부를 정하려면 우선 간단한 방법이, 거기에 새로운 것이 있느냐 없느냐, 새로운 것이 있다면 어떤 모양의 새로운 것이냐부터 보아야 할것이다. 인식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시월평: 시적 인식과 새로움. 김수영
# 무슨 일로 아내를 때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는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의 여부만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한 김수영이 최소한 사랑만큼은 자신의 제스처로 살아 내지 못한 것이다. (중략)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야만, 인간은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제대로 미워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아내를 때린 날 김수영이 뼈저리게 깨달은 바다.
# 여기서 우리는 ‘관념에서의 자유’와 ‘삶에서의 자유’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솝 우화>에 신 포도 이야기가 등장한다. (중략) 그러자 여우는 속으로 말한다. “저 포도는 신 포도야.”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여우는 포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것이 바로 ‘관념에서의 자유’다. (중략) 이런 관념에서의 자유는 포도를 따 먹으려는 의지를 좌절시키고, 끝내는 실천에의 전망도 봉쇄해 버리고 만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도피자”나 “기만적 유심주의자”의 전략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기만적 책략은 진정한 인문주의자를 만나는 순간 여지없이 좌절된다. 진정한 인문주의자는 다음과 같이 물어 볼 테니까 말이다. “여우야, 너는 먹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포도가 시다는 걸 알았니?” 관념에서의 자유가 허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여우는 어떻게 할까? 아마 여우는 지금 자신의 방식으로는 포도를 딸 수 없다는사실을 자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포도를 따려고 할 것이다. 마침내 여우는 실천적 전망을 확보하면서 ‘삶에서의 자유’로 한 걸음 내딛게 될 것이다.
죄와 벌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성(性)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 나가게
물어 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 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槪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憐憫)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긍지의 날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 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 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 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