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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ㅣ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1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조대웅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윤리학에 관한 단어 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선, 우애, 정의, 쾌락, 친애, 행복의 정의는 물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최고의 선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대해 꼼꼼하게 대답한다. 먼저 다루어야 할 문제를 정의하고, 여러 사상가들의 견해를 평가한 후, 자신의 예비적 의견을 제시하고, 여러 난점과 반론에 비추어 이 의견을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며, 다른 관점을 지지하는 논증을 듣고, 문제의 가장 적절한 해답을 찾아내는 식이다. 와우~ 쾌락은 당연히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쾌락이 과연 나쁜 것인가? 라고 질문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책을 읽으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생각이나 일들을 무조건적으로 단정 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행복, 덕, 선 같은 단어들은 너무 흔하고 많이 듣는 말이기 때문에 평소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깊이 사색하고 정리해놓았다니, 왠지 부끄러워지기까지 하네.
책 이름에 나오는 니코마코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아들로 그가 원고를 정리하였기 때문에이런 제목이 붙은 것이다. 이 책은 행복에 대한 논설을 모은 것으로, 도덕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조금 어려운 도덕 교과서를 읽는 느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BC 384년 그리스 북동부에 있는 마케도니아의 작은 도시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왕실의 의사였기 때문에 그 역시 의술을 익혔고 그 영향으로 그의 저술들 중 해부학, 생리학, 동물학 등 과학에 관한 연구서가 상당부분이다. 그는 17세에 아테네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했고 스승 플라톤을 매우 존경하였다. BC 343년 말 그의 나이 42세 경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치기 위해 펠라로 갔다. BC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아테네에서는 마케도니아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그로 인해 이전에 소크라테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도 신들에 대해 오만하고 무례하다는 날조된 혐의가 씌워졌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 칼키스 섬으로 갔고 BC 322년에 위장병으로 죽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 ‘최고의 선’을 실현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이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인간의 삶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향락적 삶이다. 둘째는 정치적 삶이다. 셋째는 관조적 삶이다.
# 덕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이다. 지적인 덕은 대체로 교육에 의해 얻어진다. 그러므로 지적인 덕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도덕적인 덕은 올바른 습관들이 쌓여서 생긴다. 이런 까닭에 도덕, 윤리를 의미하는 에티케(ethike) 라는 말은 습관을 의미하는 에토스(ethos)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방종한 사람들이 기쁨을 느끼는 것은 모두 촉각에서 오는 실제적 향락, 즉 먹는 것, 마시는 것, 성교 같은 것들이다. 어떤 미식가는 자신의 목이 학과 같이 길어지기를 바랐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가 감촉에서 쾌락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방종과 결부되어 있는 촉각은 인간이 아닌 동물과 같은 것이므로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그런 것에 쾌락을 느끼는 것은 짐승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체육에서 전신을 마사지한다거나 함으로써 얻는 즐거움은 동물적인 쾌락에서 제외된다. 방종한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촉각은 신체 전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극히 일부분만을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무절제(방종)한 사람은 쾌락을 주는 모든 것을, 혹은 가장 쾌락을 주는 것을 추구하며 욕망에 끌려 다른 모든 것들을 제쳐 놓고 이것들을 먼저 선택한다. 따라서 이런 쾌락을 얻지 못할 때나,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할 때 괴로워한다. 욕망과 고통은 함께 있기 때문이다.
# 우리가 피해야 할 성품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악덕과 자제력 없음, 그리고 짐승과 같은 품성 상태인 야만성이다. 이와 반대되는 것들은 각각 악덕의 반대는 덕, 자제력 없음의 반대는 자제, 야만성의 반대는 초인간적이고 영웅적이고 신적인 덕이다.
# 그러므로 친구란, 좋은 사람에 대하여, 선의를 품고 있어 상대방이 잘 되기를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을 서로가 알고 주고받는 사이에서 성립한다.
# 한편 젊은 사람들의 우정은 쾌락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그들은 감정에 따라 살며,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쾌락을 주는 것, 그것도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들의 쾌락도 달라진다. 그래서 친구가 되는 것도 빠르고 헤어지는 것도 빠르다. 그들의 우정은 유쾌하게 여겨지는 것이 변함에 따라 함께 변하며, 또한 급히 바뀐다.
# 이런 까닭에 사랑(에로스적인 사랑)의 상대는 단 한 사람인 것이다. 사랑이란 본래 ‘우정이 지나친 것’으로, 이것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행복이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다. 만일 행복이 상태라면 평생 잠들어 있는 사람에게도 속하고, 비운을 당한 사람에게도 속할 것이다.
행복은 활동으로 보아야 하고, 활동에는 필수적이고 다른 어떤 것 때문에 바람직한 것도 있는 반면에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도 있다고 한다면, 행복은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에 속해야 한다. 행복은 아무것도 결여되어 있지 않고 자족적이기 때문이다.
# 쾌락은 어떤 순간에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운동(활동)’처럼 지속된 다음에 완결되는 것이 아니다. 쾌락을 느끼는 그 순간의 느낌이 그 쾌락의 전체이다. 그런데 쾌락은 활동을 완성시킨다. 삶과 즐거움은 활동과 결부되어 있어서 활동이 없으면 쾌락이 생기지 않고, 활동은 그에 따르는 쾌락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유와 관조처럼 가장 완전한 활동에 따르는 쾌락은 가장 즐거운 것이다.
#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선’의 추구인데 그중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은 ‘행복’이다.
# 모든 학문은 정치학에 종속되며 그런 이유로 정치학은 인간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인간에게 최고의 선’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