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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남들보다 책을 좀 읽었다고 나를 오해한 한 친구가 물었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괜찮아?" 그때 나는 그 책을 읽지 못한 상태였고, 정혜윤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봤기 때문에 "글쎄, 근데 요즘 그런 책들 너무 많이 나와서, 잘 보고 사야돼" 라고 대답해 버렸다. 집에 와 생각해보니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되는대로 말해버렸을까 후회가 되었다. 그래서 책을 펼쳤는데, 생각했던 거와는 달리, 유행을 타고 그런 류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이었다.
CBS 라디오 프로듀서이자 작가인 그녀는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들을 모아 그에 대한 답변을 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책이 정말 위로가 될까요? 라고 물으면 왜 위로가 되는지 자신이 겪은 사례와 책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작가가 일적으로 혹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고, 생각하고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인상 깊었다. 또한 작가가 읽어온 수많은 책들을 주제에 맞게 적절하게 인용하는 것도 놀라웠다.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설명할 수 없을까 하는 회의도 살짝 들고.
작가가 인용하며 소개하는 책들을 메모하는 것도 큰 기쁨 중 하나이다. 역시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배워야 할 것이 많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한다. 먹고 살기도 바쁜 데 언제 책을 읽나? 책이 쓸모가 있나? 의문이 들 때 책을 펼치면 다소 마음이 놓일 것이다.
# 한 영화 감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쁜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너희들은 바라보기만 해. 보여 주는 건 우리가 다 할 테니."라며 관객들을 구경꾼,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영화라고요. 그런 영화는 인간성에 위배된다고요.
# 게으름은 자기 자신을 얕보는 정신의 행위 입니다.-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 우리 시대에 가장 오염된 말 중 하나는 바로 '자기 계발'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헨리 경의 입을 통해 "인생의 목적은 자기 계발"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자기 계발은 우리 시대에서 통용되는, 스펙 쌓기를 통한 경쟁력 강화란 의미의 자기 계발과 그 의미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가 말한 자기 계발은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특이한 비밀 결사를 구성한다.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연령의 구분 없이 섞이지 않음이, 결코 만나는 일 없이도 그들을 한데 모아 놓는다. 그들의 선택은 출판업자의, 즉 시장의 선택에 부합하지 않는다. 교수들의, 즉 코드의 선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의, 즉 권력의 선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중략) 그 선택은 오히려 틈새와 주름들 안에, 즉 고독, 망각들, 시간의 경계, 열정적인 생활 태도, 응달 지역, 사슴의 뿔, 상아 페이퍼 나이프들 안에 칩거하고자 한다. -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 플로베르는 흔해 빠진 아무것도 아닌 것"(보바리 부인)에 대해 썼다고 표현했지만 제게 이 책이 중요했던 것은 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의 과잉 속에 푹 잠겨 있단 걸 퍼뜩 알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몸서리쳐지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