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의 바다 문예중앙시선 20
문정희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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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정희 시인의 <카르마의 바다> 2012년 8월 초판된 시집이다. 이 시집은 제목처럼 시인이 베네치아에 머물며 쓴 시들이라 온통 물의 이미지가 넘쳐난다. 카르마란 불교에서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이나 혹은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를 가리킨다. 시인은 물을 통해 삶의 무한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은 흐르고 흘러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일까? 시집 안에 그리움이 담겨 있다. 사랑의 추억과 헤어짐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시집을 덮으니 리알또 다리 옆 카페에 앉아 오래도록 사람들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 뿐이다.

 

물시

 

나 옷 벗어도

그다음도 벗어요

 

가고 가고

가는 것들 아름다워서

 

주고 주고

주는 것들 풍요로워서

 

돌이킬 수 없어 아득함으로

돌아갈 수 없어 무한함으로

 

부르르 전율하며

흐르는 강물

 

나 옷 벗어요

그다음도 벗어요

 

 

늙은 창녀

 

이 도시는 늙은 창녀 같다

한때의 나처럼......좀 더 몸을 팔려고

좀 더 크게 다리를 벌리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비밀 궁전을 활짝 열어놓고 교태를 부리는

교회나 성당들도 예외는 아니다

무례한 관광객들은 입장료 몇 푼을 던진 후

신발을 신고 들어가

심지어 신들의 침전까지 기웃거린다

 

이 도시의 유리와 가면은

회오리같이 황홀한 시간의 껍데기이다

조악한 향수를 뿌린 뒷골목에서

불안한 눈알로 반짝이는

요즘의 나처럼.....허황한 축제의 피에로이다

끝끝내 음산한 욕망이다

 

미친 약속

 

창밖 감나무에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풋열매가 붉고 물렁한 살덩이가 되더니

오늘은 야생조의 부리에 송두리째 내주고 있다

아낌없이 흔들리고 아낌없이 내던진다

 

그런데 나는 너무 무리한 약속을 하고 온 것 같다

그때 사랑에 빠져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미친 약속을 해버렸다

 

감나무는 나의 시계

감나무는 제자리에서

시시각각 춤추며 시시각각 페허에 이른다

 

어차피 완성이란 살아 있는 시계의 자서전이 아니다

감나무에게 벼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구슬 목걸이에 대한 기억

 

바다를 지나다가 바다가 궁금해서 바다로 들어갔다

바다는 실에다 푸른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

컴퓨터나 서류 대신 대낮에 구슬을 꽤고 있는

바다를 향해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게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바다가 만든 목걸이에는

바람과 햇살, 물과 흙과 불이 영롱하게 꿰어져 있었다

바다는 그것을 딸에게 주 거라고 했다

순간 나는 그의 딸이 되고 싶었다

 

바다는 한 움큼 구슬을 쥐여주며

네 맘대로 꿰어봐

너만의 목걸이를 만드는 거야라고 말했다

운명처럼 묵직한 돌멩이, 완벽하게 빛나는 문장

슬픈 원색의 감정....

나는 그의 무릎 위에 바다를 올려두고 나왔다

바다의 심장이 잠시 나를 따라오려다 마는 것 같았다

 

그러고 얼마 후 바다 시인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 날, 그의 딸의 목에 걸려 있는 바다를 보았다

뭐라 이름 해야 할까

저 찬란한 바람과 햇살, 물과 흙과 불이 꿰어진

구슬 목걸이를 바다가 알알이 출렁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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