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김연수님의 소설을 읽었다. 존칭을 생략하고 말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나 (특히 한국작가의 경우) 앞으로 생략하기로 하고. <사랑이라니, 선영아> 책을 처음 접하고, 간결한 문체와 사진 한 장으로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그의 글에 매료되어 그때부터 그의 책과 기사는 꽤 많이 읽어왔다. 어느 글인가 그가 하루키를 매우 존경하고, 또 그를 따라 마라톤을 시작했다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쓴 산문들을 읽다 보면 하루키와 비슷한 느낌이다. 김연수가 태어난 김천은 지인이 살고 있어 한동안 꽤 방문 했었다. 그래서 그가 자랐던 역전 근처와 어렸을 적 부모님이 하셨다는 제과점도 알고 있기 때문에 작가와의 만남 때 얼굴 한번 본 게 전부지만 왠지 그가 친근하게 여겨진다. 김천은 김연수와 더불어 김중혁님, 문태준님까지 배출한 멋진 도시이다. 지금은 김훈님과 같은 동네인 일산에 살고 있다는데. 일산 호수 공원에 가면 그가 뛰고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상은 몇 번이나 놀러가서 주변을 눈여겨 살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쨌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역시 사진 한 장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도 중요한 사진이 등장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읽은 책은 초판 4쇄였는데 1쇄를 발행한지 일주일만이다. 와우~ 정말 멋진걸요.

    제목만 봐서는 도저히 무슨 내용일지 알 길이 없다. 소설의 제목이나 소제목 또한 하루키와 비슷한 느낌이다. 하루키와 김연수를 동시에 너무 좋아해서 괜히 연결 지으려는 나만의 생각일까?

동백꽃이라는 뜻의 카밀라 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제 1부는 카밀라가 화자. 그녀는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앤과 에릭 사이에서 자라난다. 엔이 암으로 죽고 난 후 카밀라는 자신의 친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유이치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에릭은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하려고 하고, 카밀라에게 그동안 엔이 모아두었던 카밀라의 짐들을 보낸다. 유이치는 카밀라에게 하루에 하나씩 박스에서 나오는 물건들에 대해 기억나는 것들을 적어보라고 권유하고 카밀라는 그렇게 한다. 유이치는 카밀라의 글을 모아 책을 내주고, 카밀라는 열일곱살 때 자신을 낳은 진짜 엄마를 만나기 위해 유이치와 한국으로 온다. 그녀의 어머니가 태어났던 진남으로.

    여기까지 읽었을 때 아, 앞으로 엄마가 누구인지 찾아나가는 과정이 그려지겠군. 대충 읽으면서 엄마가 누군지나 보자 싶었다. 곧 엄마의 이름은 정지은이며 카밀라의 아빠는 지은이의 오빠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들어나고 그녀가 카밀라를 입양시킨후 일 년 후 자살했다는 사실이 거듭 밝혀진다. 뭐? 세상에, 그래서 죽었구나. 근데 남매가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근친상간에 관한 소설이었단 말인가? 호기심에 좀 더 읽어나가는데 어라 새로운 등장인물 최성식 선생님이 등장한다.

   이것이 제 2부로 이때부터 화자는 정지은이 되어 지은이가 카밀라를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기술한다. 독자는 얼른 정신차리고 새로운 시점에 익숙해져야 한다. 아니 그렇다면 카밀라의 아빠가 사실은 최 선생님이었단 말인가? 속속들이 들어나는 편지와 증거, 증인들로 인해 암묵적으로 최선생이라고 믿고 마음속으로 그를 비난하는 순간 이건 또 뭐야, 새로운 인물들 또 등장이요. 제 3부는 우리이다. 지은이의 고등학교 친구들의 이야기와 삶이 펼쳐지면서 지은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원인 중의 하나가 친구들의 따돌림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인물 희재가 등장한다. 제 4부는 희재의 관점으로 쓰여진 장이다. 희재가 지은이를 만나게 된 경위, 그들이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가까워지게 된 계기, 그리고 글에서는 나와 있지 않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카밀라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이런 반전의 반전이 있을 줄이야.

    다 읽고 나니 궁금하다. 지은이는 왜 자살했을까? 학교의 방해로 아이를 억지로 입양시켜야 했기 때문일까? 친구들의 터무니없는 소문과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서였을까? 희재가 그녀를 사랑한 후 떠났기 때문일까? 지은이의 오빠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카밀라는 어디서 살게 될까? 누구와 결혼을 할까? 유이치는 어떻게 생겼을까? 아 궁금해라..

   누구라도 책을 손에 잡는다면 카밀라처럼 진실을 알고 싶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을 떼지 못할 것이다. 김연수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어놓았다. 이 글을 보니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 갑자기 불안해진다.

 

# 숲

눈동자 속에 숲으로 가는 길이 있다 너의

시선 속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모르는 새벽이 있다

 

서늘한 달이 자신을 감추고 있는 곳, 그곳에서

모든 신부는 시작되고 그리고 다만 하나의 숲

 

숲 속으로 들어가 너는 나올 줄을 모른다 하늘은

푸르게 바뀌고 공기는 점점 더 투명해지는데 너는

 

너의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검은 머리칼처럼 나뭇잎, 숲 속을 가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너의 비밀은

나를 바라보고 불빛처럼 반작이는 너의 눈동자

 

눈동자 속에 숲으로 가는 길이 있다 너의

시선 속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모르는 새벽이 있다

 

# “나 역시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어느 날 자다가 깨어서 뭔가를 쓰기 전까지는 말이야. 시인이든 작가든 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뭔가 쓰는 순간, 되는 거지. 처음 본 순간부터 넌 작가라고 생각했어.”

유이치의 말은 늘 그렇게 흥미로웠다.

“왜?”

“첫번째,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 고독을 즐기지. 그러니까 레드우드의 에너지에 끌려서 거기까지 걸어온 거야. 내면적이고 달의 영향권 안에 있어. 두번째, 그래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가장 강한 사람들과도 투쟁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아. 세번째, 무엇보다도 네게는 쓸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

 

#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노트의 세 장을 글자로 채우는 일, 그것도 유이치에게 배운 일이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다 쓰는 거야”라고 그는 말했다.....오로지 막막할 뿐이라면 그 막막함에 대해 쓰라고 유이치는 말했다.

 

# 어느 틈엔가 나는 너를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를 증오하는 사람이 됐지. 그게 내게는 가장 고통스러웠어. 하지만 지금은 증오는 물론, 그런 고통마저도 다 지나간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뿐이야. 지나가면, 우리는 조금 달라지겠지. 하지만 그 조금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되겠지.

 

# “희재라고요?”

“예. 희재입니다. 왜 그러신가요?”

“왜냐하면, 제 이름도 희재거든요.”

그가 너를 바라본다. 너도 그를 바라본다. 벌써 오래전부터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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