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님의 산문은 완벽하다. <남한산성> 같은 소설도 좋긴 하지만 그의 최고의 글들은 산문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전거 여행>은 아무데나 펴고 읽어도 감탄이 나온다. 이렇게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글을 쓸 수 있다니. 이 책을 처음 읽고 언젠가 필사를 한다면 이 책은 꼭 포함시켜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직 실행은 못했지만. 조세희님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간단명료하고 정확한 표현만 사용한다는 점에서 닮은 느낌이다. 우리것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는 측면에서 비슷한 책을 찾아보자면 최순우님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가 떠오른다.

이 책은 그가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며 느꼈던 바를 적은 글인데, 왜 똑같이 자전거를 타고 같은 풍경을 보면서 나는 저런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던가 화도 난다. 그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갔던 사물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곱씹고 생각한다. 나도 그와 같은 담백한 문체를 닮고 싶다.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다.

 

# 염전은 갯가의 평야다. 바깥은 바다쪽으로 펼쳐지고 안쪽은 야산에 기댄 마을에 닿는다. 염전은 폭양에 바래지며 해풍에 쓸리운다. 염전의 생산방식은 기다림과 졸여짐이다.

 

# 된장의 친화력은 크고도 깊다. 된장의 친화력은 이중적이다. 된장은 국 속의 다른 재료들과도 잘 사귀고, 그 사귐의 결과 인간의 안쪽으로 스민다. 이 친화의 기능은 비논리적이고 원형질적이어서 분석되지 않는다. 된장과 인간은 치정관계에 있다. 냉이된장국을 먹을 때, 된장 국물과 냉이 건더기와 인간은 삼각치정 관계이다.....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갖는 국물이란 흔치 않다. 냉이 건더기를 건져서 씹어보면, 그 뿌리에는 봄 땅의 부풀어오르는 힘과 흙 냄새를 빨아드리던 가는 실뿌리의 강인함이 여전히 살아있고 그 이파리에는 봄의 햇살과 더불어 놀던 어린 엽록소의 기쁨이 살아있다.

 

# 미나리에는 그늘이 없다. 미나리는 발랄하고 선명하다. 미나리의 맛은,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시간의 맛이다. 그러므로 미나리는 된장의 비논리성과 친화하기 어렵고 오히려 고추장의 선명서과 잘 어울린다.

 

# 공깃돌만한 콩털게와 바늘 끝만 한 작은 새우들도 가슴에 갑옷을 입고 있다. 그 애처로운 갑옷은 아무런 적의나 방어의지도 없이, 다만 본능의 머나먼 흔적처럼 보인다.

 

# 갈대는 빈약한 풀이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늙음을 간직한다.

 

# 5월의 산에서 가장 자지러지게 기뻐하는 숲은 자작나무 숲이다. 하얀 나뭇가지에서 파스텔톤의 연두색 새잎들이 돗아날 때 온 산에 푸른 축복이 넘친다. 자작나무숲은 생명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작은 바람에도 늘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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