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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세익스피어 - 희극 : 사랑의 헛수고
BBC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 Mark Thornton Burnett의 글을 바탕으로 *
브래너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셰익스피어 코미디를 해석하였다.『사랑의 헛수고』는 일반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잊기 쉬운 초기희극이라는 낮은 평가와 푸대접을 받아왔으나 우수한 연극 공연을 통해 그 진가가 더욱 드러나고 있다. 브래너도 왕립셰익스피어 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의 『사랑의 헛수고』공연에서 나바레 왕 역으로 출현한 후에, 이 작품에 적절한 시공간적 배경 설정이 이루어질 때 뛰어난 극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간파하고 영화화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러한 감각으로, 브래너의 『사랑의 헛수고』는 최근의 텔레비전과 영화적 유행에 강렬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헛수고>는 텔레비전 시리즈와 더 흔히 연관되어 향수를 자아낸다. 더욱이 연예인들의 출현, 예를 들면 알리아 실버스톤(Alicia silverstone : 프랑스 공주라는 이미지보다 베트걸, 1997년 베트멘과 로빈이라는 이미지가 더 빨리 떠오른다)이 도움이 된다.『사랑의 헛수고』는 연극과 뮤지컬의 결합이며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극의 특징을 두루 지님으로써 극 전체에 걸쳐 고양된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브래너는 말했다. “우리는 초창기에 셰익스피어 영화를 만드는 방법으로부터 벗어나서....지금은 전에 그들이 시도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야기가 표현의 자유가 있다.” 확실히 헛수고는 브래너의 가장 대담한 시도로 여겨진다. 브래너의 『헛수고』처럼 이런 필름들은 “10대 영화”의 부활을 위한 것이고 더 어린 관객들을 위한 잠재적 전환이다.
헛수고의 배경은 1930년대 말이며, 적대감의 폭발이 일어나기 전인 순수하고 평온한 시대를 묘사한다. 그리고 원작의 운문대사에 그와 유사한 내용과 분위기의 20세기 뮤지컬 노랫말을 접목시켜 현대화시킨 배경에서의 낭만적 구애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주인공의 여덟 남녀들은 개성 있는 캐릭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음부를 담당한 악기처럼 존재한다. 예컨대, 4막 3장에서 비로운(Branagh)이 동료들에게 사랑이 학문보다 강함을 역설할 때 그들 모두가 “천국, 천국에 와 있네”(Heaven, I'm in heaven)라는 후렴을 시작으로 어빙 벌린(Irving Berlin)의 뮤지컬 곡 “뺨을 맞대고 춤을”(Dancing cheek to cheek)을 합창한다. 이 장면에서 네 명의 남자가 실제로 공중(천국)으로 높이 떠올랐다가 내려와서 각자의 파트너와 짝지어 가상적인 춤을 추는 광경은 고양된 낭만적 분위기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주연급 남녀들뿐만 아니라, 조연급인 돈 아마도(Timothy Spall)와 자퀴네타(Stefania Rocca), 그리고 나다니엘(Richard Briers)과 홀로퍼니아(Geraldine McEwan) 간의 애정까지 뮤지컬 장르를 통해 표현하여 낭만적 분위기를 확신시킨다.
브래너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서 셰익스피어의 운문에 곡을 붙여 뮤지컬로 만드는 대신, 그의 노래 대부분을 잘라내고 2차 세계대전 전후의 할리우드 뮤지컬에 나오는 곡들인 콜 포터(Cole porter)나 조지 거쉰(George Gershwin)이 작곡한 30~40년대의 뮤지컬 곡들을 넣었다. 이때 사용된 음악들은 미국인이라면 매우 익숙하였을 재즈 음악들을 비롯한, 귀에 익은 멜로디 라인을 가진 곡들이다. 딱딱하고 어려운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음악의 가사로 쉽게 흘려들음으로써 극중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90년대 중반 MTV 시대를 지나고 이미 대중음악산업의 발전기를 겪은 미국인들에게는 환영받을 수 있는 전략이었다.
프랑스 왕의 죽음 때문에 귀국하는 여성들을 전송 나온 나바레 남성들이 합창하는 거쉰의 “내게서 그걸 빼앗아갈 순 없지”(They can't take that away from me)도 현실이 낭만을 없애버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장면은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이별장면-공항에서 비행기에 탄 연인을 전송하는 장면-과 흡사하게 연출함으로써 비극적 현실을 상쇄시키기 위한 낭만적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또한 험프리 보카트-잉그리드 버그만-폴 헨레이드의 3명이 남자들과 여자들의 8중주로 바뀌는 기능을 한다. 이 장면은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고전으로 자리한 작품을 연상시켜 관객의 향수를 자극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낭만적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와 병행해서 뉴스릴을 통해 전쟁이 임박한 암울하고 위태로운 현실을 시종일관 비추어준다. 브래너는 이 전쟁 현실을 흑백장면으로 처리함으로써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는 낭만적 에피소드와의 색채 대비를 통해 낭만과 현실의 대립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러한 환경에서, 나바레(Alessandro Nivola)의 왕의 “가입”의 요구는 국가적 충성을 위한 요구처럼 들린다. 낭만이 현실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프랑스왕의 죽음에 덧붙여 2차 세계대전이라는 20세기 최대의 비극적 현실을 불러들이고 그 구체적 참상을 보여준다. 원작에서는 결혼이 죽음 때문에 1년 동안 보류되는 것으로 끝나는데 비해, 영화에서는 6년 동안의 극심한 현실적 고통을 겪는 단련 과정을 거치게 한다. 그동안 비로운은 야전병원에서 죽어가는 부상자들을 간호하며, 나바레왕은 몸소 전선에 나와 병사들을 독려하고, 롱거빌(Matthew Lillard)과 듀메인(Adrian Lester)은 전투기 조종사로서 목숨을 건 활약을 펼친다. 프랑스 공주와 캐서린(Emily Mortimer). 마리아(Carmen Ejogo)는 감옥에 끌려가며, 로잘린(Natascha McElhone)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활약한다. 심지어는 희극적 기인인 돈 아마도도 진지하게 변모하여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조신한 가정주부가 된 자퀴네타와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의 면회를 받는 애틋한 모습을 보인다.
브래너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극진한 현실적 시련에 대한 보상으로 그들의 낭만적 목표를 달성시키는 해피엔딩을 부여함으로써 낭만과 현실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그들이 6년간의 고행을 거치는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사랑의 유희에 탐닉하던 종전의 구애행태와 다른 진정한 사랑을 획득한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화면이 2차 대전의 참상을 보여주던 흑백 뉴스릴에서 다시 총천연색으로 돌아옴은 비극에서 희극으로의 반전을 시각적 대비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낭만의 회복을 시사한다.
『사랑의 헛수고』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암시- 서류, 글자, 연기, 정신적 생산-로 가득 차 있다. 어빙 벌린(Irving berlin)의 “뺨을 맞대고 춤을”(Dancing cheek to cheek)을 부르며 남자 주인공들이 도서관 천정으로 올라가는 장면은, 글로브 극장처럼 작은 반구로 되어 있고, 이것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장의 천장을 상기시킨다. 반구형의 천장은 점성술과 철학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브래너는『사랑의 헛수고』를 자전적 요소를 통하여 소개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수의 배우들의 노래와 춤 실력이 아마추어급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브래너는 아마추어들이 노래와 춤을 통해 더욱 진솔한 애정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브래너는 21세기의 영화적 매체에 의해 그것들을 모방함으로 할리우드 뮤지컬의 기술과 전문지식을 완성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브래너가 비인기작인 『사랑의 헛수고』를 뮤지컬 영화로 과감하게 시도한 이유는 흥행성패 여부에 상관없이 저평가된 원작의 뛰어난 작품성을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브래너는 셰익스피어의 대중 보급자라고 불릴 만큼 셰익스피어의 대중화를 표방하는 감독이지만 단순하게 흥행 성공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는 대중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의 진수를 즐기도록 전파하기 위한 대중성을 추구할 뿐 흥행성공을 위해 예술성을 희생시키는 경우는 없다. 결과로서 그가 영화의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동안 저평가되어온 『사랑의 헛수고』의 진가를 드러낼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이 초기작을 더 발전시킨 공연물 중 하나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