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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밑의 욕망
유진 오닐 지음, 이한섭 옮김 / 동인(이성모) / 2007년 12월
평점 :
유진오닐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을 읽었다. 이 작품은 델버트 만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는데 안소니 퍼킨스와 소피아 로렌이 등장한다. 로렌의 연기도 멋졌지만 작품 자체가 훌륭해서 영화보단 책이 훨씬 재밌게 느껴졌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읽을때는 그 작품들이 희극 대본이라기보단 그냥 한편의 소설처럼 생각했었는데 요즘에 읽는 작품들은 무대와 배우의 표정을 상상하며 읽게 된다. 오르한 파묵은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양면을 최초로 보여줬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훨씬 재밌다.(리어왕을 제외하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제대로 읽지 않았던 것처럼 흔한 이름이 되버려서일까?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배울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다른 극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점점 희곡에 빠지고 있다. 아서 밀러,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즈, 샘 세퍼드, 마샤 노만, 데이빗 마멧, 캐럴 처칠, 사라 럴, 헤롤드 핀터...위대한 작가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들도 엄청날 텐데, 갑자기 주눅이 든다.
유진오닐은 미국 극작가이며 <지평선 너머>, <밤으로의 긴 여로>, <얼음장수의 왕림>등의 작품을 썼다. 셋 다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이다. 정리를 해놓아야 되는데...
<느릅나무>의 주요 등장인물은 5명이다. 배경은 1850년대 뉴잉글랜드 지방에 있는 캐버트의 농가이다. 집 양쪽에는 두 그루의 커다란 느릅나무가 있어 지붕위로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아버지 캐버트, 세 명의 아들 시미언, 피터, 이븐, 캐버트의 세번째 아내 애비가 나온다. 시미언과 피터는 캐버트의 첫째 부인에서 얻은 아들이며 이븐은 둘째 부인 아들이다. 풍요롭고 멋진 농장을 운영하는 캐버트는 76세 노인으로 힘이 세고 거친 농부이다. 두 아내가 죽고 몇년을 혼자 살던 그는 지금 세 번째 아내를 찾으러 잠시 농장을 떠났다. 세 명의 아들은 아버지가 죽으면 농장을 자신들이 물려받길 원하나 그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캐버트가 새 아내를 구해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시미언과 피터는 농장을 포기하고 캘리포니아에 황금을 찾으러 떠난다.
25살 이븐은 농장에 대한 집념이 무척 강하다. 자신의 어머니가 농장에서 20년간 일을 하다 세상을 떠났기에 그 농장은 곧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끝까지 남아 농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지닌 젊은 청년이다. 또한 창녀 미니를 좋아한다. 비록 그녀가 나이 많고 예전에 자신의 아버지와 두 형들과 모두 잠자리를 같이 하였지만. 캐버트가 데리고 온 새 부인 애비는 30대의 젊은 여자로 아름답고 유혹적이다. 그녀는 캐버트가 죽으면 농장을 자신이 차지할 생각으로 그와 결혼했다.
그러나 애비와 이븐은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끌리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감정에 저항하지만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진다. 둘이 사랑에 빠지기 전, 캐버트는 자신이 죽으면 농장은 아무에게도 물려주지 않고 자신이 가져갈 수 없으니 다 태워버릴 것이라는, 농장에 대한 강한 소유욕을 나타낸다. 애비가 어떻게 하면 자신이 농장을 물려받을 수 있냐고 하자, 아들을 낳아주면 아들에게 물려주겠다고 한다. 애비는 마침내 캐버트의 아들을 낳게 되는데 사실 이 아들은 이븐의 아들이다. 애비가 아기를 낳은 후 캐버트는 이븐에게 이제 농장은 자신의 아들 것이라며 자랑한다. 그리고 애비가 농장을 차지하려고 아들을 낳았지만, 자신의 아들이니 물려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이븐은 애비가 농장을 차지하려고 자신을 이용했다고 오해하고 형들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나려고 한다. 그런 이븐을 보고 애비가 그것은 우리가 사랑에 빠지기 전이었다며 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에 대한 증명으로 아기를 베개로 덮어 죽여버린다. 이 사실을 안 이븐은 경찰관에게 신고를 하고, 애비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이븐과 함께 벌을 받기로 결심을 하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경찰과 동행하며 막이 내린다. 마지막 부분에서 <죄와 벌>이 생각난다. 라스꼴리니코프가 죄를 고백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자 그의 뒤를 따르는 소냐처럼..
<느릅나무>는 농장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사람들을 파멸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소유에 대한 욕심. 죽어서라도 자신의 농장을 가지고 싶어하며, 자신이 가져갈 수 없으면 다 태워버려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하길 원하는 캐버트. 농장에 대한 그의 집념이 두 아내를 죽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븐과 애비. 두 사람은 농장에 대한 욕심과 육체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점점 사랑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따라서 비극이지만 결국 사랑이 승리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소유욕. 가지면 가질수록 더 커지는 마음. 비우면 비울수록 더 작아지는 마음. 세상에는 갖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최신의 전자제품, 예쁜 옷, 반짝거리는 악세사리, 먹음직한 음식, 멋진 가구와 집, 커피와 홍차 용품, 사랑과 관심, 외모와 몸매, 많은 지식과 책, 문밖을 나가면 온통 광고이다. 정류장, 간판, 전봇대, 광고를 피할 수 없다. 현대인의 ‘농장’ 은 무엇일까? 집? 자식? 외모? 학력? 영원히 농장이 나의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캐버트처럼 자기 자신과 가족을 망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집안을 슬쩍 둘러본다. 꼭 필요한 물건들만 있는지. 나를 잡아끄는 욕망은 무엇인지 점검한다.
# 이븐 : 저기 별이 하나, 어딘가엔 아버지가 있을 거구, 여긴 내가 있구, 저쪽 길엔 미니가 있어- 같은 밤에 말야. 내가 그 여자한테 키스한들 뭐가 어때? 미니는 오늘밤같이 아름다워. 부드럽구 따뜻하구 두 눈은 별처럼 반짝이지. 입술도 따뜻하구 팔두 따뜻하구 온통 갈아놓은 밭처럼 훈훈하지. 정말 예뻐...나하구 만나기 전에 얼마나 죄를 지었건 누구하구 죄를 지었건 상관없어. 내 죄나 그 죄나 다 마찬가지지.
캐버트 : 물론 가지구 갈 순 없지. 가지구 갈 수만 있다면 가지구 가겠소. 그렇지 못할 바엔 죽는 순간에 농장에 불을 질러 모두 태워버리구 싶어- 이 집이랑 옥수수 알 하나하나, 나무란 나무, 건초의 마지막 잎사귀까지 모두 태워 없애버릴 거야. 그것들이 나하구 같이 죽는 걸 앉아서 지켜봐야지. 아무두 내껄 차지할 순 없어. 아무것도 없는데서 순전히 내 피와 땀으로 일군 건데. 암소들은 다르지. 그것들은 풀어줄 꺼야.
# 보안관 : 경찰이다. 문 열어
캐버트 : 너희들 잡으러 왔다. 들어오게 짐. 잠깐 기다리게 짐. 도망 못 가게 잡아놨네.
이븐 : 아까는 내가 거짓말을 했어. 사실은 나두 같이 도왔어. 나두 같이 데려가세요.
애비 : 안돼요.
캐버트 : 둘 다 데려가게. 네놈-제법이다. 그럼 난 가축이나 다시 몰아넣어야겠다. 잘 가라.
이븐 : 안녕히 계세요
애비 : 안녕히 계세요.
보완관 : 자-그만 갈까?
애비 : 기다려요. 사랑해 이븐.
이븐 : 사랑해, 애비. 해가 뜨는 군. 아름답지? (Sun's a-rizin'. Purty, hain't it?)
애비 : 응 정말.
보완관 : 정말 멋진 농장이야. 나두 이런 거나 하나 있었으면
-막-
해가 뜬다. 그들은 자신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당당하게 해를 바라본다. 아름답구나. 절망의 상황에서 해를 바라보는 저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저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