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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사랑이란
톰 스토파드 / 예니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톰 스토파드의 <진짜 사랑인란?>(The real thing) 란 작품을 읽었다. 스토파드는 체코 태생의 영국 극작가로 많은 작품을 쓰고 있는데 이제 한 작품 읽었다. 스토파드는 관객을 위한 ‘매복장치’를 사용하여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 자신의 극작기법 중에서 특히 중요한 일부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작품은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총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장을 읽다 너무 헷갈려서 맨 뒷장에 있는 해설을 봐야만 했다. 작품은 액자식 구조로 극중에서 또 극중극을 하는 형태이다. 맥스, 샤로테, 헨리, 애니, 빌리, 브로디, 데비가 주인공이다. 헨리는 극작가이고 맥스, 샤로테, 애니는 배우이다. 1장에선 샤로테가 바람을 피우고 집으로 돌아오자 맥스가 그 사실을 깨닫고 샤로테를 비꼰다. 그리고 샤로테는 애인 헨리의 집으로 가버린다. 그런데 2장을 읽다보면 1장은 맥스와 샤로테가 연기한 것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사실 헨리와 애니가 연인인 것이다.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계속 이어진다. 배우들이 대본을 읽으며 연기를 하는 장면과 실제 생활의 장면이 뒤섞여 읽으면 읽을수록 미궁에 빠진다. 스토파트는 동일한 인물들과 유사한 장면들을 사용함으로써 독자(관객)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작품에서는 언어적 유희가 잘 사용되고 있다. 극작가 헨리의 말은 거침없고, 논리정연하고 예리하다. 헨리의 언어적 철학은 그가 하는 대사들에서 잘 나타난다. 또한 음악적 요소(음향)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애니는 클래식을 좋아하고 헨리는 팝송을 좋아하는데 그들이 대화하고 논쟁할 때 음악들이 적절하게 흘러나오고 그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무대 위에는 항상 라디오가 있고 장면과 장면을 연결한다. Hermans Hermits의 ‘I'm into something good' , Righteous brothers의 'You've lost that lovin' feeling', Monkees의 ’I‘m a believer', Elvis의 ‘모든 게 엉망진창’, Procu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 의 팝송이 등장한다.
끝까지 다 읽었지만, 대체 어느 부분이 연극이고 어느 부분이 실제인지 모르겠다. 다시 읽어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다. 문체가 어렵다거나 글이 지루한건 전혀 상관없지만 구성이 복잡한 건 좀 상관이 있다. 이런 작품도 있구나. 다른 작품도 궁금하다. 설마 다 이런 식이진 않겠지. 아직 내가 가야할 길은 멀고 멀구나. 작품을 영화나 연극으로 보면 참 좋겠다. 작품을 번역한 김성희는 말한다. 사랑이란 고통을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자기인식이며, 진짜/가짜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아닌 겉과 속,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일종의 클라인 병과도 같은 공간으로서 여전히 불확실하고 혼돈스럽긴 하나, 끊임없이 새로운 발전을 잉태하는 변화의 과정이라고. 그것이 ‘the real thing'이 담고 있는 메세지라고.
# 헨리 - 그래, 사실, 난 그렇지 않지. 그게 왜냐고? 그건 내가 우월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 불쌍한 거렁뱅이인, 그자는 거기서, 잘사는 사람의 남아도는 귓밥 부스러기나 주워모으고 있는 거야. 당신 말이 맞아. 난 조금도 개의치 않아. 난 그걸 좋아하지. 그 자신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자기의 가난함을 시인하게 되는 그런 방식을 난 즐기지. 난 그자를 좋아해. 그래서, 그게 사실의 전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왜냐하면, 당신은 집에 있는 나한테 돌아올 거고, 말하자면 우린 다른 사람의 존재는 원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 헨리 - 단어라는 건 그런 시시껄렁한 소리와 어울리는 건 아니거든. 그것들은 순수하고, 중립적이고, 정확한 것이어서, 이것을 상징하는가 하면, 저것을 기술하기도 하고, 또한 그 밖의 전혀 별개의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
# 헨리 - 설득력 있는 넌센스라는 거야, 말 속에 담긴 궤변이 너무나도 정교해서 그 의미를 파헤칠 만한 실마리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다는 뜻이야. 그런 건, 결함은 없지만 옳진 않은 거란다. 정말로 쓸모없는 무익한 거지. 넌, 단어들을 가지고 그런 재주를 부릴 줄 아는 모양인데, 내, 친히 그 단어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어주마. 아, 참, 근데, 모든 “구속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사랑이란 게 사실은, 오히려 사랑, 그 자체로부터도 자유로운 거”라는 건 또 뭐니? 그건, 신선한 충격을 주는 또 다른 일품 명언이로구나. 그렇담, 그 뭐냐, 버티우스터처럼 너도 그 말끝마다 계속 무엇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걸 연쇄적으로 집어넣을 수도 있겠구나. … 그래서 단어들을 DNA의 나선형처럼 계속해서 그 자체들을 반복시켜나가면 되겠지. 가령, “어떤 사랑이 사랑으로부터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울까?” 하면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이란 어떤 사랑이지, 어떤” 이라는 식으로 말이야.
# 헨리 - 당신은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난 한꺼번에 하나 이상의 도덕체계를 당해낼 재간이라곤 없는 인간이야.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옳다는 게 내 도덕체계인 거야. 당신이 하면 옳은 거고, 당신이 원하는 건 옳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