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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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한 파묵이 2008년 하버드대에서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예전에 강단에 섰던 작가들은 보르헤스, 에코 등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는 강연을 통하여 자신의 전공이었던 미술을 그만두고 23살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소설과 독자, 소설가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글은 쉽고 명확하며 친절하다. 책에서 그는 '안나 카레리나'를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괜히 내 기분이 좋아졌다.

  파묵은 독자와 작가를 '소박한 사람'과 '성찰적인 사람' 두 부류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분류는 1795년 프리드리히 실러가 <소박한 문학과 성찰적인 문학?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처음 제기했다고 하는데 찾아 읽어봐야겠다. 소박한 사람이란 소설쓰기와 독서에서 인위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류의 사람들을 말하고 성찰적인 사람이란 이것과 반대되는 감성을 지닌 류의 사람들이다. 소설 창작은 소박한 동시에 성찰적인 일이지만 이것은 무척 어려울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괴테같은 '소박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책을 읽거나 쓸 때 나는 '성찰적인 사람'쪽에 가까운 것 같다.

  책이 너무 재밌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양도 많지 않고 글을 읽거나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무척 도움이 될 것이다. 독학으로 공부한 파묵이 노벨상까지 받았으니 그의 글쓰기는 타고난 것일까, 노력의 결과일까? 책에서 언급한 <순수 박물관>을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을 쓰며 이스탄불에 '순수 박물관'까지 세운 그의 창의성이 대단하다.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풍부한 색감과 맛은 그가 이스탄불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몇 년전 방문했을 때 그랜드바자르에서 파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가방의 찬란한 색깔들과 수산물 시장 향료들의 냄새와 맛에 머무르는 내내 몇번이고 방문했었다. 아무리 가도 지겹지 않은 장소였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맛보고, 입고, 보고 자랐겠지.    

 

# 이제 우리의 진짜 주제로 돌아가, 내가 제일 강조하고 싶은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시각적 문학입니다. 소설은 주로 우리의 시각적 지능, 즉 사물들을 눈앞에 떠올리고 단어를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전환하는 능력에 호소하여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소설은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냄새, 소리, 맛, 감촉에 의해 일깨워진 느낌들도-다른 그 어떤 문학 형식도 흉내 낼 수 없는 풍부함으로-묘사합니다. 소설의 전체 풍경은 주인공들이 보는 것 외에도 세상의 소리, 냄새, 맛, 감촉의 순간들이 있어 활기를 띕니다.

 

나의 진짜 고민은 소설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 그리고 소설가들이 어떻게 쓰고, 소설은 어떻게 쓰이는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소설 독자로서의 경험과 소설가로서의 경험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소설들을 읽고, 그런 소설을 직접 써 보려고 애쓰면서 소설에 대해 가장 잘 배우게 됩니다

 

# '본 것을 단어로 전환하고, 단어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관심은 <내 이름은 빨강>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독자의 시각ㄹ적 상상력에 호소하는 작가가 되려 노력했고, 소설 예술은-도스토옙스키라는 충격적인 반증이 있기는 하지만-시각적 심상을 통해 작동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눈>은 소설과 정치, <순수 박물관>은 사회적 실재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끈 작품들입니다. <순수 박물관>을 쓸 때 나는 그 동안의 모든 경험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소설을 쓸 때면 예전 집필 경험과 예전에 읽었던 책들에 의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첫 소설의 첫 문장을 쓸 때 느끼는 것처럼, 소설을 쓸 때는 항상 철저하게 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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