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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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사라진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
인간 사회에서는 지금도 고통이라는 미명 하에 많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고통으로 사랑을, 믿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들에게 손쉽게 사이비라는 이름을 붙이곤 하지만 과연 사이비뿐일까. 부모조차도 사랑이라든가 가르침이라든가 하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 고통과 폭력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고통 끝에 아무 것도 없다면 그 때엔 뭐라고 할 것인가.

경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족쇄처럼 달려있던 부모를 죽인 태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그가 느끼는 고통은 경이 느끼는 고통과 비슷하다. 경은 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태의 고통과 같지 않다. 모든 고통이 그렇다. 다만 우리는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상상하고 함께 느낄 뿐이다. 그럼에도 고통은 합치될 수 없고, 나의 고통은 온전히 나의 고통이고, 너의 고통은 온전히 너의 고통일 뿐이다. 이 외로움을 우리는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경뿐만 아니다. <고통에 관하여>의 인물들은 자신의 고통-그것이 몸의 고통이든 마음의 고통이든-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친다. 그러다가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하고…함께 걷는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경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신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태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현은 경의 고통을 모르지만 태는 경의 고통을 안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는 함께하며 서로의 고통을 탐색하고 공유할 수 있는 상대다. 기억하고 있는, 아는 고통이란 얼마나 안전하게 느껴지는가. 우리는 딱 그만큼을 참을 수 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미지의 무언가가 찾아올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견디기 위해 필요한 인내의 양도 정해져 있다. 추락도 변화도 없다. 말하자면 '알고 있는 안전한 길'이다.
하지만 경은 태를 선택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비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강렬한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즉각적인 유대감을 맺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통과 고통의 탐색은 오히려 경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켰다.
고통의 탐색에 매몰되면 결국 과거의 고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던 그 고통으로 돌아가 결국 다시 그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 301p


경은 그 대신 자신이 모르는 것을 가득 안고있는 현에게 돌아간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이 낳기를 결정하고, 그토록 두려워했던 '약'을 먹기로 한다. 현에게는 가벼운 투로 이야기했지만, 고통을 참지 않고 약을 먹겠다는 그녀의 결정은 그야말로 인생의 가치관을 뒤집는 거대한 결심이다.

이야기는 의외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전혀 '의외'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이 긴 고통의 이야기는 결국 공감과 연대, 사랑을 찾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배우자, 위험한 줄 알면서도 당장의 쉴곳이 필요해 사이비 쉼터를 찾는 사람들,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자녀들…현실 도처에 널려있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요소들 때문에 가끔은 읽다가도 이것이 SF소설인 것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원래도 SF가 현실에 맞닿은 삶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아했는데, 특히나 이번 이야기는 물리적인 거리도 가깝게 느껴져서 읽는 내가 다 고통스러웠다.

의미 없는 고통은 거부해야 한다고, 힘들고 괴로운 일이 모두 다 가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작가님의 한 마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맞다. 인간은 괴롭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설령 (창조자라는 게 따로 있다면)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고통스럽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걸 결정하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의 몫이다.

간만에 읽은 정보라 작가의 작품이다. 읽기 전에 오랜만에 <저주토끼>도 복습했는데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기저에 깔려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유대감이 느껴지는 게 좋았다.
미국 시간으로 15일 오후8시, 그러니까 내일 오전 10시에 전미도서상 발표가 있다는데...작가님에게 즐거운 소식이 있기를ㅎㅎ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견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신병의 징후로 의심되었다. - P29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 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 P285

흉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흉터는 상처와 고통과 회복의 과정과 회복에 동반하는 망각과 그림에도 불구하고 회복 뒤에 남는 감정과 기억을 대표했다. 경이 탐색했던 것, 탐색해서 되찾으려 한 것은 그 기억이었다. 신체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상처 입은 흉터투성이 존재를 떠안고 죽는 순간까지 망가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그러한 삶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존재를 그녀는 찾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도 성욕도 아니었다. 사랑이나 성욕보다 더 깊은 어떤 것이었다. 망가졌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다는 숭인을, 같은 경험을 가진 다른 존재를 통해 재확인하고자 하는 생의 가장 깊은 추동이었다. - P301

탐색은 실패했다. 이제 경은 그 사실을 이해했다.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비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강렬한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즉각적인 유대감을 맺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통과 고통의 탐색은 오히려 경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켰다.
고통의 탐색에 매몰되면 결국 과거의 고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던 그 고통으로 돌아가 결국 다시 그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 P302

"너는 내 삶의 어떤 부분을 아주 크게 부숴놨어. 물론 이미 망가져 있어서 차라리 부숴버리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너한테 부탁한 적이 없어. 그러니까 너는 내 인생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마음대로 부술 권리가 없어."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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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스타 로봇의 자살 분투기 ㅣ NEON SIGN 2
클레이븐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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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요즘의 가장 핫한 소재는 AI-로봇인 것 같다. 최근에 나온 영화들 중에서도 AI를 중요소재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 꽤 된다. SF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어찌됐건 반갑다. 


<록스타 로봇의 자살 분투기>는 인간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철저하게 로봇-민수의 시각에서 움직이는 이야기지만 하드한 정통SF라기보다는 오히려 좌충우돌 모험기에 가깝다. 굳이 비교하자면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떠오르는 작품이랄까.


이야기의 배경은 로봇 양로원 안티오크. 민수는 인간식으로 표현하자면 늙은 로봇이고…그는 양로원의 '검은손'이다. 양로원은 얼핏 낡고 오래되어 쓸모를 다한 로봇들을 수용하여 돌보는 안식처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들 여기저기 망가져 삐걱대는데 고쳐주는 사람은 없다. 가끔 주기적으로 '인간 아이들'이 와 그들을 돌볼(돌볼?)뿐이다. 민수가 마약과 부품을 비싸게 밀수해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주인공치고는 제법 못됐다. 인정사정 없고, 인간을 싫어하고, 자신의 과거도 싫어한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온갖 밀수밀매…불법이 허용되는 지금의 생활뿐이다.

자살을 하고 싶다고 떠들어대는 한물 간 록스타 로봇 티코가 그의 룸메이트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민수의 평화로운 검은손 생활은 그의 요란한 존재로 인해 풍비박산 나고 만다. 안타깝게도 민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다 티코를 좋아했다. 오직! 민수만이 그의 노래에 괴로워할 뿐이다.

그러던 와중 마피아 보스 돈 까밀레오가 그에게 대부처럼 '은밀한' 제안을 해온다. 바로 록스타 로봇 티코의 머리를 가져오는 것.

그의 개인적인 이유야 어찌됐건, 민수 생각에는 그의 제안을 들어주기만 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 같다. 자살하고 싶은 티코도, 티코의 머리를 갖고 싶은 돈 까밀레오도, 그리고 티코가 없어야 행복한 민수 자신까지도.


티코가 자살하고 싶은 이유는 별 게 아니다. 록스타는 멋지게 자살해야 남들의 기억에 남는다, 이게 전부다. 그야말로 록스타다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누구나 주목할 만한 멋진 자살을 꿈꾸고, 민수는 그런 그를 별나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민수는 그야말로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로봇이니까.


“넌 이런 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거야? 막 더러운 노래라든가, 아니면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아냐, 아냐. 모든 노래는 다 좋은 노래야. 그중에 더더욱 전설적으로 좋은 노래가 있을 뿐이지. 자, 다음 곡 간다.”

록스타 로봇의 자살 분투기, 149p


하지만 사실 그들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여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다.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손으로 자기 자신의 갈 길을 고르는 것.


이제 인간들은 인간보다 로봇을 더 친숙한 존재로 느끼고 있었다. 민수 역시 그들의 심경을 아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육아 로봇의 손에 커서 장례지도사 로봇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모든 인간이 그랬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이 로봇을 아예 부모처럼 여기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록스타 로봇의 자살 분투기, 53·54p


처음엔 로봇을 부모처럼 여기게 됐다면서 로봇들 말년 취급이 대체 왜 이러지 싶었다. 사실상 죽지 못하게 막는 것만 빼면 쓰레기처리장과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거창하게 로봇 양로원이라고 만들어서, 사실은 제대로 돌봐주는 것도 아니면서…….


하지만 인간이라고 다른가? 물론 끝까지 부모와 조부모를 잘 봉양하는 사람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제법 많다. 한 달에 한 번은 무슨, 일 년에 한 번도 잘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리며 요양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어린아이일 적에 요양원 위문 방문을 해본 적이 있었던 게 퍼뜩 기억이 났다. 그 때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닌데 내가 왜 가지? 그 분들도 내가 친손자가 아닌데 반겨줄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나 로봇요양원을 방문한 인간아이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다치지 않게' 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뽁뽁이를 끔찍이 싫어하는 장면도 마치 아직 정정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휠체어나 지팡이 사용을 질색하는 것과 겹쳐 보여서 꽤 재미있게 느껴졌다.


“세상이 이러면 안 되지! 우리의 자유와 존엄은 어디로 갔지? 우린 철장 안 원숭이나 전시품 따위가 아니야! 죽고 싶으면 죽고, 살고 싶으면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정말로 우리를 생각해준다면, 적어도 선택권이라도 줄 수 있는 거 아냐?”

록스타 로봇의 자살 분투기, 175p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기에, 이야기에 등장하는 로봇 중 그 누구도 심오하게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탐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스스로의 손으로 결정하고 싶을 뿐이다. 남들이 정해주는 가치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순 없다. 알게 뭐야? 일단 이렇게 깨어났으니, 내 마음대로 살고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죽음마저도.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것은 의도치 않게 그들이 양로원을 탈출하게되면서 벌어지는 모험극과 활극이었는데 그 부분이 생각만큼 길지는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그들이 좀 더 깽판(?)을 쳐주길 기대했는데🙄🙄 하지만 왠지 내가 기대하는 그런 좌충우돌 활극은 엔딩 이후에 존재할 것 같으니…혹시라도 작가님이 내주실 후속작을 기대해본다ㅎㅎ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제 인간들은 인간보다 로봇을 더 친숙한 존재로 느끼고 있었다. 민수 역시 그들의 심경을 아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육아 로봇의 손에 커서 장례지도사 로봇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모든 인간이 그랬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이 로봇을 아예 부모처럼 여기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54

"넌 이런 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거야? 막 더러운 노래라든가, 아니면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아냐, 아냐. 모든 노래는 다 좋은 노래야. 그중에 더더욱 전설적으로 좋은 노래가 있을 뿐이지. 자, 다음 곡 간다." - P149

"세상이 이러면 안 되지! 우리의 자유와 존엄은 어디로 갔지? 우린 철장 안 원숭이나 전시품 따위가 아니야! 죽고 싶으면 죽고, 살고 싶으면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정말로 우리를 생각해준다면, 적어도 선택권이라도 줄 수 있는 거 아냐?"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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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도쿄 하우스
마리 유키코 지음, 김현화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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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1년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아파트 단지에서 3개월간 생활하면 500만엔을 준다. 이 기획에 혹해 두 가족, 여덟 명의 인원이 리얼리티쇼의 출연을 승낙한다. 분명 책 소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영 엉뚱한 데에서 출발한다. 첫 기획에서는 1961년도 아니고, 아파트 단지도 아닌, 100년 전의 도쿄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 장을 넘기면, 100년 전 도쿄 이야기는 노련한 방송계 사람들의 손에 놀아나더니 순식간에 '1961년 아파트 단지의 생활상 재현 리얼리티 쇼'로 바뀌게 된다.

'리얼리티 쇼'는 다분히 모순적인 그 이름처럼 스탭들의 집요한 터치 아래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진다. 빈부격차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가구 세팅, 그리고 급기야는 계약서를 협박처럼 흔들어대며 은근한 행동 유도까지. 이 세트장에서 진정으로 리얼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리얼한 것은 오직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는 게시판 속 사람들의 반응 뿐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야마다네의 큰딸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급변한다. 이것이 단순한 사고도, 우발적 범죄도 아니라는 것은 금방 드러난다. 마치 '리얼리티 쇼'라서 정교하게 세팅되었던 것 같은 인물의 관계 설정이나 엑스트라의 세세한 행동 지시 하나하나가 전부, 진짜 1961년에 이 단지에서 일어났던 어떤 끔찍한 사건을 재연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무려 이야미스(いやミス)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마리 유키코의 작품이다. 처음 다카야가 기획안을 들고 나타난 순간부터 모든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 1961년은 어떻게 선정된 년도인지, 로케이션은 정말 우연히 발견된 것인지, 두 가족의 선정 과정엔 누구의 입김이 들어갔는지...

작가는 결코 독자들에게 쉬운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범인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범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비밀을 쥐고 있다. 그리고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따라가듯이 그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고, 또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감춰져있던 어두운 진실이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초반의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느껴지는 강박적인 분위기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마조마한 느낌이 좋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사건의 진상' 풀이에 무게가 실리면서 그 느낌이 옅어지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하나씩 비밀이 밝혀질 때의 짜릿함은 분명 이 작품의 강점이다.

세트장 같은 정교한 배경 설정과 개성을 가진 인물 때문인지 영상화가 되어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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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마지막 여름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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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눈부신 도시의 일면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레오는 말하자면 그 공허한 그림자를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섬세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북적이고 활기찬 향락의 도시 로마에서의 생활을 한껏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그림자 같은 관찰자이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숨소리도 죽인 채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그런 그의 앞에 그녀-아리아나가 나타난다. 그녀를 두고 레오는 이렇게 묘사한다. 배 위에서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철새 같다고. 몽환적이고, 이질적이고, 막연히 긴장한 듯 보였다고.

레오는 아리아나에게 자신이 그저 잠깐 눈물을 훔치기 위해 필요했던 손수건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지만 어찌되었든 둘은 (레오의 차를 가지러 가기 위해) 함께 로마의 밤거리를 나선다. 그들은 둘이서 함께 밤새 시간을 보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많은 일이 일어난다. 독자는 평이한 문장들 속에서 그들이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 불꽃이 튀는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는 없다. 아리아나와 레오는 우연처럼 가끔 만나고, 자주 엇갈린다. 레오는 아리아나가 희곡 작가와 만난다는 사실을 질투하고, 자신이 한낱 타이피스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레오는 자신이 아리아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아리아나도 그것을 알지만 그들은 결코 서로에게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지 않는다. 오히려 레오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된 지금, 바로 지금처럼 그녀가 정말 내 여자인 것처럼 느껴진 적이 없었다. 참 운도 없다. 나의 불운은 그녀가 다른 사람의 여자일 때만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도 남은 음식처럼 누군가의 잔재일 때만 내 여자가 되는 것이었다. - 240p

친구 그라지아노가 죽고나서야 레오는 비로소 자신이 이 도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고, 걸치고 있는 옷으로 사람을 취급하는 이 경박한 도시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시금 재회한 아리아나는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사치스럽게 돈을 허비하며, 레오와 함께 영원히 선택할 수 없는 어떤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런 걸 감당하지 못한다고 담담하게 사실을 이야기하는 레오의 모습을 보고있자면 오래된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5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인데도 마치 어제 막 태어난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졌다. 마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고 있을 도시 로마 그 자체인 것만 같다. 스펙타클한 사건사고도, 뜨거운 정열도 없지만 오직 날카로운 통찰력과 아름다운 문장만으로 이야기를 밀고나가는 힘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마지막장을 덮은 후에도 레오의 마지막 표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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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리플리 ㅣ 리플리 5부작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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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양은 가득히, 리플리, 리플리 증후군…… 아마 누구라도 이 중 하나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뭐, 실제로 리플리 증후군은 학계에선 전혀 사용되지 않는 한국만의 콩글리시 신조어라고는 하지만…잘 만들어진 창작물의 영향력은 이토록 거대하다.


흔히 알고있는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용어의 쓰임과 달리 실제로 소설 속 톰은 허언증 환자라기보다는 스스로의 거짓말을 잘 알고 있는 능수능란한 사기꾼이자 살인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와도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는 계층의 벽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그 계층의 벽 너머 세상에 아무 노력이나 대가 없이 살고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자신의 거짓말과 범행이 탄로날까 두렵고 조급한 마음에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탐정이나 경찰이 아닌 범죄자의 시선으로 그 스스로의 범죄 행적을 따라가는 범죄소설이다. 철저하게 리플리의 시점을 따라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리플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독자도 알 수 없다. 그가 힘들게 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으면 독자도 그가 힘들게 얻은 신문의 문장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바다 건너 디키의 부친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오로지 디키의 부친이 톰에게 보낸 편지, 혹은 디키에게 보낸-그리고 톰이 빼돌린- 편지만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전부다. 하지만 이 갑갑한 시야 덕분에 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사기꾼이자 살인자인 리플리에게 공감하게 된다. 그가 말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자꾸만 믿게 된다. 분명히 어쩔 수 없는 일도 아니었고,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철저하게 계획적인 범죄였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고도 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 디키를,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다시 돌아온 '톰 리플리'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망상병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거짓말을 꾸며내기 위해 그 장면을 상상하고 몰입하는 과정은, 어쩌면 그가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거짓말을 깊게 믿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1권의 말미에서 그는 마치 건실한 일을 통해 성공한, 혹은 막 성공하려 하고 있는 희망찬 사람처럼 가장 좋은 호텔로 가달라 호령한다. 그 활기찬 문장을 읽고 있자면 그가 유럽으로 향하는 배에서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그동안 그림의 떡처럼 보아왔던 고급 꽃바구니를 보며 울음을 터뜨렸던 장면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는 정말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걸까? 그는 이 새 출발을 기꺼이, 아무 죄책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하지만 진짜 '톰 리플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건네질 말은 단 한 마디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내 옷 벗었으면 좋겠어." 

 

서평에 이런 이야기가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어딘지 옛날 책 같은 느낌을 주는 폰트와 좁은 줄간격, 그리고 대조적으로 큰 숫자들 때문에 소설을 읽는 한편으로는 마치 잘 짜여진 연극을 보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분명히 한 권으로도 완결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리플리의 남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 다음 권을 집어들게 되는 마성이 있다. 서평단을 통해 1권을 선물받은 것이지만 결국 내돈내산으로 나머지를 다 읽게 될 듯…^^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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