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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고통이 사라진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
인간 사회에서는 지금도 고통이라는 미명 하에 많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고통으로 사랑을, 믿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들에게 손쉽게 사이비라는 이름을 붙이곤 하지만 과연 사이비뿐일까. 부모조차도 사랑이라든가 가르침이라든가 하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 고통과 폭력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고통 끝에 아무 것도 없다면 그 때엔 뭐라고 할 것인가.
경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족쇄처럼 달려있던 부모를 죽인 태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그가 느끼는 고통은 경이 느끼는 고통과 비슷하다. 경은 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태의 고통과 같지 않다. 모든 고통이 그렇다. 다만 우리는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상상하고 함께 느낄 뿐이다. 그럼에도 고통은 합치될 수 없고, 나의 고통은 온전히 나의 고통이고, 너의 고통은 온전히 너의 고통일 뿐이다. 이 외로움을 우리는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경뿐만 아니다. <고통에 관하여>의 인물들은 자신의 고통-그것이 몸의 고통이든 마음의 고통이든-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친다. 그러다가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하고…함께 걷는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경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신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태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현은 경의 고통을 모르지만 태는 경의 고통을 안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는 함께하며 서로의 고통을 탐색하고 공유할 수 있는 상대다. 기억하고 있는, 아는 고통이란 얼마나 안전하게 느껴지는가. 우리는 딱 그만큼을 참을 수 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미지의 무언가가 찾아올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견디기 위해 필요한 인내의 양도 정해져 있다. 추락도 변화도 없다. 말하자면 '알고 있는 안전한 길'이다.
하지만 경은 태를 선택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비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강렬한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즉각적인 유대감을 맺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통과 고통의 탐색은 오히려 경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켰다.
고통의 탐색에 매몰되면 결국 과거의 고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던 그 고통으로 돌아가 결국 다시 그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 301p
경은 그 대신 자신이 모르는 것을 가득 안고있는 현에게 돌아간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이 낳기를 결정하고, 그토록 두려워했던 '약'을 먹기로 한다. 현에게는 가벼운 투로 이야기했지만, 고통을 참지 않고 약을 먹겠다는 그녀의 결정은 그야말로 인생의 가치관을 뒤집는 거대한 결심이다.
이야기는 의외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전혀 '의외'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이 긴 고통의 이야기는 결국 공감과 연대, 사랑을 찾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배우자, 위험한 줄 알면서도 당장의 쉴곳이 필요해 사이비 쉼터를 찾는 사람들,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자녀들…현실 도처에 널려있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요소들 때문에 가끔은 읽다가도 이것이 SF소설인 것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원래도 SF가 현실에 맞닿은 삶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아했는데, 특히나 이번 이야기는 물리적인 거리도 가깝게 느껴져서 읽는 내가 다 고통스러웠다.
의미 없는 고통은 거부해야 한다고, 힘들고 괴로운 일이 모두 다 가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작가님의 한 마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맞다. 인간은 괴롭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설령 (창조자라는 게 따로 있다면)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고통스럽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걸 결정하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의 몫이다.
간만에 읽은 정보라 작가의 작품이다. 읽기 전에 오랜만에 <저주토끼>도 복습했는데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기저에 깔려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유대감이 느껴지는 게 좋았다.
미국 시간으로 15일 오후8시, 그러니까 내일 오전 10시에 전미도서상 발표가 있다는데...작가님에게 즐거운 소식이 있기를ㅎㅎ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견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신병의 징후로 의심되었다. - P29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 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 P285
흉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흉터는 상처와 고통과 회복의 과정과 회복에 동반하는 망각과 그림에도 불구하고 회복 뒤에 남는 감정과 기억을 대표했다. 경이 탐색했던 것, 탐색해서 되찾으려 한 것은 그 기억이었다. 신체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상처 입은 흉터투성이 존재를 떠안고 죽는 순간까지 망가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그러한 삶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존재를 그녀는 찾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도 성욕도 아니었다. 사랑이나 성욕보다 더 깊은 어떤 것이었다. 망가졌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다는 숭인을, 같은 경험을 가진 다른 존재를 통해 재확인하고자 하는 생의 가장 깊은 추동이었다. - P301
탐색은 실패했다. 이제 경은 그 사실을 이해했다.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비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강렬한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즉각적인 유대감을 맺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통과 고통의 탐색은 오히려 경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켰다. 고통의 탐색에 매몰되면 결국 과거의 고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던 그 고통으로 돌아가 결국 다시 그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 P302
"너는 내 삶의 어떤 부분을 아주 크게 부숴놨어. 물론 이미 망가져 있어서 차라리 부숴버리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너한테 부탁한 적이 없어. 그러니까 너는 내 인생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마음대로 부술 권리가 없어."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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