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 - 생명의 씨앗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지음, 유혜인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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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듄>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너무나 궁금했던 단편 [듄으로 가는 길]... 마침 황금가지에서 이 단편이 포함된 프랭크 허버트의 초기 단편들을 두 권의 단편집으로 내어준다길래 얼른 서평단을 신청했다.
내가 받은 단편 <생명의 씨앗>은 [듄으로 가는 길]을 포함해 총 1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편집 2권 중에서는 후반부에 해당함. 듄 세계에서도 꽤 중요한 요소로 다뤄지는, 유전을 통한 기억의 전이 개념을 다루는 단편 [GM 효과]도 수록되어 있다.

단편집의 매력은 내가 원하는 작품을 골라볼 수 있다는 것... 당연하게도 제일 먼저 맨 뒤에 실린 [듄으로 가는 길]부터 펼쳤다. [듄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듄-행성 아라키스를 방문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이자 해설서이다. 삽화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정말로 내가 곧 아라키스를 방문할 여행객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건 [벼룩의 벼룩]... 마지막 한 페이지의 반전이 너무 흥미로웠음. 진짜 알면 재미 없는 반전이니 제발 읽어주세요...
[메리 셀레스트식 이사]도 재미있었다. 내가 아는 그 메리 셀레스트 호 사건을 얘기하는 게 맞나? 하며 펼쳤는데, 그 사건을 빗대어 만든 게 맞긴 한데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한편으로는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나기도 했다.
[피아노 수송 작전]도 감동적이었다. 왜 인간은 돈 안 되고 손해인 일에도 이렇게 대책없이 낭만적으로 굴게 되는 건지.

듄의 초기 길잡이로 알려진 [듄으로 가는 길]이나 [GM 효과]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들에서도 은은하게 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진보된 기술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나, 특수한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인 알력싸움 등이 무척 흥미롭다.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단편들인데, 이게 짧게는 40년에서 길게는 6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소설이라니...
베네 게세리트 개념이 처음 언급됐다는 [건초 더미 작전]도 궁금하니 나머지 한 권은 내돈내산 해야겠음...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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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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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마법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수능 등급, 대학 레벨처럼 등급으로 그 재능을 평가할 수 있다면? 마법 재능은 역장이라는 이름의 물질로 구체화되는데, 심지어 이 구체화된 '재능'을 장기 이식하듯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현대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한 형태로 빚어놓은 듯한 심너울 작가의 새 SF 신작의 세계관이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를 처음 읽었을 때 톡톡 튀면서도 예리한 시선으로 현대 사회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더 정교하고 살벌한 작품으로 돌아왔다.

<갈아만든 천국>은 허삼관 매혈기를 패러디한 듯한 제목 [허무한 매혈기]라는 단편으로 시작해 [핏빛 귀환]로 끝나는 연작 소설이다. 앞 이야기에서 등장해 마음이 쓰이게 만들던 인물이 다음 이야기에서 주인공으로 나타나거나, 혹은 깜짝 놀랄 역할로 등장하여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기도 한다.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들이지만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연작 소설 특유의 재미가 가득하다.

마법은 인간 세상에 내려진 축복이라기보다는 남을 갈취하거나 혹은  갈취당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어떤 무형의 것이 존재할 때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밑바닥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세상에 나타난 황금사과처럼 느껴진다. 높은 등급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마법적 재능이 없어야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없는 놈은 없는 놈대로 자신의 불운을 비관하며 남의 마법을 욕망하고, 있는 놈은 있는 놈대로 괴로워하거나 혹은 현실의 금전적인 압력에 치여 매혈을 하듯 마법능력을 '판다'. 그야말로 갈아만든 천국이라는 불길한 제목 그 자체다. 인간은 정말이지 어떤 사회, 어떤 조건에서도 계급을 만들고 남 위에 올라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못돼먹고 답 없는 종족인걸까?

하지만 작가가 인간 세상을 오직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떳떳하지 못한 일에 종사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 양심의 호소를 도저히 무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과거 철없던 시절 저지른 실수를 계속 곱씹으며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비록 지금은 바닥에 주저앉은 것처럼 보이고 영원히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인간은 아주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작가가 슬쩍 던져준 마지막 희망 덕분에 씁쓸한 마무리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중간 중간 영혼을 찌르는 듯한 심너울 작가 특유의 블랙코미디 말투가 아주 인사적이고 재미있었음!!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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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곰
메리언 엥겔 지음, 최재원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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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인간은 이런 질문을 상대에게, 혹은 내면의 자신에게 던지곤 한다. 만약 내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날 사랑했을까? 그에게 이런 점이 없었다면 그래도 내가 그를 사랑했을까? 질문들은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외향이나 취향, 혹은 어떤 조건에 대한 고민이지만 이 질문들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그가 나의 어떤 모습을(그게 외형이든 아니면 나의 이력이든 취향이든) 좋아한다면 그것이 배제된 나는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의 사랑을 '받고'있는 그 부분을 나의 본질로 봐야할 것인가? 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는 내 고집스러운 자아를 버리고 그가 원하는 어떤 모습을 수행할 수 있을까? 그 때의 나는 진짜 나인가?

주인공 루는 이런 고민을 내재화시킨 외로운 여성이다. 그녀는 토론토의 역사 협회에 소속된 사서로, 어떤 대령의 후손이 남긴 고택의 서재를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고 토론토를 떠나 연고도 없는 온타리오 북부의 캐리 섬에 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안내를 담당하는 이웃집 남자 호머로부터 이 섬에는 대령이 남긴 곰이 한 마리 있으며, 자신은 이제부터 그 곰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곰은커녕 다른 동물에도 큰 관심이나 애정이 없었던 그녀는 이 예기치 못한 동거에 당황스러움과 호기심을 느낀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곰은 예상과는 달리 마치 늘어진 덩어리 같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곰에게 먹이를 주고, 그렇게 그들은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느리지만 꾸준히 서재를 탐독하는 업무를 지속해나가며 루와 곰의 거리는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루 자신이 느끼는 거리다. 곰은 그저 자신이 굴고 싶은 대로 굴고 있을 뿐이며, 루는 곰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던 중, 루는 자신이 곰을 사랑하고 있음을 불현듯 깨닫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또 욕망하는가. 자신의 마음을 긍정하게 된 루의 모습은 충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몹시 자유롭다. 루는 곰에게 어떤 모습을 요구하지 않으며, 곰 역시 루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루는 곰에게 '내 머리를 뜯어내달라'고 대담하게 외치지만 곰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 한다. 그 외침은 곧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루 자신이 스스로에게 확인시켜주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곰과 함께 동화처럼 행복한 삶을 꾸리지 않는다. 곰과 함께 잠깐씩 즐거운 시간을,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흘러가는 시간의 일부에 불과하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간 끝에 그녀는 결국 자신이 곰과는 함께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물리적 상처를 동반한 그녀의 거절이 그간 보냈던 시간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곰에게 사랑을 느꼈던 그 순간을 그저 그 형태 그대로 이름 붙이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인간'의 이유나 다른 핑계, 적당한 의미를 가져다 붙이지 않고 그 모호한 형태 그대로 남겨두는 것. 그것이 루가 사랑을 이해하고 또 삶을 회복하는 방식이다. 그런 루가 역사를 파헤치고 해독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여성이라는 점 역시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다.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문제작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긴 하지만 각오를 하고 읽은 덕분인지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곰과 사랑하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로 읽으니 그들의 사랑이 어떤 형태인지, 왜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는지에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앨리스 먼로와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영향을 준 여성 작가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신청한 서평인데, 읽으면서 사고의 저변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시작으로 더 많은 책이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맘이다.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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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의 오리무중 트리플 23
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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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집에 두고 다닐 수 있다면 어떨까? 자아를 가방처럼 집에 두고 다니거나, 경량패딩처럼 차곡차곡 접어서 휴대할 수도 있다면?

하지만 일터의 나와 분리된 자아는 내 맘처럼 착실하게 자아실현을 하기는커녕 저 혼자 살이 찌고 비대해지기도 했다가 저 혼자 상처받아 쪼그라들어 소멸하기도 하는데, 자아가 이건 진짜 삶이 아니라고, 이렇겐 못 살겠다고 도망가버리면…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박지영 작가의 『테레사의 오리무중』은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뻔뻔하게 현실처럼 이야기하는,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현실적인 소설이다.

『테레사의 오리무중』은 한국 문학의 신인 작가를 소개하는 자음과 모음의 '트리플' 시리즈의 스물세 번째 작품으로, 트리플이라는 명칭처럼 한 권에 세 편의 단편이 묶여 소개된다. 표제작인 <테레사의 오리무중> 외에도 계약직 영우와 미술관 정규직 학예사 정 사이의 관계를 담은 <올드 레이디 버드>, 그리고 평생 실패한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부친 독고 씨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그의 죽음을 세일즈하는 장남 현수의 이야기 <장례 세일> 이렇게 두 편이 함께 실려있다.

선우은실 평론가는 이 소설들을 두고 노동소설이라는 표현을 쓴다.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다. 물론 세상에는 자본주의 시장의 불의에 맞서서 파업을 하거나 투쟁을 하는 형태의 노동문학도 있지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나는 그런 글도 매우 좋아한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투쟁도 파업도 하지 않고(하지 못하고)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 바로 그 보통의 노동자들의 삶을 세련된 문체로 풀어낸, 말하자면 요즘 스타일의 노동 문학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노동자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노동과 계급과 자아에 대한 고민과 문장으로 가득차있다. 누군가 내 영혼을 엑스레이로 찍어 해부도를 붙여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영혼을 바늘로 찔리는 것 같은 세 편의 단편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자아실현이란 무엇인가?
소위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좋아하는 일'과 '노동으로서의 일'을 분리하고 싶어 한다. 취미를 '일'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게 되면 결국 취미도 싫어지게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니까 요컨대 나의 행복한 자아실현은 노동의 영역 밖에서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자아실현. 멋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일단은 먹고 살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금전적 재화가 필요하고, 그걸 위해 우리는 노동을 한다. 노동의 대가는 금전으로 환산되지만 모든 인간이 동일한 만큼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동일한 노동이 동일한 임금으로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심지어 우리에겐 시간적 문제도 있다. 일단 일과 자아를 분리시켰으니 일하는 시간 8시간 빼고, 그 외에 소위 말하는 먹고 자고 싸는 시간까지 다 제외하고 남는 여분의 시간……그 몇 시간 안에 자아를 실현해야 한다. 하지만 내 하루 24시간 중에 채 서너 시간이 안 되는 시간동안 실현한 자아를 진짜 자아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루에 9시간을 꼬박 버텨야하는 노동현장과 고작 6분의 1만을 투자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현장, 양쪽 중 나는 어디에 소속된 인간인가. 그 소속이 나를 진정으로 증명할 순 있는 건가.

어쨌든 그것을 진짜 진실된 자아라고 간주하고, '자아야, 너는 안전하게 집에서 자아실현 해, 재미도 없고 힘들고 따분하기만 한 일은 내가 할게'하고 나선 노동이라면 그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매길 수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환산되고, 또 어떻게 계급지어지는가. 그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 자본주의사회에서 무엇을-어디까지 돈이라는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도달하게 된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렸을 이런 의문에 대해 작가는 자아를 두고 출근하다 자아를 잃어버린 테레사, 비정규직 영우, 아버지 죽음을 팔고자하는 현수를 통해 날카로운 사유를 던진다.

하지만 테레사와 영우, 현수가 처한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독자인) 내 삶도 충분히 힘든데, 왜 나는 활자로 쓰여진 또 다른 내 삶 같은 이야기를 읽고 있나 싶다. 정의 소망과는 달리 여긴 해피엔딩도 없고, 그들의 삶 만큼이나 내 삶도 답 없게 느껴진다.

자아 실현이란 터무니없는 꿈 같은 얘기처럼 느껴지고 보통의 삶은 내가 영원히 넘어갈 수 없는 선 너머에 위치해있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존엄도 돈받고 팔아야 하는 처지에 영영 갇혀버린 것 같은데, 이 삶에 진정 탈출구란 없는 것일까?
답도 보이지 않는 이 암담한 질문에 대해, 작가는 정답 대신 주경이라는 인물을 내민다.

'중간관리자'라는 직책처럼 중간지대에 있는 주경은 별의 별 이유로 테레사와 영우와 현수의 삶에 성큼 끼어드는 인물이다. 물론 그녀가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테레사한테 삼백을 빌려줘서, 영우가 임시보호하던 고양이를 키우게 되어서, 사정을 잘 모르고 수화기 너머로 현수에게 심한 말을 해서……. 물론 그건 한편으로는 핑계에 불과하다. 그녀는 삼백 쯤 똥 밟은 셈 치고 털어버릴 수도 있었고, 영우의 문자에도 답해줄 의무가 없으니 무시하면 그만이었고, 면접에 안 온 구직자야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알 게 뭐냐고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 한켠에 고인 불편함을 털지 못하고, 보통의 세계에서 도태되고 배제된 듯 보이는 화자들의 방문을 두드린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거 같고, 하지만 다르게 살자니 답도 없어 보이고, 뭔가 패배하는 거 같아도…어쨌든 살자고, 살아서 저벅저벅 걸어나가자고 말하는 듯한 인물. 그게 바로 주경이다. 그녀의 존재는 암울해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 소설들의 뒤편에서 작가가 내미는 작은 위로의 선물 같다.

책장을 덮어도 노동의 현실은 지속된다. 나는 여전히 내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9시까지 출근을 할 것이고, 6시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다 퇴근할 것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테레사처럼 소중한 자아를 집에 두고 일을 하러 다닐 수도 있고, 아니면 주경처럼 자아를 잘 접어다가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닐 수도 있다. 어쩌면 여전히 내가 노동으로 창출하는 건 현수처럼 팔면 안 될 거 같은 존엄까지도 금전으로 환산한 무언가일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의 곁에는 주경이 있다. 혹은 우리가 주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터무니없이 싱겁게 느껴져도, 대단한 도움이 아니더라도,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연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삶. 그거야말로 이 모순적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목표가 아닌가 싶다.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확실히 누추한 일터에 귀한 자아를 데려오는 건 테레사 같은 초짜들이나 하는 실수였다. (중략) 일터에 자아까지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이 귀한 진리를 깨우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테레사는 이 모든 영광을 주경에게 돌렸다. 테레사의 말하자면 에피파니의 순간은 주경의 이런 대사와 함께 왔기 때문이었다.
"하라면 좀(한숨), 그냥 하라는 대로 하세요(지친다, 정말)." - P16

정이 영우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영우가 곧 떠날 사람이라는 것,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는 임시직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어떤 약점을 들켜도 괜찮으리라는 그 임시성이 주는 안도감이 실은, 언젠가 어떻게 다시 만나더라도 영우가 결코 정을 위협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 되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 P73

사소한 불평, 그건 허락된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은 결코 정이 될 수 없었다. 어떤 불평을 하고 어떤 솔직함을 드러내도 그것이 그저 귀여워 보일 정도의 단단하고 이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만이, 작은 불만들을 지저귀듯 털어놓을 수 있었다. - P74

인생은 타이밍이다. 죽음 역시 타이밍이 중요했다. 존엄사라는 건 그런 거였다. 스위스에서 이천만 원, 삼천만 원씩 주고 하는 것도 존엄사긴 하겠지만, 그거야 돈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진짜 존엄사란 이런 거라고 생각했다. 남은 가족이 부담해야 할 장례 비용을 최소한, 3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간 안에 죽어주는 것. 조의금 낼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을 때 죽는 것. 살아서 뭐 대단한 영광이나 추억이라도 애써 만들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닐 바에야.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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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의 세계 - 『듄』에 영감을 준 모든 것들
톰 허들스턴 지음, 강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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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없이 밀리기만 하던 듄2의 개봉일이 2월말로 확정된 지금, 또 하나의 즐거운 소식이 도착했다. <듄>에 영감을 준 모든 것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일종의 듄 가이드북이 출간된 것. 일전에 발간되었던 메이킹필름북이 빌뇌브의 영화 <듄>의 메이킹필름북이었다면 이것은 빌뇌브의 영화뿐만 아니라 듄 세계를 창조한 작가 프랭크 허버트의 생애부터 시작해 기존에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2000년의 미니시리즈, 1984년, 2003년에 각각 개봉된 영화 등, 정말 말 그대로 <듄>에 관한 모든 것이 다 담긴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원작인 소설을 너무너무 좋아했는데, 영화 <듄>을 보고나서 용어가 이해가 잘 되지않는다는 친구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책을 읽어보라고 하기엔 솔직히 양심적으로 분량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얠 내 앞에 앉혀놓고 수업을 해줄 수도 없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출간이 너무나 반갑다. 영화 혹은 책을 보며 듄의 세계에 관심은 가졌지만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것 같아 손댈 엄두도 안 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기에 너무 좋은 책이다. 해설서이자 비평서랄까. 올컬러북이라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영화 <듄>의 스틸컷과 허버트에게 영감을 준 무수한 문학작품들, 영화들, 그리고 실제 사건들과 실재하는 집단들...

영화 <듄>의 파트1만 감상한 경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듄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책이다. 듄이 어떤 사건, 어떤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이토록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창조될 수 있었는지도 꼼꼼하게 기술되어 있어, 듄 찐팬들에게도 무척 즐거운 경험이 될 책인 것 같다.

📖"옛날에 사람들은 생각하는 기능을 기계에게 넘겼다. 그러면 자기들이 자유로워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기계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노예로 삼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절대 예지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만을 원하고 내일은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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