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O
매슈 블레이크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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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을 죽이고 4년째 잠들어 있는 안나 오길비를 깨우기 위해 정부는 수면 범죄 전문가 베네딕트 프린스를 고용한다. 안나의 수첩을 가지고 있는 롤라와 과거 스톡웰 괴물로 불리는 샐리 터너의 친자로 생각되는 환자 X의 존재가 드러나며 사건의 전말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 안나를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고 생각하는 대중들처럼 프린스라는 이름을 가진 베네틱트는 왕자처럼 그를 깨우는 데 성공하지만 오히려 수렁에 빠지게 된다. 진범이 누군지 예상하던 사람도 안나와 관련된 마지막 인물의 죽음의 원인을 알면 소름이 돋지 않을까.

_P.9
"저는 수면 중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연구합니다." 내 명함에는 이름 뒤에 '박사'라는 호칭이 찍혀있다. 베네딕트 프린스 박사, 할리스트리트, 애비클리닉. 나는 수면 전문가다. 의사로 자칭한 적은 없다.
_P.90
"과거에는 FND를 심신증이라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프로이트가 '히스테리'라고 불렀던 증상과 느슨하게 겹치지요. 뇌에서 발생한 기질적인 질병이 아니라 정신 그 자체의 병을 가리킵니다. 모든 대륙과 시기를 통틀어 공통점이 있다면, 희망이 사라져서 완전히 부재하는 현실을 직면할 때 환자는 체념증후군을 겪는다는 겁니다."
_P.423
잠이 약점이 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건 이제 나의 무기다.
카르페 디엠.
_P.434
한 가지 진실이 수백 개의 거짓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거짓은 진실보다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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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아
김필산 지음 / 허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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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이 된 남자」가 선지자가 말하는 세 이야기에 한 부분을 차지한다. SF지만 천일야화가 생각나는 옛날이야기와 시간 여행을 다룬다면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일반적인데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설정도 좋았다. 좋아하는 영화 〔맨 프럼 어스〕가 생각나는 선지자의 존재까지 내 취향을 저격한 소설이다.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리게 돼.

_P.13
”장군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를 아는가? 그에 따르면, 역사란 곧 과거의 사실이라지. 무사이의 영감에 의해 꾸며내지 않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 말이야. 하지만 나는 한발 더 나아가서 이렇게 얘기한다네. 미래 또한 역사다.“
_P.76
”그렇습니다. 저는 태어난 날짜도, 부모님도 알지 못합니다. 제게 있어서 태어난 날은 고려에서 노인으로서 처음으로 세상을 기억한 순간이며, 제 실질적 어버이는 노인인 저를 보살피며 고려식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준 고려인입니다. 제게 인생이란 노인에서 젊은이로, 젊은이에서 아이로 되돌아가는 생애입니다.“
_P.115
”하지만.... 그대의 말은 언제나 그랬소. 미래는 정해져 있다. 역사는 쓰인 그대로 흐른다.... 그렇다면 대체 그대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이오?“
_P.217
”그렇다네. 엔트로피아는 그것의 반대야. 늙어가는 육체와 스러져 가는 제국의 혼란. 깨진 서판과 재가 된 책에 잠재된 무의미함. 그것들을 측정하는 양이지.“
_P.241
미래란 결정되어 있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밝혀진지 오래다. 그럼 자유의지란 허상인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유의지는 존재한다. 과거에 난 내 자유의지에 따라 어떤 선택을 했고, 현재가 바로 그 선택에 의해 형성된 미래이다.
_P.294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조부진은 재빨리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점령한다. 그는 이후로 헌법까지 개정해 30여 년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남게 된다. 취임식 날 그는 연설했다. 미래가 없다면, 미래를 앞서 차지하자. 그는 100년 후 미래, 즉 2189년의 대한민국을 침공하기로 결정한다.
_P.327
모든 미래가 결정론적으로 정해져 있고 변화하는 건 없다고? 그건 비겁한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다. 비록 역사가 바뀌지 않더라도 난 순간순간 미래를 직접 직조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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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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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의 안녕이 굿바이가 아닌 헬로인 것처럼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사강과 지훈이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룬다. 이별도 연애의 과정이라면 이별을 받아들이는 순간까지 연애이기에 연인들의 이별의 시기는 각자 다른 거 아닐까. 사강과 지훈이 타인이기에 각자의 연인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어쩌면 상처를 극복하는 계기는 낯선 상황에서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_P.45
사강의 이별은 일 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자주 뜨거워졌다. 손수건을 쓰려 해도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손수건마저 정수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와 연결되지 않은 물건을 찾는 게 불가능해질 즈음, 사강은 실연이 어긋난 뼈를 다시 맞추듯 죽을힘을 다해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사물을 그와의 기억 쪽으로 되돌리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_P.314
세상에 수많은 다른 언어가 존재하고 번역이 필요한 수많은 사랑과 이별의 언어가 있듯,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기약 없는 사랑에 빠지고, 출구 없는 이별에 넘어지고, 후회하고, 다시 또 사랑에 빠지는 인간이란 너무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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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의 상속녀 캐드펠 수사 시리즈 1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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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윌리엄 노인의 서기인 일레이브는 순례 중 돌아가신 주인을 수도원의 묘지에 모시기 위해 7년 만에 돌아온다. 수도원에 묘소를 마련해 달라는 일레이브의 호소에 성직자들을 회의를 하고 윌리엄에게 이단적인 면모가 있었다는 것이 언급되지만 그가 수도원에 헌신했던 사실과 순례를 했다는 것이 인정되어 묘소가 마련된다. 일레이브는 윌리엄의 가족들에게 주인의 죽음을 알리고 손녀에게 남긴 지참금이 든 아름다운 상자를 전달한다. 윌리엄의 장례식 후 일레이브가 이단적인 주인의 의견에 동의하는 말을 하고 그로 인해 이단자로 고발당한다. 그러나 이단자로 고발된 이유에 음모가 있음을 캐드펠은 눈치챈다. 이단자로 고발된 것은 고발자의 핑계에 불가하지만 교회의 말이 하느님의 말이 아닌데 이의를 제기하면 이단자가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성직자들과 일레이브가 나누는 의견들은 종교에 관심이 많은 내게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시리즈 세 권을 읽으며 작가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_P.101
”하지만 저는 인간이 정말로 선할 수 있고, 또 선하다고 믿어요!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로 죄를 피하고 올바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고요. 인간의 의지는 하느님의 선물이에요. 그걸 사용해야죠! 왜 모든 걸 하느님께 맡긴 채 칭찬을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_P.278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해. 자네와 나는 겨우 닷새 전에 그걸 들어봤고 오늘 다시금 들어봤네. 그리고 그사이 상자가 가벼워졌다는 것, 전과 달리 기울이거나 흔들 때마다 귀에 들리도록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일레이브, 이건 100년 전이 아니라 겨우 닷새 전, 바로 6월 20일에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무언가가 25일인 지금은 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야.“
_P.298
책과 영원하고도 완전한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책은 그와 다른 가치를 지니는 법이다. 책을 위해 속임수를 쓰는 사람도 있고, 훔치거나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손에 넣어봐야 다른 누구에게 그 보물을 보여주거나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책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 그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_P.357
그것을 위해 그는 살인을 했고, 마침내는 그것을 위해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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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정용준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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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비해 처벌이 약했어요. 형량도 가볍고요. 때론 불기소니 불구속이니 하며 죗값을 치르지조차 않았어요. 그랬을 때 누군가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 아니면 피해자가 직접 그 부분을 채워 넣는 것. 그게 잘못인가요?”(P.88) 사적 제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적 제재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사적 제재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법은 믿음직하지 않은 적이 더 많았다. 아동학대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 가족이기에 더 낮은 처벌을 받거나 피해 아동이 가해자에게 돌봄을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진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작가인 유희진은 아동학대의 피해자로 관련된 취재에 몰입하게 되면서 사건에 연루된다. 유희진은 사적 제재를 지지하지 않지만 아동학대 피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나 또한 그렇다.

_P.12
승빈이는 결국 병원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제가 잘못했어요. 맞을 만했어요. 엄마 아빠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마지막까지 부모를 두둔하며.
_P.78
나쁜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일은 한 권의 이야기가 된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상황에 몰입하고 전후 사정을 살피며 인물에 이입한다. 행동을 판단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논쟁한다. 각각의 잣대로 심판하고 판단하며 이야기와 인물을 기호와 식성에 맞게 한 입씩 뜯어먹는다. 시간은 흐르고 아무리 긴 이야기도 결국 끝나는 법. 사람들은 탁, 소리 나게 책을 덮고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그러고 다른 책을 집어 든다. 하지만 사건이 끝나도 인물의 삶은 이어 진다. 나쁜 사람은 갑자기 착해지지 않고 슬픈 마음은 이유 없이 좋아지지 않는다. 좋은 것은 나빠지고 나쁜 것은 더 나빠진다. 덮어버린 책 속에, 책꽂이에 비석처럼 나란히 선 각각의 이야기 속에, 우는 아이가 있다. 슬픈 아이가 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다가 마침내 스스로를 부정하는 아이가 있다.
_P.291
“사형에 적합한 자들은 심판했습니다. 쉽진 않았죠. 그런 이들이 워낙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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