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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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ua Viva는 단어 그대로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물’로 번역되고, 일반적으로는 해파리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의미에는 공통점이 있다. 뼈대가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물’은 뼈대 즉 특정한 형태를 강제하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이며, 그 살아 있는 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해파리는 그 세계와 가장 닮은 개체다.(편집자 주) 『아구아 비바』는 정해진 틀 없이 작가의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진 글로 보여진다. 한눈팔면 흐름을 놓치고 다시 읽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의 글이 난해하다고 평가되는 이유를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읽으며 몸소 느꼈다. 그래서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이해한 부분만 정리하자면 그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은 것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길 바란 것은 아닐까.

_P.17
미래를 맞이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미래가 되고, 모든 시간은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된다.
_P.55
거울이 등장하기 전, 인간은 호수에 비친 그림자 말고는 자기 얼굴을 알지 못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모두가 자신이 가진 얼굴에 책임을 지게 된다. 지금 나는 내 얼굴을 볼 것이다. 맨얼굴. 세상에 내 얼굴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 없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충격을 받는다.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_P.138
당신에게 한 가지 비밀을 말해 주겠다 : 삶은 치명적인 것이다. 지금 다른 모든 걸 멈추고 당신에게 이걸 말해야겠다 : 죽음은 불가능이고 만질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은 그저 미래이기에 어떤 사람들은 그걸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_P.156
내가 당신에게 쓰고 있는 건 ‘이것‘이다. 그건 멈추지 않을 것이다 : 계속 될 것이다.

나를 보고 나를 사랑하라. 아니 : 당신은 당신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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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시간 - 펜글씨로 만나는 세계문학 명문장 모음
유한빈(펜크래프트)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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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출판사에서 세문집을 출간하지만 나는 을유문화사의 세문집을 읽고 모으고 있다. 표지도 가장 예쁘고 휴대하기 좋은 판형에 양장본이고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하지 않는 다양한 나라의 고전을 번역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래서 『필사의 시간』 서평단을 모집할 때 망설이지 않고 신청했다. 나와 너무 다른 필체의 유한빈 님의 글씨를 따라 쓰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고 모든 페이지가 쫙 펼쳐지고 종이가 두껍지 않은데 펜 비침도 없어서 필사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게 느껴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필사할 문장이 하나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2~3문장을 더 제시했어도 좋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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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밤도 노래가 되겠지 - 내일이 두려운 널 위한 BGM
옥상달빛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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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 아니었다면 아끼고 아끼며 힘든 날 몇 장씩 읽었을 것 같다. 특히 《Track 1 누구도 괜찮지 않은 밤이 지나고》의 글들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들었던 옥상달빛의 노래가 생각나서 CD를 찾았다. 만약 지금 힘들다면 그들의 노래를 들어도 좋고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덕분에 적어도 나는 위로 받았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열아홉 살에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었어. 오랜 고민을 하다가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 그때 이후로 나는 매일매일이 새로워. 내가 선택한 삶이잖아.”
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난 과거도 미래도 생각 안 해. 그냥 지금만 생각해. 게으르게 살았든, 열심히 살았든 결국 소중한 하루잖아.”
_윤주, 『현재 위에 굳게 발을 딛고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노래에 감동받아 눈물을 흘린 날, 아직 나를 울게 하고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낸 거라고.
_세진, 『우리는 원래 그런 사람』

세상에는 위로로 가득하다. 백 가지 아픔이 있다면 백 가지 위로가 있는 것도 세상이다. 다만 내가 외면하고 있을 뿐. 나를 둘러싼 많은 것이 나를 힘껏 안아주고 있다.
_세진, 『새들의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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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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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시작부터 시그브리트라는 여성이 살해된다. 피해자가 살인자의 차를 타는 것과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는 것 외에 194쪽까지 살인범에 대해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심지어 독자를 제외하고 수사를 하는 경찰들에게 시그브리트는 실종 상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르틴 베크는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과의 책임자이고 그의 오래된 파트너 콜베리와 함께 실종자를 찾기 위해 안데르슬뢰브에 온다. 시그브리트의 시체가 발견되고 범인의 대한 작은 단서를 알게 되는 게 280쪽이니까 굉장히 느린 흐름의 수사물이다. 그리고 제목처럼 경찰 살해 사건이 후반부에 발생하는데 시그브리트의 사건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새로운 사건이 나와서 놀랐다. 나는 범죄 수사물을 읽으며 범인을 찾는 걸 좋아하는데 이 소설을 그럴 수가 없는 소설이다.

내가 아는 스웨덴 범죄 수사물은 헨닝 만켈의 발란데르 시리즈인데 마르틴 베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헤어질 결심 때문에 알았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닮았다. 주인공이 경찰이고 그들은 경험이 많아 노련할 뿐 특별한 능력이 없으며 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복지 국가라는 스웨덴 말고 그 이면의 어두운 부분을 보여준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10권이 완결이고 『경찰 살해자』가 9권이다. 이 책에 전작의 범인 두 명이 나오는데 그 내용을 몰라도 이 책을 읽는데 문제는 없지만 그 사건들이 궁금하다.

_P.194
”우리가 아는 사실은 아주 간단합니다. 모르도 부인은 10월 17일 수요일 정오경 안데르슬뢰브 우체국을 나섰습니다. 그후로 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모습, 혹은 정류장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고 말하는 목격자가 한 명 있습니다. 끝. 우리가 아는 바는 이게 답니다.“
_P.280
그는 베이지색 볼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시그브리트를 시게라고 불렀다.
수사의 실마리가 될 내용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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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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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의 새로운 보다 시리즈 ≪SF 보다≫ 가제본은 여섯 명의 작가를 만날 수 있지만 정식 출간된 ≪SF 보다≫에서는 배명훈, 심완선 작가의 글을 더 읽을 수 있다. 첫 번째 ≪SF 보다≫의 주제는 ‘얼음’이고 시리즈의 시작답게 라인업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1년에 두 번 출간 예정이라는데 하반기의 주제는 뭘까. 나는 구병모, 남유하, 연여름 작가의 글이 좋았는데 특히 연여름 작가의 『차가운 파수꾼』은 지하철에서 읽다가 울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하는 마음은 항상 날 감동시킨다.

제단 앞에 쓰러져 뒹구는 저 모습은, 비록 머리카락과 피가 서로 엉기어 얼굴을 가리긴 했으나 얼음새꽃이 분명하다. 이미 수차례 정과 망치에 맞은 머리를 미끄러운 빙판에 다시 한번 찧으니 그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흰 얼음 위로 퍼져 나간다. 나에게 손이 있다면, 마지막일 게 틀림없는, 그가 나를 향해 간절하게 뻗어 올리는 저 손을 마주 잡아줄 텐데. 그 모습 그대로 지상의 논리 바깥으로 떠밀려 나간 그의 뜬 눈을 감겨줄 텐데.
_구병모, 『채빙』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얼음이 녹고 살아남은 자들은 얼음 속에 갇힌 나라는 존재를 사한 또는 현명이라 부르며 원하는 것들을 말한다. 그런 나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는 얼음새꽃을 가져올 뿐이다. 나에게 소중한 존재인 그가 죽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도시의 경계에 있는 배반의 호수는 자살자들의 성지다. 죽은 뒤 다른 이들에게 먹히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몸을 던지는 곳이어서 배반의 호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들은 가문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죽은 이를 먹는 법에 반하는 행위는 살인에 버금가는 중죄로 취급된다. 그렇지만 가문에서 ‘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호수를 둘러싼 철조망도 그들의 의지를 꺽지는 못한다. 누군가는 이런 유서를 남겼다. “인간은 다른 이의 살을 영양분으로 섭취하며 생존해야 할 만큼 고귀한 존재가 아니다.”
_남유하, 『얼음을 씹다』

빙하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다. 그래서 가족이 죽으면 먹는다. 이것은 지켜야 할 규칙이다. 내 딸이 죽었다. 나는 절대 내 딸을 먹지 않을 것이고 어머니가 먹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식인이라는 민감한 소재가 나오지만, 유리아의 행동이 너무 처절하고 결말 또한 안타까웠다.

“네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냈다면, 노이. 너는 벌써 그걸로 나를 도운 거야.”
지하를 다녀오면 동통에 시달리며 기진맥진하면서도 이모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아직 열세 살이던 노이에겐 이모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두려움 그 자체였기에, 그런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제발 대답해.”
목소리가 떨리는 건 추위 때문만이 아니다.
“나 그 정도는 알아도 되잖아.“
_연여름, 『차가운 파수꾼』

세상은 뜨거워졌고 자외선을 견디지 못하는 피부를 가진 노이는 아파트의 붕괴를 막아주는 ‘선샤인‘이라는 존재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그러나 선샤인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언젠가는 아파트가 무너질 것이다. 이모가 죽은 후 이제트를 만나지만 이제트는 곧 이곳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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