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보다 Vol. 2 벽 SF 보다 2
듀나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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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란 고립과 단절같은 폐쇄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바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나에게 벽이란 후자에 가까웠다. 『SF 보다』에서 작가들이 만든 벽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벽은 사람을 물리적으로 가둘 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가능성을 가둔다. 벽은 하나의 공간을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고, 안과 밖이 구별되도록 만든다. 이쪽은 안쪽이고, 안쪽에 있는 것은 우리 편이다. 벽 너머 바깥에 있는 것은 상대편이다. 안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벽으로 시야가 가려진 채 바깥을 경계한다. 벽 너머에 있을 모르는 자의 얼굴은 적으로 그려진다. 어쩌면 적을 막기 위해 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벽을 만들기 때문에 적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 주어진 자리를 탈출하도록 돕는 비현실의 힘은 인물이 바깥의 민얼굴을 확인 하도록, 무언가 다른 것을 목격하도록 길을 연다.(P.175) 소설 속 벽 안에 사람들은 주어지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즐기다 잘못된 정보임을 안 뒤에는 정보 제공자를 탓하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한다. 시녀 이야기와 메이즈러너의 세계관처럼 통제되고 조작된 정보를 제공하는 세상을 깨닫고 벗어나려는 시도도 생긴다. 우리는 벽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벽 안에서 안전함을 추구하고 주어지는 것들에 만족해야 할까. 벽 바깥의 세상이 위험해도 나가려고 해야 할까. 더 고민해 볼 일이다.

✦ 문학과지성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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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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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새로운 문명을 만들지만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기에 지구에서와 다르지 않은 일이 생긴다. 그곳에서도 폭력과 비리 등 지구에서와 비슷한 일들이 발생한다. 부디 미래의 화성인들이 지구의 괴물을 그대로 화성에 옮겨놓지 않았기를. 새로 시작한 행성의 문명은 지구에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가뿐히 초월한 문명이기를.(P.303) 작가의 말처럼 그곳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을까.

_P.137
"물질만 순환하는 게 아니라 감정도 순환합니다. 누군가 배설한 감정이 흩어질 공간이 없거든요. 제가 타고 온 우주선에서는 조종사가 부르던 노래를 의사가 3개월 동안이나 따라서 흥얼거렸어요. 무려 90일이나요. 그 사람이나 듣는 저나 아주 미칠 지경이었죠. 우울도, 불안도, 좌절감도 마찬가지예요. 오늘도 지구인들의 동심을 한번 파괴해볼까요? 그런 데 서는 사랑이 피어날 여지가 없어요. 작은 우주선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라니, 그런 건 지구 드라마에나 나오는 거예요.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을 가려서 드러낼 공간이 없으니, 애정은 욕구가 되고 공감은 폭력이 됩니다. 다 배설이죠. 누군가가 배설한 감정은 그 작은 세계를 다섯 달쯤 떠돌아다닙니다. 그게 작은 순환이에요."
『행성봉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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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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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프랑수아즈 사강이 떠올랐는데 샐리 루니가 더블린의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불린다니 신기했다.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 한쪽만 계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복된다. 하지만 인간은 불행할 때 그 불행에 잠식되어 빠져나오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행복한 순간은 짧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_P.395
우리가 함께 행복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뜻이야. 나는 그것이 내 삶의(까다롭고 슬픈) 다른 모든 일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까다롭고 슬픔에 잠긴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전에는 그랬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변화무쌍해. 삶이 오랫동안 비참하다가도 나중에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거야. 그것은 그저 이것 아니면 저것 하는 식의 문제가 아니야. '성격'이라는 홈에 고정되고, 그런 다음 끝까지 그 길을 죽 따라가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한때는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어.

✦ 아르테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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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가 된다 위대한 도시들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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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도시들 3부작으로 계획된 시리즈여서일까 1부 『우리는 도시가 된다』는 이야기 전개가 매우 느리다. 뉴욕의 화신들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만나고 적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2부작으로 출간 계획이 변경되어 최근에 『우리가 만드는 세계』가 나왔는데 1부 읽다가 지쳐서 바로 2부 시작은 못 하겠다.

_P.150
마침내 여자의 말을 이해한 아이슬린이 시선을 든다. 그들 다섯. 그리고 프라이머리라고 불리는 가장 중요한 여섯 번째. 아이슬린은 스태튼아일랜드이고 다른 이들 역시 뉴욕의 자치구이며, 마지막은 뉴욕 그 자체다. 한데 그들도 아이슬린과 똑같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수만 명의 욕구를 느끼고, 머릿속으로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그들을 만나 보고 싶다.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해야 내 자치구를 조용히 닥치게 할 수 있어? 그리고 그게 진짜 내 친구인 거야, 아니면 내가 그 정도로 외로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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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인 케미스트리 1 - 개정판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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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닌 자신으로 살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현실이 잘못된 것이지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려는 여자들은 죄가 없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조트를 응원한다.

_P.89
“그게 문제야. 날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엘리자베스는 평생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자신이 이룬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규정되는 삶을 이어온 것이다. 과거 그녀는 방화범의 자식, 남편을 갈아 치우는 여자의 딸, 목매달아 죽은 동성애자의 동생 아니면 호색한으로 유명한 교수 밑에 있던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지금은 유명한 화학자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오롯이 엘리자베스 조트로 받아들여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_P.215
“그대가 살아갈 날은 많......다. 많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캘빈과 함께 누워 그가 어린 시절 주문처럼 되뇌었던 말을 들려줬던 슬픈 밤을 떠올렸다. 살아갈 날은, 많아.

✦ 다산북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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