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란 고립과 단절같은 폐쇄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바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나에게 벽이란 후자에 가까웠다. 『SF 보다』에서 작가들이 만든 벽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벽은 사람을 물리적으로 가둘 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가능성을 가둔다. 벽은 하나의 공간을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고, 안과 밖이 구별되도록 만든다. 이쪽은 안쪽이고, 안쪽에 있는 것은 우리 편이다. 벽 너머 바깥에 있는 것은 상대편이다. 안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벽으로 시야가 가려진 채 바깥을 경계한다. 벽 너머에 있을 모르는 자의 얼굴은 적으로 그려진다. 어쩌면 적을 막기 위해 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벽을 만들기 때문에 적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 주어진 자리를 탈출하도록 돕는 비현실의 힘은 인물이 바깥의 민얼굴을 확인 하도록, 무언가 다른 것을 목격하도록 길을 연다.(P.175) 소설 속 벽 안에 사람들은 주어지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즐기다 잘못된 정보임을 안 뒤에는 정보 제공자를 탓하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한다. 시녀 이야기와 메이즈러너의 세계관처럼 통제되고 조작된 정보를 제공하는 세상을 깨닫고 벗어나려는 시도도 생긴다. 우리는 벽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벽 안에서 안전함을 추구하고 주어지는 것들에 만족해야 할까. 벽 바깥의 세상이 위험해도 나가려고 해야 할까. 더 고민해 볼 일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