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의 안녕이 굿바이가 아닌 헬로인 것처럼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사강과 지훈이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룬다. 이별도 연애의 과정이라면 이별을 받아들이는 순간까지 연애이기에 연인들의 이별의 시기는 각자 다른 거 아닐까. 사강과 지훈이 타인이기에 각자의 연인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어쩌면 상처를 극복하는 계기는 낯선 상황에서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_P.45사강의 이별은 일 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자주 뜨거워졌다. 손수건을 쓰려 해도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손수건마저 정수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와 연결되지 않은 물건을 찾는 게 불가능해질 즈음, 사강은 실연이 어긋난 뼈를 다시 맞추듯 죽을힘을 다해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사물을 그와의 기억 쪽으로 되돌리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_P.314세상에 수많은 다른 언어가 존재하고 번역이 필요한 수많은 사랑과 이별의 언어가 있듯,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기약 없는 사랑에 빠지고, 출구 없는 이별에 넘어지고, 후회하고, 다시 또 사랑에 빠지는 인간이란 너무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김영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상인 윌리엄 노인의 서기인 일레이브는 순례 중 돌아가신 주인을 수도원의 묘지에 모시기 위해 7년 만에 돌아온다. 수도원에 묘소를 마련해 달라는 일레이브의 호소에 성직자들을 회의를 하고 윌리엄에게 이단적인 면모가 있었다는 것이 언급되지만 그가 수도원에 헌신했던 사실과 순례를 했다는 것이 인정되어 묘소가 마련된다. 일레이브는 윌리엄의 가족들에게 주인의 죽음을 알리고 손녀에게 남긴 지참금이 든 아름다운 상자를 전달한다. 윌리엄의 장례식 후 일레이브가 이단적인 주인의 의견에 동의하는 말을 하고 그로 인해 이단자로 고발당한다. 그러나 이단자로 고발된 이유에 음모가 있음을 캐드펠은 눈치챈다. 이단자로 고발된 것은 고발자의 핑계에 불가하지만 교회의 말이 하느님의 말이 아닌데 이의를 제기하면 이단자가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성직자들과 일레이브가 나누는 의견들은 종교에 관심이 많은 내게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시리즈 세 권을 읽으며 작가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었다._P.101”하지만 저는 인간이 정말로 선할 수 있고, 또 선하다고 믿어요!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로 죄를 피하고 올바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고요. 인간의 의지는 하느님의 선물이에요. 그걸 사용해야죠! 왜 모든 걸 하느님께 맡긴 채 칭찬을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_P.278”하지만 이건 알아야 해. 자네와 나는 겨우 닷새 전에 그걸 들어봤고 오늘 다시금 들어봤네. 그리고 그사이 상자가 가벼워졌다는 것, 전과 달리 기울이거나 흔들 때마다 귀에 들리도록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일레이브, 이건 100년 전이 아니라 겨우 닷새 전, 바로 6월 20일에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무언가가 25일인 지금은 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야.“_P.298책과 영원하고도 완전한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책은 그와 다른 가치를 지니는 법이다. 책을 위해 속임수를 쓰는 사람도 있고, 훔치거나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손에 넣어봐야 다른 누구에게 그 보물을 보여주거나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책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 그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라._P.357그것을 위해 그는 살인을 했고, 마침내는 그것을 위해 죽어가고 있었다.✦ 북하우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죄에 비해 처벌이 약했어요. 형량도 가볍고요. 때론 불기소니 불구속이니 하며 죗값을 치르지조차 않았어요. 그랬을 때 누군가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 아니면 피해자가 직접 그 부분을 채워 넣는 것. 그게 잘못인가요?”(P.88) 사적 제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적 제재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사적 제재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법은 믿음직하지 않은 적이 더 많았다. 아동학대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 가족이기에 더 낮은 처벌을 받거나 피해 아동이 가해자에게 돌봄을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진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작가인 유희진은 아동학대의 피해자로 관련된 취재에 몰입하게 되면서 사건에 연루된다. 유희진은 사적 제재를 지지하지 않지만 아동학대 피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나 또한 그렇다._P.12승빈이는 결국 병원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제가 잘못했어요. 맞을 만했어요. 엄마 아빠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마지막까지 부모를 두둔하며._P.78나쁜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일은 한 권의 이야기가 된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상황에 몰입하고 전후 사정을 살피며 인물에 이입한다. 행동을 판단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논쟁한다. 각각의 잣대로 심판하고 판단하며 이야기와 인물을 기호와 식성에 맞게 한 입씩 뜯어먹는다. 시간은 흐르고 아무리 긴 이야기도 결국 끝나는 법. 사람들은 탁, 소리 나게 책을 덮고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그러고 다른 책을 집어 든다. 하지만 사건이 끝나도 인물의 삶은 이어 진다. 나쁜 사람은 갑자기 착해지지 않고 슬픈 마음은 이유 없이 좋아지지 않는다. 좋은 것은 나빠지고 나쁜 것은 더 나빠진다. 덮어버린 책 속에, 책꽂이에 비석처럼 나란히 선 각각의 이야기 속에, 우는 아이가 있다. 슬픈 아이가 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다가 마침내 스스로를 부정하는 아이가 있다._P.291“사형에 적합한 자들은 심판했습니다. 쉽진 않았죠. 그런 이들이 워낙 많아서.”✦ 안온북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큰 눈이 오면서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누수 현상이 악화되고 보수 공사가 시작된다. 지붕에서 보수 공사 중 할루인 수사의 낙상 사고가 생기고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영구적인 신체장애가 생겼지만 다행히 의식을 회복하고 불편한 몸으로 속죄의 고행을 시작한 할루인 수사를 캐드펠 수사가 돕는다. 고행에서의 우연한 만남들은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걸 보여주듯 그들은 진실을 향해 간다.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 같은 전개에 아침 드라마를 보는 거 같았는데 한 인간의 진실한 내면은 소름이 돋았다. ”말 사이사이의 침묵도 내게는 단순한 침묵으로 들리지 않았다네.“(P.109) 이것이 캐드펠 수사의 비범한 능력이다._P.43”제 사랑과 아이, 둘 다요...... 그녀의 모친이 제게 전갈을 보내왔지요. 죽어서 매장했노라고. 열병, 그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열병으로 죽었다고...... 아, 이렇게 끔찍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저의 죄는 극악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하느님만이 아실 겁니다!“_P.105”치유되길 바란다고? 편안하고 완벽하게? 자네, 하느님께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군. 내게는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말이야.“_P.241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본 터였다. 봉해졌던 궤짝이 열리고 그 속에서 비밀이 튀어나올 참이었으니, 이제 누구도 그 뚜껑을 닫지 못할 것이었다._P.258진실이 튀어나왔다. 가감 없이. 그녀 자신이 그것을 밝힌 참이었다. 이제 부인은 가만히 앉아 자신이 토해낸 진실을 바라보았다. 더는 그때와 같은 강렬함으로 느낄 수 없는 그 갈망과 분노를, 마치 다른 여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듯 다시금 응시하고 있었다.✦ 북하우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어느 도망자의 고백』을 읽을 때도 생각했지만 자신의 죄에 무게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범죄자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사형 집행이 멈춘 지 오래고 현재 사형수들의 악행으로 교도관들은 고통받고 있다. 나는 호계동 안양교도소가 있는 곳에서 자랐는데 범죄자를 가두는 곳이었기에 내가 그들을 대면할 일은 없었지만 이후 근무했던 한림대학교성심병원에서 안양교도소에 복역 중인 수감자들이 입원할 때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입원 기간을 늘리기 위해 체온계를 먹기도 했고 원인 미상의 복통 그러니까 꾀병인 경우도 있었다. 저자는 사형 집행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이 소설을 쓴 거 같은데 나는 교화라는 건 이상적인 말일뿐이라 생각하며 사형 집행을 찬성하는 입장이다. _P.84”개전의 정이란 걸 정말 남이 판단할 수 있을까요? 죄를 범한 인간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를 겉으로 봐서 알 수 있는 겁니까?“_P.169”저는 사형수의 원죄를 밝히는 일을 맡았어요. 한 인간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요. 그런데 만약 진범을 찾아내면 결국 다른 인간을 사형대로 보낸다는 거 아닙니까?“_P.195모두 인간이 한 짓이다. 유아 둘에게 저지른 잔학한 범행도, 이를 범한 자에 대한 처형도. 죄와 벌은 모든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이 한 짓에 대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황금가지에서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