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장성주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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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이 겪는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졌다. 시그리드 누네즈 또한 소설의 형식으로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그래서 오션 브엉의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를 떠오르게 했다. 미국에서 거주한 시간이 더 많음에도 영어를 하지 못한 아빠 「장」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짧다. 그만큼 아빠를 잘 알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딸들은 언제나 '타인'이었다고 언급한다. 어머니 또한 독일인의 정체성과 예상할 수 없는 성격을 가졌기에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기억은 아주 적다. 그럼에도 「크리스타」 분량이 많은 건 모녀 관계란 그런 것이니까. 발레는 그가 갈망한 것 그러나 가질 수 없던 것이다. 마지막 장은 어디까지 진실일지 알 수 없지만 치부일 수 있는 이민자 유부남과의 사랑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걸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결국 부모와 자신을 투영한 것이다. 미국은 다인종 국가면서 고정관념이 크게 자리한 아이러니한 곳이고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증명하려 헤매고 발버둥 치는 거 같다. 그럼에도 주류가 되는 건 너무 어려운 거 같고.

P.34
아버지는 틀림없이 인생의 여러 시점에서 자신이 순수한 중국인이었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어머니는 자기 딸들이 순수한 독일인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수 브라운 같은 이름을 타고난 순수한 미국 소녀가 되고 싶었다.
P.90
어머니와 루돌프는 같은 놀이를 즐겼지만, 남자와 여자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의 크기는 달랐다.
어머니는 임신했다.
P.122
"내가 대관절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어머니는 그렇게 자문하곤 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로,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을 하고서. 마치 깃털처럼 바람에 날려 여기까지 왔다는 듯이.
P.193
내가 수업시간에 따라 했던 그 키 큰 금발 여자애는 발레를 계속해 스타가 됐다. 나는 그녀의 경력을 계속 지켜보며 그녀가 입은 부상과 그밖의 문제들에 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됐다. 그녀는 서른네 살 때 억지로 은퇴했다. 나는 지금도 그녀처럼 멋진 푸앵테를 할 수만 있다면 남은 목숨을 몇 년 치는 내놓을 수 있는데.
P.291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살면서 아무리 큰 성취를 거두고 아무리 좋은 기회를 잡더라도, 자기 계급에서 벗어나지는 말아야 한다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것은 자기 계급에 대한 배신이자 영혼을 잃어버릴 위험을 감수하는 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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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만큼 성실하게 - 교유서가 소설
이소호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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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가장 재밌게 읽은 에세이가 『쓰는 생각 사는 핑계』였기에 소설 속 수진과 작가를 분리하는 데 어려웠다. 수진의 빚은 그의 업보로만 느껴지고 어떤 연민도 느끼지 못했기에 그 원인이 질병이라도 말이다. 문학으로 돈을 벌기 힘든 타당한 이유에도 과도한 쇼핑으로 기생충 같은 삶을 산 건 맞으니까. 제발 이 부분은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기를 바란다. 내가 민음사 유튜브 보고 개인 유튜브까지 봤다고 프라다 가방 영상 좋아했는데. 그리고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인 쇼핑을 독려했다고 맙소사. 작가의 말까지 알쏭달쏭해서 혼란하다. 혼란해.

P.48
뭔가 있는 애가 되기 위해 나는 다시 쇼핑을 시작했다. 이번엔 립스틱 대신 교수님이 쓰는 연필 브랜드를 샀고, 몰래 훔쳐본 교수님의 만년필과 똑같은 모델을 결제했다. 그가 읽는 책을 따라 읽으면 그 문장의 비릿한 매력까지 내 것이 될 줄 알았다. 시적 영감조차 할부로 살 수 있다고 믿었던 멍청한 노력. 내 문장은 여전히 누군가의 카피였고, 내 책상은 다시 '비문학적 잔해'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P.62
나는 여전히 기생충이었지만, 이제는 아주 고급스러운 코트를 입은 시인 기생충이 되어 있었다. 이것은 다른 이야기다.
P.80
다 맞는 말 같았는데 이상했다. 나는 내가 책을 이렇게 많이 낸다는 것 자체가 나를 보여주는 일인데, 자존감이 낮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고, 나는 분명 내가 우울할 때마다 카드를 긁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왜 조증인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P.125
여기서 더 절약하는 법이 뭐가 있을까.
병원을 끊을까. 근데 병원 끊으면 죽는다. 통신비를 끊을까. 근데 통신 끊으면 일을 못한다. 교통비를 끊을까. 근데 걸어다니면 강의에 못 간다. 커피를 끊을까. 이미 카누만 마신다. 밥을 끊을까. 밥을 끊으면 머리털이 빠지고 인기가 사라지고 시가 안 팔린다.
P.202
시는 사랑으로 썼는데 안 팔리고, 소설은 생존으로 썼는데 잘 팔렸다.
정말이지 시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소설은 생존이라 썼다. 낭만이 아니라 절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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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원만 빌려줘 ㅣ 트리플 36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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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내 우리가 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썼다.(𝚙.127)] 작가의 말처럼 '우리'로 부터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 그래서 무척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의 불행을 이해받기 원하지 않고 누군가 이해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온전히 자신의 불행을 감당한다. 그래서 읽는 나도 숨이 턱턱막힐 듯 힘들다는 느낌보다 담담하게 그들의 불행을 받아들인다.
[끝끝내 우리가 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썼다, 그러니 현실에서는
끝끝내 우리가 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𝚙.137)] 나도 다 읽고나니 연대하는 이야기가 읽고 싶어졌다. 외로워도 아주 조금씩 관계를 맺고 나아가는 이야기 말이다. 내가 읽은 트리플 시리즈 중에서 『초록은 어디에나』와 『방어가 제철』이 그런 이야기였다. 『이만 원만 빌려줘』를 읽은 사람에게 이 소설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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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하루
김영글.안희제.정우열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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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저자가 고양이, 식물, 개와 살아가는 과정의 공통점은 그들과 함께 살기로 한 순간부터 돌봄의 의무가 생겼다는 거다. 나만을 의존하고 필요로 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감을 요구한다. 나도 12살 16살 노견들과 함께하면서 이들이 나와 함께할 시간이 함께한 순간보다 길지 않겠다는 걸 매일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저자가 제주도로 이주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는 내 경험을 떠올리게 했는데 탈장 수술을 한 사랑이를 기다리는데 회복실에서 생전 처음 듣는 울음소리에 놀라고 당황했었다. 바로 집으로 데려가지도 못하니까 더욱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제주 공항에 도착했을 때, 스튜어디스의 손에 짐짝처럼 들려 나온 캐리어 속에서 모래와 녹두는 겁을 잔뜩 먹은 채 찍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멀리서 내 얼굴을 알아보자마자 목청을 높여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 의지할 거라곤 나 하나뿐인 바보들의 합창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p.40)] 식물과 함께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낯설었지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줬다. [위생의 이분법은 인간의 것이라서, 벌레를 없애 위생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벌레를 잡아서 식물을 지키는 것도 사실 벌레의 일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조금 다른 생각이 열린다. 식물을 돌볼 때, 사람은 벌레의 몫을 하게 된다고. 그렇게 벌레의 일을 하며 사람은 거꾸로 벌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p.162)] 계기가 없다면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식물과 함께하는 삶이란 이런 거구나 벌레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고 아빠가 키우는 식물들도 좀 다르게 보인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삶은 나에게 길에 사는 고양이를 유심히 보게 하고 혼자 다니는 강아지를 보면 심장이 철렁이게 한다. 지금 제일 고민은 내 반려견들의 건강이다. [내 개도 남의 개들처럼 늙고 병들고 아프다가 죽을 거라는 걸 알지만 혹시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는 건 아닐까 하고 막연히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날은 오고야 말았고, 한번 아프기 시작하자 개는 계속 아팠다.(p.297)] 강아지의 변화는 점차적이지 않았다. 순식간이었다. 개모차를 처음 샀을 때만 해도 뛰어내리고 싫어했지만 지금은 매우 편한 자세로 고개만 들고 주변을 감상한다. 죽음이란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식물에도 오는 것이고 다행인 건 그 어쩔 수 없음은 내가 감당할 몫으로 남아 있다. 그 이후는 아직 모르겠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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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가 제철 ㅣ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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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시리즈는 얇지만 매우 알차다. 세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 그리고 해설까지 있다. 지금까지 36권이 출간되었고 출간 예정 라인업도 엄청나다. 서포터즈 신청 전부터 책태기 때나 지하철에서 읽기 좋아하는 시리즈였고 『방어가 제철』도 지하철에서 완독했다. 「달밤」과 「방어가 제철」은 읽다가 당황스럽게 슬퍼서 지하철에서 눈물을 참아야 했고 마지막 「만화경」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안윤 작가의 소설집 『모린』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단막극을 보는 거 같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의 생일과 기일이 같다니 그는 정성껏 생일상이자 제사상을 만든다.(달밤) 오빠의 죽음 이후 오랜만에 재회한 오빠의 친구와 3년간 식사를 함께한다.(방어가 제철) 안윤 작가는 슬픔을 신파로 만들지 않는다. 일상에 녹아들게 한다. 세입자인 나를 감시하는 집주인이라니 상상만으로 너무 불편한데 그 이면을 알게 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 제목이 만화경이구나!(만화경) 해설을 읽다가 「달밤」에 퀴어요소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래서 해설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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