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정용준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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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비해 처벌이 약했어요. 형량도 가볍고요. 때론 불기소니 불구속이니 하며 죗값을 치르지조차 않았어요. 그랬을 때 누군가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 아니면 피해자가 직접 그 부분을 채워 넣는 것. 그게 잘못인가요?”(P.88) 사적 제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적 제재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사적 제재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법은 믿음직하지 않은 적이 더 많았다. 아동학대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 가족이기에 더 낮은 처벌을 받거나 피해 아동이 가해자에게 돌봄을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진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작가인 유희진은 아동학대의 피해자로 관련된 취재에 몰입하게 되면서 사건에 연루된다. 유희진은 사적 제재를 지지하지 않지만 아동학대 피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나 또한 그렇다.

_P.12
승빈이는 결국 병원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제가 잘못했어요. 맞을 만했어요. 엄마 아빠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마지막까지 부모를 두둔하며.
_P.78
나쁜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일은 한 권의 이야기가 된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상황에 몰입하고 전후 사정을 살피며 인물에 이입한다. 행동을 판단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논쟁한다. 각각의 잣대로 심판하고 판단하며 이야기와 인물을 기호와 식성에 맞게 한 입씩 뜯어먹는다. 시간은 흐르고 아무리 긴 이야기도 결국 끝나는 법. 사람들은 탁, 소리 나게 책을 덮고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그러고 다른 책을 집어 든다. 하지만 사건이 끝나도 인물의 삶은 이어 진다. 나쁜 사람은 갑자기 착해지지 않고 슬픈 마음은 이유 없이 좋아지지 않는다. 좋은 것은 나빠지고 나쁜 것은 더 나빠진다. 덮어버린 책 속에, 책꽂이에 비석처럼 나란히 선 각각의 이야기 속에, 우는 아이가 있다. 슬픈 아이가 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다가 마침내 스스로를 부정하는 아이가 있다.
_P.291
“사형에 적합한 자들은 심판했습니다. 쉽진 않았죠. 그런 이들이 워낙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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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루인 수사의 고백 캐드펠 수사 시리즈 1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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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눈이 오면서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누수 현상이 악화되고 보수 공사가 시작된다. 지붕에서 보수 공사 중 할루인 수사의 낙상 사고가 생기고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영구적인 신체장애가 생겼지만 다행히 의식을 회복하고 불편한 몸으로 속죄의 고행을 시작한 할루인 수사를 캐드펠 수사가 돕는다. 고행에서의 우연한 만남들은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걸 보여주듯 그들은 진실을 향해 간다.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 같은 전개에 아침 드라마를 보는 거 같았는데 한 인간의 진실한 내면은 소름이 돋았다. ”말 사이사이의 침묵도 내게는 단순한 침묵으로 들리지 않았다네.“(P.109) 이것이 캐드펠 수사의 비범한 능력이다.

_P.43
”제 사랑과 아이, 둘 다요...... 그녀의 모친이 제게 전갈을 보내왔지요. 죽어서 매장했노라고. 열병, 그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열병으로 죽었다고...... 아, 이렇게 끔찍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저의 죄는 극악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하느님만이 아실 겁니다!“
_P.105
”치유되길 바란다고? 편안하고 완벽하게? 자네, 하느님께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군. 내게는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말이야.“
_P.241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본 터였다. 봉해졌던 궤짝이 열리고 그 속에서 비밀이 튀어나올 참이었으니, 이제 누구도 그 뚜껑을 닫지 못할 것이었다.
_P.258
진실이 튀어나왔다. 가감 없이. 그녀 자신이 그것을 밝힌 참이었다. 이제 부인은 가만히 앉아 자신이 토해낸 진실을 바라보았다. 더는 그때와 같은 강렬함으로 느낄 수 없는 그 갈망과 분노를, 마치 다른 여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듯 다시금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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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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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을 읽을 때도 생각했지만 자신의 죄에 무게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범죄자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사형 집행이 멈춘 지 오래고 현재 사형수들의 악행으로 교도관들은 고통받고 있다. 나는 호계동 안양교도소가 있는 곳에서 자랐는데 범죄자를 가두는 곳이었기에 내가 그들을 대면할 일은 없었지만 이후 근무했던 한림대학교성심병원에서 안양교도소에 복역 중인 수감자들이 입원할 때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입원 기간을 늘리기 위해 체온계를 먹기도 했고 원인 미상의 복통 그러니까 꾀병인 경우도 있었다. 저자는 사형 집행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이 소설을 쓴 거 같은데 나는 교화라는 건 이상적인 말일뿐이라 생각하며 사형 집행을 찬성하는 입장이다.

_P.84
”개전의 정이란 걸 정말 남이 판단할 수 있을까요? 죄를 범한 인간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를 겉으로 봐서 알 수 있는 겁니까?“
_P.169
”저는 사형수의 원죄를 밝히는 일을 맡았어요. 한 인간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요. 그런데 만약 진범을 찾아내면 결국 다른 인간을 사형대로 보낸다는 거 아닙니까?“
_P.195
모두 인간이 한 짓이다. 유아 둘에게 저지른 잔학한 범행도, 이를 범한 자에 대한 처형도. 죄와 벌은 모든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이 한 짓에 대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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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턴 숲의 은둔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14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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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K 유튜브에서 정세랑 작가가 추천했던 캐드펠 수사 시리즈 눈을 강조한 표지도 인상적이고 좋은 후기를 많이 봐서 이번 서포터즈에 지원했고 운 좋게 참여할 수 있었다. 11-21부 가운데 3권을 읽을 수 있는 서평단이라 앞부분을 읽지 않아도 괜찮을지 걱정했는데 쓸데없었다. 14권 『에이턴 숲의 은둔자』에서는 전쟁 중에도 평화롭던 영지에서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너무 매력적인데 다들 정이 있달까. 캐드펠 수사도 장관 휴도 유연성이 돋보이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사고는 치지만)귀여운 리처드가 감금된 곳에서 벗어나 수도원으로 돌아갈 때 추격전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책을 다 읽으니 결국 살해된 자들은 각자의 탐욕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그걸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결말은 나오지 않지만 예상할 수는 있다.

_P.35
탐욕스러운 이들에게 땅은 어떤 행동이든 감행케하는 강력한 추진력이요. 아이들 같은 건 그 목적을 위해 어떻게 소모해도 좋은 존재이리라.
_P.135
"나는 종종 사람들이 살인을 하는 이유에 관해 생각한다네. 탐욕이 그중 하나지. 그리고 탐욕은 상속을 받고 싶어 안달을 내는 아들의 마음속에서 싹틀 수 있어. 증오 역시 살인을 하는 이유가 되는데, 학대받는 하인은 기회가 생길 경우 기꺼이 그런 감정을 품을 수 있지. 하지만 또 다른, 보다 기묘한 이유들도 있네. 단순한 도벽 때문에, 혹은 희생자가 나중에 아무 소리도 지껄이지 못하도록 뒷마무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그런 짓을 벌이는 경우 말일세. 딱한 일이지, 휴, 정말 딱한 일이야.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그렇게 때 이르게 다른 이의 죽음을 재촉하다니."
_P.295
"죽은 지 몇 시간쯤 지난 것 같습니다. 제가 다스리는 곳에서 또다시 사람이 죽다니...... 첫 번째 살인 사건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는데! 대체 무슨 연유로 이 숲속에서 이런 흉악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걸까요?"
_P.313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인자와 살해당한 자가 나란히 누워 있었고, 정의는 이미 실현되었다.
하지만 그 살인자를 살해한 사람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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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구정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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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 영웅이었어.
아빠를 미워하는 건 쉬웠는데 엄마를 미워하는 건 쉽지 않더라.
원망과 미움 옆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었어.
사랑, 기대, 슬픔, 죄책감, 외로움, 분노, 연민...
나는 지난 2년간 엄마를 마음껏 미워하면서 그것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어.
(P.180)

딸 셋에 삼대독자 동생이 있는 집의 셋째 딸인 나. 언제나 갖고 싶은 게 많았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엄마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펑펑 울던 날이 여전히 생생하다. 나는 겉으로 다 드러내는 것 같지만 진짜 속마음은 꼭꼭 숨겨두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 최진영 작가의 산문에서 발견한 문장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이 만화의 딸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내가 되는 꿈』에 쓴 ‘책가방론’이나 ‘지름길론’처럼 나만의 인생 이론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서른살론’이 있다. 요약하자면, 누구나 어릴 때 받은 상처가 있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것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심각한 트라우마가 아닌 이상 ‘그때 받은 상처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말은 딱 서른 살까지, 길게 잡아서 서른세 살 까지만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 이후부터는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자기 의지로 살아온 세월을 믿고 상처는 스스로 치유하고 감당하기. 어린이 최진영은 계속 서운해할 수 있다. 어린이 최진영의 마음을 풀어주는 건 이제 내 몫이다. 나에겐 어린이 최진영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_최진영, 『어떤 비밀』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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