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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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새로운 문명을 만들지만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기에 지구에서와 다르지 않은 일이 생긴다. 그곳에서도 폭력과 비리 등 지구에서와 비슷한 일들이 발생한다. 부디 미래의 화성인들이 지구의 괴물을 그대로 화성에 옮겨놓지 않았기를. 새로 시작한 행성의 문명은 지구에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가뿐히 초월한 문명이기를.(P.303) 작가의 말처럼 그곳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을까.

_P.137
"물질만 순환하는 게 아니라 감정도 순환합니다. 누군가 배설한 감정이 흩어질 공간이 없거든요. 제가 타고 온 우주선에서는 조종사가 부르던 노래를 의사가 3개월 동안이나 따라서 흥얼거렸어요. 무려 90일이나요. 그 사람이나 듣는 저나 아주 미칠 지경이었죠. 우울도, 불안도, 좌절감도 마찬가지예요. 오늘도 지구인들의 동심을 한번 파괴해볼까요? 그런 데 서는 사랑이 피어날 여지가 없어요. 작은 우주선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라니, 그런 건 지구 드라마에나 나오는 거예요.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을 가려서 드러낼 공간이 없으니, 애정은 욕구가 되고 공감은 폭력이 됩니다. 다 배설이죠. 누군가가 배설한 감정은 그 작은 세계를 다섯 달쯤 떠돌아다닙니다. 그게 작은 순환이에요."
『행성봉쇄령』

✦ 래빗홀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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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아르테 오리지널 24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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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프랑수아즈 사강이 떠올랐는데 샐리 루니가 더블린의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불린다니 신기했다.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 한쪽만 계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복된다. 하지만 인간은 불행할 때 그 불행에 잠식되어 빠져나오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행복한 순간은 짧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_P.395
우리가 함께 행복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뜻이야. 나는 그것이 내 삶의(까다롭고 슬픈) 다른 모든 일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까다롭고 슬픔에 잠긴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전에는 그랬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변화무쌍해. 삶이 오랫동안 비참하다가도 나중에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거야. 그것은 그저 이것 아니면 저것 하는 식의 문제가 아니야. '성격'이라는 홈에 고정되고, 그런 다음 끝까지 그 길을 죽 따라가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한때는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어.

✦ 아르테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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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가 된다 위대한 도시들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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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도시들 3부작으로 계획된 시리즈여서일까 1부 『우리는 도시가 된다』는 이야기 전개가 매우 느리다. 뉴욕의 화신들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만나고 적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2부작으로 출간 계획이 변경되어 최근에 『우리가 만드는 세계』가 나왔는데 1부 읽다가 지쳐서 바로 2부 시작은 못 하겠다.

_P.150
마침내 여자의 말을 이해한 아이슬린이 시선을 든다. 그들 다섯. 그리고 프라이머리라고 불리는 가장 중요한 여섯 번째. 아이슬린은 스태튼아일랜드이고 다른 이들 역시 뉴욕의 자치구이며, 마지막은 뉴욕 그 자체다. 한데 그들도 아이슬린과 똑같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수만 명의 욕구를 느끼고, 머릿속으로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그들을 만나 보고 싶다.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해야 내 자치구를 조용히 닥치게 할 수 있어? 그리고 그게 진짜 내 친구인 거야, 아니면 내가 그 정도로 외로운 거야?

✦ 황금가지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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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인 케미스트리 1 - 개정판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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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닌 자신으로 살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현실이 잘못된 것이지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려는 여자들은 죄가 없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조트를 응원한다.

_P.89
“그게 문제야. 날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엘리자베스는 평생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자신이 이룬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규정되는 삶을 이어온 것이다. 과거 그녀는 방화범의 자식, 남편을 갈아 치우는 여자의 딸, 목매달아 죽은 동성애자의 동생 아니면 호색한으로 유명한 교수 밑에 있던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지금은 유명한 화학자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오롯이 엘리자베스 조트로 받아들여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_P.215
“그대가 살아갈 날은 많......다. 많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캘빈과 함께 누워 그가 어린 시절 주문처럼 되뇌었던 말을 들려줬던 슬픈 밤을 떠올렸다. 살아갈 날은, 많아.

✦ 다산북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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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페터 슈탐 지음, 임호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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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크리스토프는 16년 전 젊은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난다. 그때의 연인이었던 막달레나의 도플갱어에 이 상황을 설명한다. 그 시절 그들의 이야기와 도플갱어의 이야기는 같은 듯 하지만 오차가 있다. 도플갱어가 나일까. 내가 그의 삶에 개입한다면 나에게 변화가 생길까.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면 어떤 선택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책이 아니다.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나의 작은 선택에도 변할 것이다. 어느 날 내 도플갱어를 만난다면 다정스러운 무관심으로 지나치기로 하자.

_P.96
선생님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으신가요? 레나가 말했다. 선생님이 범한 오류를 수정하고, 우리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싶은 유혹 말이에요. 아니면 단지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시험해보고 싶은 호기심이랄까요. 겁이 나오. 내가 말했다. 뭐가 튀어나올지 누가 알겠소?
_P.139
전 미래가 저에게 뭘 가져다줄는지 전혀 알고 싶지 않지만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는 상상은 좋아해요. 저에게 일어나는 일이 이미 한 번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상상, 다시 말해 연관과 의미를 지녔다는 상상 말이에요. 마치 제 인생이 하나의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책에서 항상 좋아했던 대목이 바로 그런 거예요. 책은 확고부동해요.

✦ 문학과지성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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