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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 오티움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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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과 죽음
저자는 좋은 삶과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 공부하고 싶어 의사가 되었고, 한국에서 전문의 과정과 세부 전문의 과정을 거쳤으며, 미국에서 다시 한번 전문의가 되고 세부 전문의가 되었다. 두 가지 다른 언어로 두 가지 다른 문화 속에서 11년간의 고된 의학 수련을 받았지만 삶은 여전히 어렵고 죽음은 여전히 두렵다고 적었다.
누구나 삶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안고 산다. 정도의 차이와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좋은 삶과 좋은 죽음 또한 개인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왈가불가할 필요도 없다.
좋은 삶에 관한 책 그리고 죽음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적혀있으나 내가 찾는 답은 적혀있지 않다. 아니 세상 끝까지 가도 답을 찾기는 어렵다. 삶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넘을 순간의 위로를 얻으며 실존적 고통을 이겨낼 뿐이다.
호스피스 완화의학
정신의학이 삶의 고통을 완화하고 호스피스 완화의학은 죽음의 고통을 완화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서로 다른 두 학문은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다. 완화(palliation)의 어원은 라틴어 'palliare'이며 '외투(clock)'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서른네 가지의 각기 다른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동트기 직전 칠흑 같은 어둠과 추위를 견뎌낼 한 벌의 외투가 필요한 이들에게 온기가 되어주는 일이 자신의 역할이고 이 책의 존재 의미라고 했다.
의사 K의 죽음
저자가 외과 순환 근무가 시작되던 첫날, 1년 차 레지던트 K는 직속 상사가 되었다. 긴장한 저자에게 건넨 그의 첫마디는 "왜 그러고 섰어. 이리 와서 앉아. 긴장 좀 풀어"였다. 기본적인 일을 소개한 후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게 한 K는 "먹고 싶은 거 고른 거 맞아?"라고 물으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수술실에 처음 들어와서 보조가 서툰 인턴을 대할 때도 K는 다그치거나 화내는 법이 없었다. 서글서글한 그는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와 같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한 친구들도 많아 병원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랬던 K가 어느 날 자살을 했다. 새벽 5시가 넘어 회진할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당직실로 찾아갔더니 문이 굳게 잠겨 있었고,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무도 그가 자살한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 일은 동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연쇄 자살 시도로 이어졌다.
우울이 심해지면 주변에 도움 요청
우울한 기분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만성적인 피로와 불면, 여기에 동반된 우울감은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낳는다. 일이 전부인 사람에게는 일이 잘못되면 삶 전체가 사라진다. 주어진 업무를 만족스럽게 수행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 삶을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자존감이 무너진 사람이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 외로움이나 우울감은 '연결'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통을 안아주는 이가 내 삶에 있으면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만약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람이나 도움을 청할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병원을 찾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만족스럽고 친밀하며 진실된 관계
1937년 소매업계의 거물 그랜트는 자신이 품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보스턴 하버드대학교와 연구팀을 조직하고 비용을 지원했다. 연구에 의하면,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 관계를 맺은 친구가 있을 때, 사람들은 신체 건강을 더 오랫동안 유지했다. 기억력과 같은 인지 기능도 쉽게 저하되지 않았으며, 노년의 행복감도 더 높았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없는 이들은 노화가 빨리 진행되었으며, 기억력도 더 젊은 나이에 더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신체 건강도 좋지 않았으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했고 결과적으로 수명도 짧았다. 행복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고통을 감내하는 역치도 높았다.
이에 반해 외로운 사람들은 통증도 더 쉽게 느꼈고 더 오래 아파했다. 외로움과 고립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하버드 연구팀은 결론지었다. 소수의 친구라도 그들과 얼마만큼 만족스럽고 친밀하며 진실된 관계를 유지하는지가 중요하다.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으며,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내 삶에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고 기억력을 유지하고 노화를 늦추고 행복을 느끼는데 충분하다. 긴밀하고 따뜻한 인간관계는 스트레스를 낮추고 뇌를 행복하게 하는 옥시토신과 도파민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나를 내려놓은 채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쉼이고 치유의 환경이다. '치료적 환경(therapeutic milieu)'은 그 환경에 속해 있는 것만으로도 치료적인 효과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환경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의 대화
어제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호스피스 병원에 있었던 일본 지인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지인과 지인의 남편을 생각했었기에 오늘 아침 일찍 라인으로 메시지를 보냈더니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남편이 나에 대해 한 말을 전했다.
나를 굉장하고 대단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그렇게 살라고 하는 말로 들렸다. 사는 게 어렵고 힘들어도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내라고 하는 말로 들렸다. 잘 버텨내라고 하는 말로도 들렸다. 내게 큰 힘을 주는 고맙고 감사한 선물 같은 말이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다. 그저께 지인의 안부가 궁금해서 연락했더니 남편이 호스피스 병원에 있다는 말과 함께 여명이 이번 달 말까지라는 말을 했다. 지인과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고, 마음이 힘들거나 답답해지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었다.
지인과 함께 한국 방문을 했을 때가 기억난다. 호텔에서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면서 다음에 또 만나 마시자고 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온화한 미소로 나를 대했고, 내가 일본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부부는 파리에서도 오래 살았다. 그래서 일본 특유의 격식은 차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작년 여름에 일본에 가서 만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갈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이 떠났다.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
나의 건강과 행복은 우리 서로가 결정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질병 중에 치료제가 있다고 밝혀진 질병은 500여 가지에 불과하다. 원인을 아는 병보다 모르는 병이 더 많고, 완치되는 병보다 그렇지 않은 병이 더 많다. 죽음은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피할 도리가 없다. 실존적 고통이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열 명 중 한두 명은 예고 없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고된 죽음을 맞는다. 내가 숨 쉴 이유가 되어주는 삶의 의미를 찾아 나를 나일 수 있게 하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을 즐기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면 생의 마지막이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적당하고 필요한 때 이 책과 만났다. 책 제목처럼 '죽음을 읽는 시간'이었다.
좋은 삶을 살면 좋은 죽음 맞는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