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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소설 리뷰는 언제나 힘들고 조심스럽다. 중요한 반전들을 노출시켜서 스포일러를 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거든. 그러면서도 그 결말이나 결말을 노출시킬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들이 있어도 그 마음들을 자제하면서 섬세하게 리뷰를 남겨야 하니까.
사실 주인공이 책이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사망했을 때 이 책의 리뷰를 대체 어떻게 남겨야 하나 막막했다. 주인공의 사망은 소설 안에서 굉장한 사건인데 이 것이 스포일러에 해당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뒷표지를 보고 남겨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억울해서 도저히 그냥 죽을 수 없는 사람들의 사후 7일간’ 주인공이 죽고 사후의 7일을 보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읽는 작품이었다. 물론 나처럼 책은 별 사전 지식 없이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깜짝 놀랐지만.
이 책은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의 원작 소설이다. 요즘 한국 드라마를 잘 안 챙겨봐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비가 복귀하는 작품이라고 기사를 몇 번 봤던 것 같다. 일단 시놉시스를 요약하면 ‘세일이 한창이던 백화점에서 이 백화점의 과장 김영수씨(41세)가 사망하고, 죽음 이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역송체험의 기회가 주어진다’ 로 이 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등장인물을 봤을 때는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보이기도. 기회가 되면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와 원작 소설인 이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을 비교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7일이면 드라마로 제작하기 너무 짧지 않나? 기간을 길게 늘렸나? 잘 모르겠다. 그리고 사후의 7일간은 생전 자신과 다른 모습 - 정반대되는 모습으로 남자는 여자가 될 때도 있고, 야쿠자가 학자가 되어서 돌아간다 - 으로 현세에 돌아오는 데 그 부분도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함!
"저쪽으로 돌아가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나도 이런 식으로 하루에 몇 명씩 만나고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더군요“
“하지만 나한텐 그에 상응하는 사정이...”
“그 상응하는 사정이라는 게 뭐죠? 현세에서 살아 있을 때, 살아 있어야 하는 상응하는 사정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죽을 때 죽어야만 하는 상응하는 사정도 생각해보지 않았겠지요? 그런 사람이 다시 돌아가야 할 상응하는 사정이 있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94-95p
이 부분의 대화에서 주인공은 속으로 화를 냈지만 나는 ‘현세에서 살아 있을 때, 살아 있어야 하는 상응하는 사정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를 읽으면서 나는 과연 지금 살아있는 의미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을 마주할 때야 진정으로 삶을 생각하기 시작한다고들 하는데 직접 죽음에 다가가지는 않더라도 이런 다양한 간접체험을 통해서 죽음을 마주해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있다. 내 삶에 진짜 하고 싶은 일들,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추릴 수 있게 되는 것도 있고,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지금 해야할 것들도 챙겨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이 그리는 죽음의 모습이 상당히 특이해서 더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죽음으로 엄청난 슬픔이 몰려오거나 결말으로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몰려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죽고 나서 분류를 당하고 강의를 듣고 자신의 죽음에 항의를 하고 환생가방을 들고 특별역송조치를 하는 이 소설을 현실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웃기지만, 이 책의 컨셉과 달리 소설 안의 인물들이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내가 죽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도 물론 슬퍼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멈추지 않는다. 내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큰 상처를 준 사람이 있다. 죽고나서 괜히 알았다 싶은 진실도 있고, 죽음에서 돌아왔음에도 모든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기도 한다.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속마음을 이름도 모르고 처음 본 사람에게 털어놓는 모습도 나오는데, 그 부분 역시 크게 공감이 갔다. 가족이 소중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할 수 없는 말들이 있다. 상처 받을까봐 입을 닫고, 살아온 시간동안 어차피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서도 감정을 눌러담는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오히려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흘리고는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모두 어느 정도 공감이 가고 또 연민이 생기는 인물들이어서도 또 현실적이다. 절대적 선과 악의 대결은 속 시원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별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알고보면 좋은 사람’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또 ‘사정이 있는’ 사람들도 많고. 이 책에서는 중간중간 화자를 바꿔가면서 각자의 사정을 보여준다. 그 사정이 전부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전해지지는 않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특별역송조치 기간을 보내고 돌아간다. 제한시간 엄수, 복수 금지, 정체의 비밀 유지. 이 세 가지를 지키는 사람도 있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위에 적었듯이 그냥 모르고 죽었어도 좋았을 일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다들 나름의 클로저를 만들고 세상과 이별한다.
나는 공상과학 소설 종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상상의 요소가 들어가더라도 현실에서 시작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래야지 내가 그 안에서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편하니까. 그리고 그런 상상이 나를 더 발전시켜줄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자기계발을 하려고 하는 자신이 웃기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이 소설 속 세계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해봤다. 이 작품은 현실 속에서 상상이 뻗어나가서 소설 속으로 들어가기가 어렵지도 않았고. 심지어 자살한 사람들, 특히 자살할 만한 사정이 없는데 자살한 사람들(그걸 어떻게 판단하지?)에게는 리세트, 인생을 다시 다만 더 가혹하게 살아가야한다는 것도, 사후 세계의 직원들도 공무원 같은 처리 방식을 한다는 것도 왜인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특별역송조치를 통해서 돌아올 것인가. 난 아마 안 돌아올 것 같다. 살짝 언급이 되었듯 ‘인간에게 닥치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 생명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 죽어도 그 상황은 내 좋을대로 합리화하고 넘어갈 것 같아서도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또 기본적으로 모범생 스타일에 새로운 상황에 반발하기 보다는 빠르게 적응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도 있고. 돌아와서 딱히 할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7일이라는 기간 동안 내려왔다가 다시 떠나는 것이 더 마음 아플 것 같기도 하고, 내려왔다가는 3대 규칙을 지키기 못할 것이 뻔하기도 하고. 만일 내려온다면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사후세계에 대해서 블로그에 포스팅해버리고 끌려갈지도!
책의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나에 관한 이런저런 상상을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보통 작가의 약력을 펼쳐보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작가는 다른 작품도 찾아볼까 고민하다가 알게 된 사실. 부잣집에서 태어나서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20대에는 야쿠자 생활을 거쳐 다단계판매도 해본 작가다. 정말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경험하고, 굴곡이 넘치는 삶을 살아와서인지 보통 같으면 일단 부정적으로 바라봤을 상황에 대해서도 이해의 시선을 던진다. 꼬이고 아픈 현실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연민을 잃지않는 그 모습에 나 역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사후세계가 있지만 에라이~ 난 일단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야지! 특히 제일 어려운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기,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