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 4호 : 전쟁하는 인간 교차 4
김준서 외 지음 / 읻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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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는 매호 다양한 주제로 학술지에 준하는 밀도를 보여주는 서평지다. 4호는 ‘전쟁하는 인간’을 주제로 『일리아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등 전쟁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 서평이 담겨있다. 전쟁은 “뉴스에 얼마나 자주 비중 있게 언급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전쟁은 언제나 세계의 어느 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렇기에 항상 시의적인 주제”(7p)다. 하지만 필히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에 대화 주제로 삼기 꺼려진다. 이는 결국 전쟁을 터부시하고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결과에 이른다. 그렇기에 처음 4호의 주제를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움찔했었다. 이런 이야기를 표지에 크게 내걸어도 되나?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이 끝난 후에 엄격하고 진중한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논의해야 하지 않나? 그러다 이런 생각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편협하고 방어적인 사고가 그동안 피해자의 목소리를 막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러한 태도를 열어가는 데에 『교차 4호 : 전쟁하는 인간』이 좋은 시작점이 되어줄 것이다.

『교차 4호 : 전쟁하는 인간』은 전쟁과 관련된 주제 서평 6편과 비주제 서평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주제 서평이지만 넓게 봤을 때 ‘전쟁하는 인간’과 이어지는 면이 있기에 통일된 분위기를 헤치지 않아 좋았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책이 많아 독서 후의 독서가 기다리고 있어 마음이 가볍진 않지만...^^ 새로운 분야의 책을 엿보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그렇지만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익숙한 책에 대한 서평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이 책을 분석한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서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간 조건의 비극성으로부터 구원을 찾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주제 도서의 저자가 전쟁과 전쟁하는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관찰한다. 책 읽고 서평 쓰면서 좀 더 깊고 전문적인 글을 쓰고 싶다고 아쉬워할 때가 많아서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도움이 됐다. 내용 까먹을 즈음 주제 도서 읽고 다시 서평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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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읻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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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영화로 알려진 『패터슨』의 첫 완역본이 출간됐다. 황유원 시인이 번역을 맡은 만큼 기대가 컸다. 시를 읽는 습관이랄지...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독자로서 『패터슨』을 읽는 건 노동에 가까웠다. 난해하고 어려운 데다 힘에 부쳤다. 그럼에도 쏟아지는 퍼세이익 폭포 물줄기에 속절없이 끌려가듯 끝까지 읽었다. 아무리 장시라도 어떻게 다섯 권 분량이나 썼을까 싶었는데 시 여기저기에 갖가지 인용문이 삽입되어 있었다. 편지, 패터슨의 역사를 다룬 기록 등에서 발췌한 인용문은 양이 상당한데 초반엔 꽤 방해됐다. 시 읽다가 빽빽하고 자잘한 글 읽으려니 자꾸만 몰입이 깨졌다. 인용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읽어갈수록 인용문이 설명을 위한 각주가 아니라 시의 일부처럼 느껴졌고, 그 후론 흐름 끊기는 일 없었다. 시 전반에서 폭포와 강이 언급되다 보니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계속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가로로 글자를 읽음에도 세로로 시를 읽는 기분이었다. 시의 글자 배치가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생기기도 했고.

장시를 읽는 건 처음이라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이긴 했으나 저자가 찬양하는 지역성이 크게 와닿진 않았다. 그가 주목하는 지역성이 내겐 일상에 가까워서일까. 물론 국가와 세대가 다르니 묘사하는 풍경엔 차이가 있지만 지역 거주민이라 큰 감흥이 없었다. 색다른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 아쉬움은 영화 <패터슨>이 채워줬다. 원작 시집에 충실한 영상화라기보단 『패터슨』에 영감을 받았다는 정도였지만 패터슨의 모습을 그리는데 도움이 됐다.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개별 작품으로 보는 게 영화와 시 모두 즐길 수 있는 방법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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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 - 서로의 레퍼런스가 된 여성들의 탈직장 연대기
이슬기.서현주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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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제목에 끌렸다. 여자들이 단순 퇴사가 아니라 직업을 때려치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서 다루는 직업을 보고 몇 가지 이유가 즉각 떠올랐다. 간호사 ‘태움’ 문제라든지 교사가 시달리는 악성 민원이라든지... 하지만 이는 특정 직업의 문제로만 보였다. 여초 직업이라는 공통점으로 한 권의 책에서 동시에 다루기에는 개별적인 사례 같았다. “여초 직업 서사의 기원과 진실을 사회구조 차원에서 집요하게 밝”혔다기에 의문 반 기대 반으로 읽기 시작했다.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교사, 간호사, 승무원, 방송작가가 여초 직업이 된 기원부터 실태까지 파헤친다.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는 말로 딸에게 강요된 직업은 안정적인 취업을 표방한다. 그러나 실제로 일해본 딸의 입장은 달랐다. 교육과 의료, 안전 등 공공이익을 수행하는 전문직임에도 많은 이에게 서비스직처럼 여겨진다. 실상은 “육아나 살림 같은 가사노동을 여성의 기본값으로 놓고 이와 병행 가능한 직업으로서 해당 직업들을 선전하거나, 직장에서 결정권자인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로“(266p) 제한된 직업인 것이다.

책은 ‘직때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두 저자가 글을 전개하면서 인터뷰이의 말을 인용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렇기에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째서 개인의 퇴사 이유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보아야 하는지 잘 와닿는다. 멀리서 바라보자 특정 직업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일이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여자에게 당연시되는 돌봄노동, 돈 받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소비자 마인드 등... 그동안 가시화 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취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다.
아쉬운 건 서술 방식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필요한 부분만 인터뷰이의 말을 인용하는 줄글과 Q&A 형식을 오가는데 통일성이 없다고 느껴졌다. Q&A 형식으로 인터뷰 내용을 온전히 담은 후 저자의 해석을 곁들인 글이 이어지는 전개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또한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밝히듯이 4개의 직업군을 명시한 것에 비해서 승무원과 방송작가는 스쳐 지나간 느낌이었다. 아쉬움이 남지만 이 책이 좋은 출발점이 되어주길 바란다.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을 출발점으로 다양한 직때녀를 만나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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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듀나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읻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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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가, 영화 평론가 등 다방면으로 유명한 듀나의 초기 단편집이 출간됐다. 데뷔 30주년 기념 ‘하이텔 버전 특별판’인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는 초기 단편 21편과 작품 각각에 대한 작가 코멘트가 담긴 만큼 두툼한 세미 벽돌책이다. 꽤 두껍지만 단편집인 만큼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사실 SF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지금까지 듀나의 글을 읽은 적 없었다. 듀나의 존재를 『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2020) 홍보 게시물로 알았으니 완전 듀나 뉴비인 셈. 그래서 의도치 않게 듀나의 탄생부터 시간 순서대로 읽을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듀나’ 이름으로 처음 발표한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를 시작으로 1994년부터 2009년까지의 글이 수록됐는데 최근 출간되는 SF와는 사뭇 다르다. 외계 정치물, 괴수물, 극한의 사고 실험 등 이제는 익숙한 SF 소재를 사용하는데 서술 방식이 몹시 하드보일드하다. 필립 K 딕 소설이 연상되는 간결한 문체 덕분에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된다. 또 ‘외계인’스러운 외계인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오랜만에 본 듯하다. 여기 등장하는 외계인은 작가가 설정한 문법에 따라 언어를 쓰고 문명을 구축한다. 주된 내용이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최신 SF랑은 확실히 다르다. 머리로 읽으면서 소재 구경하는 재미가 있음. 단편집이라 더 그렇겠지만.

수록작 중에 최애는 「그레타 복음」과 「술래잡기」. 전자는 당장 실현 가능해 보이는 이야기라 놀랐다. 컴퓨터로 철학을 한다니 배반적인 이야기지만 AI로 못 하는 게 없는 세상이니까(오만 걸 다 해서 문제지만). 94년에 쓴 소설이 지금의 현실이라니. 이 사실이 가장 SF처럼 느껴진다. 후자는 분위기가 스팀 게임 <리틀 나이트메어> 생각나서 취향저격이었음. 초기 단편집이라 입문용으로 강력 추천(실제로 본인이 입문함)‼️ 이제 듀나 도장깨기 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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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열두 세계 포션 6
이산화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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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 작가의 『전혀 다른 열두 세계』는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배경으로 한 SF 초단편소설집이다. 10 페이지 내외의 짧은 분량임에도 다양한 종족, 상황, 주제, 설정들이 쏟아진다. 초단편소설은 제한된 분량 안에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게 관건이기에 공격적인 내용일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외로 부드럽고 서정적이었다. 1년 동안 연재한 소설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한 덕분인지 작가가 시간 흐름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느낌도 받았다.

늘 그렇듯 표지에 끌려서 서평 신청한 건데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일러스트가 잘 어울렸다. 부드러운 색감의 몽환적인 일러스트처럼 수록작들도 뾰족하기보단 생각을 확장 해주는 방향. 공감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청소년 세대(「그땐 평화가 행성들을 인도하고」), 갑자기 용이 되어버린 친구(「이무기 시절도 한때」), 폭주하는 기계의 옛 지배자들을 찾아 떠난 동료(「구세주에게」). 느슨한 이야기는 독자 취향에 따라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하겠지만 내 취향에 맞진 않았다. 나는 분량이 짧을수록 좁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날카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마지막 글과 작가의 말은 구구절절한 게 웃겨서 이 책의 개성으로 꼽고 싶다. 이 정도는 해야 오타쿠구나...를 느낄 수 있었음ㅋㅋㅋ

초단편소설집이라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친절하지 않은 전개와 소재들 때문에 자꾸만 막혀서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옛날 소설책에 쓰였을 법한 궁서체 폰트라 더욱 그랬음. 그만큼 초단편으로 끝내기엔 크고 넓은 세계가 가득 담긴 책이다. 언젠가 확장판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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